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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 심화시키는 90일 ‘유튜브 세상’ 

 

필자명 : 진현준(대학생)

▎각 방송사에서 진행한 대선 토론 직후 여러 유튜브 채널에선 지지 후보의 유의미한 발언이나 상대 후보의 실수를 1분 이내로 짧게 편집한 쇼츠(shorts)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튜브 ‘명블리’, ‘쨉’, ‘명프로 5TV', '심상정’ 캡처
취업 준비, 인턴 생활, 개강으로 바쁜 나날이다.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지 못할 정도로 바쁘지만 대선 토론만큼은 시간을 내어 생방송을 챙겨봤다. 생방송을 놓치면 스스로 후보자들을 평가할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 TV를 보느냐고 하는 2022년이지만, 대선 토론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여론은 토론이 끝나자마자 형성된다. 각 후보의 주요 발언은 토론이 진행 중인데도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댓글에선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날 선 비판과 사람이라면 실수할 수 있다는 변호가 어지럽게 얽힌다.

어린 나이지만 가진 소신이 바로 ‘앞뒤가 잘린 단편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겠다’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발언인지 직접 들어보지도 않은 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수수 쏟아지는 영상과 그보다 100배쯤 많은 댓글을 보고 나면 색안경이 씌워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편집되지 않은 ‘싱싱한’ 발언을 듣고 스스로 판단할 유일한 기회인 토론 생방송을 놓치고 싶지 않다.

사실 다 챙겨보기는 힘들다. 유달리 퇴근이 늦었던 하루, 결국 토론 하나를 놓쳤다. 요약 영상이나 클립이라도 챙겨보자 싶어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이란 게 참 신통해서 유튜브 쇼츠(shorts)에 바로 ‘오늘 자 대선 토론 1분 요약’ 영상이 떴다. ‘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영상을 터치했다. 1분 동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족한 지식과 잘못된 발언만을 편집해서 정리해 둔 영상이었다. 채널 이름을 확인해 보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팬 채널이었다. 역시나 하고 넘겼는데, 다음 쇼츠 영상은 이 후보 선대위 청년위원회에서 편집한 영상이 나왔다. 궁금해서 쭉 넘겨보니 계속 비슷한 영상만 반복해서 나왔다.

무서웠던 건 계속해서 나오는 비판 영상이 아니었다. 보다 보니 어느새 나도 윤 후보를 속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이 후보가 하는 말은 다 맞는 것 같고, 윤 후보 말은 다 무식하게 들렸다.

아차 싶었다. “이게 확증편향이구나!” 결국 전체 영상을 찾아봤다. 처음부터 다시 보고 나서야 쇼츠 영상들의 화려하고 교묘한 편집수법에 배신감을 느꼈다. 사소한 실수 하나조차 편집자 마음대로 짜깁기되는 상황, 유튜브로 대선 관련 영상을 찾아보다가는 시야가 엄청 좁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러들어야 할 내용이 많다는 생각에 피곤해져 결국 유튜브를 껐다. 동시에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트가 좀 그리워졌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믿을 수 없는 편집자가 제멋대로 편집한 유튜브 콘텐트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신뢰도와 책임이 보장된 수준 높은 콘텐트를 향한 갈증을 느낀다. 레거시 미디어는 홍보를 위해 꾸며진 대다수의 유튜브 영상과 달리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에 주력한다. 명백한 제작자가 있는 만큼 편향된 콘텐트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수월하다. 그래서 꼭 대선 토론이 아니어도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콘텐트를 보고 싶다는 거다.


▎지난해 지상파 방송사에선 대선후보가 출연하는 예능을 내보냈지만, 각 후보는 선거 90일 전부터 보도와 TV토론 이외의 프로그램엔 출연할 수 없다.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낡은 규정이 만드는 ‘필터 버블(Filter-Bubble)’

안타깝게도 수십 년 전 만들어진 법안 하나 때문에 그런 콘텐트는 무려 대선 3개월 전부터 볼 수 없다.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선거 90일 전부터 보도나 토론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출연해선 안 된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방송에 출연하면 방송이 특정 후보의 홍보 콘텐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근거한 규정이다.

취지는 이해한다. 어떤 매체보다 파급력이 컸던 지상파 방송사가 중립을 지키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거란 판단이었을 거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이미 유튜브의 영향력은 레거시 미디어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근래에는 이미 많은 후보가 유튜브나 OTT 플랫폼으로 자신을 홍보하고 있다. 그게 방송 출연이 막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콘텐트를 소비하는 플랫폼을 택한 거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만을 대상으로 규제를 유지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시청자가 소비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콘텐트의 선택지만 줄이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시청자들에겐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콘텐트가 필요하다. 알고리즘이 필터링한 하나의 관점에 이용자가 갇히는 ‘필터버블’ 현상은 유튜브의 고질적인 문제다. 유튜브 이용자는 시청시간의 70%를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보는 데 쓴다고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영상을 몇 개만 찾아봐도 비슷한 영상으로 도배되는 재생목록에 시청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셈이다. 결국 시청자들은 알고리즘의 필터에 갇힌다. 올바른 판단의 기회는 사라지고 ‘무지성 지지층’만 양산하는 꼴이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고 긁던 곳만 긁게 되면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편협한 시야와 배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월간중앙 ‘이슈토크’는 외부 필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명 : 진현준(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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