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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은 ‘평등’인가 

 

필자명: 초원복국

▎1월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개인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를 게시했다. 이는 20대 남성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윤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윤석열 페이스북 캡처
“민주당에 버림받은 2030세대 남성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아오른 지난 1월 5일, 국민의힘 청년보좌역 간담회에서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윤 후보에게 한 말이다. 같은 자리에서 곽승용 청년보좌역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준석 대표는 (2030 청년들의 지지를 다시 국민의 힘으로 끌어올) 그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준석 대표와 같이 가셔야 합니다.”

다음 날인 1월 6일, 윤 후보는 이 대표와 의원총회에서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그다음 날인 1월 7일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이다. 이 7글자는 윤 후보가 이 대표와 체결한 정치적 동맹의 시작점이 ‘이대남(20대 남자) 잡기’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효과는 확실했다. 2주가 지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에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 이전까지만 해도 윤 후보에게 날을 세웠던 이대남은 보름 사이에 윤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부상했다. 결국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 후보의 10대 대선공약으로 자리 잡았다.

7글자는 어떻게 대선을 바꿔놓았나

필자도 20대다. 왜 20대 남성들은 젠더 이슈,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에 그렇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을까? 혹자는 고(故) 박원순·오거돈 시장 등 공직사회에서 끊임없이 불거지는 성범죄 의혹을 둘러싼 여성가족부의 침묵을 이유로 내세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문장에 성범죄자로 매도당했던 박진성 시인 사건도 원인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간 평등을 내세웠던 현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에 역차별을 체감해 온 2030 남성들의 목소리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정부는 여성주택 보급, 공공기관 취업 및 각종 공모전에서의 여성할당제와 가산점 등 여성 권익 향상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수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남성들의 권익 향상에 기여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왜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하냐’라는 질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재미있는 이슈 같다”고 흘려버렸으며, 이 후보는 “대한민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는 근거로 대한민국이 156개국 중 102위라고 보고한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를 인용했다. GGI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이슬람 규율에 따른 여성에 대한 ‘명예살해’가 일어나는 리비아보다 구조적 성차별이 심한 국가다. 이 후보에게 묻고 싶다. 이 후보께는 이 GGI 지수가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까?

성평등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2022년 지금, 어느 경우에도 성별의 차이를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가부장제를 타파하자는 페미니즘의 본질을 아득히 넘어선, 일방적인 여성 친화적 정책을 진행해왔다.

반면 남성에게 여전히 지워지는 ‘남자다움의 억압’ 및 국방의 의무는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인구절벽 위기 속에서 백혈병 환자조차 4급 판정을 받고 훈련소로 간다. 코로나19로 인한 조기전역 탓에 대다수의 부대에서 청년들은 하루 12시간씩 소총을 메고 단독군장을 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밥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공익제보는 이젠 식상할 지경이다. “군대 일찍 갔으면 고생 좀 덜했을걸”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핸드폰 쓰게 해줬는데 뭘 더 바라냐”는 핀잔만 돌아온다.

체감하는 일상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2030 남성을 설득하려는 정부의 노력조차 없다. 이러니 문 정부에 대한 2030 남성들의 지지율 하락은 당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임기 동안 군대 안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젊은이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입영 전 가족에게 경례하는 장병들. 연합뉴스
나라님께 묻습니다.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지난 2019년 2월 18일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간추려보자면,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진보집단인 20대 여성과는 달리, 20대 남성은 실리주의를 우선시하며 정치적 유동성이 강한 실용주의 집단이며, 정부 정책의 ‘여성편익 우선적’ 편향성으로 인한 ‘역차별’을 느끼며 그에 따라 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을 보였다”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정부는 20대 남성들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이러한 갈등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야당인 국민의힘이 기회를 잡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 시민단체 연합이 후보들에게 ‘여성의 안전·극단적 선택·디지털 성범죄 정책’을 물어보자, 당시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이었던 이 대표는 “그러한 문제에 남녀구분이 필요하지 않다.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 답변은 문 정부에 등을 돌린 2030 남성들의 강한 호응을 얻었다. 결국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중 72.5%가 오세훈 시장에게 몰표를 던졌다.

정부와 여당의 페미니즘 정책에 뒷전으로 밀린 2030 남성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일곱 글자로 충분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담긴 정책 기조의 변화라는 속뜻에 2030 남성은 이 대표, 그리고 윤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정부와 여당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모르시겠냐고.

*위 기고는 필자 요청으로 이름 대신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월간중앙 ‘이슈토크’는 외부 필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명: 초원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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