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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선 청년들.... 전쟁은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복무한 국군대구병원은 2020년 3월 5일부터 국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개원했다. 당시 대구‧경북 지역에 확진자가 집중되면서 경북 경산에 위치한 국군대구병원도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맡았다. 연합뉴스
사격장에 일제히 울렸던 재난문자 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국군대구병원으로 자대배치를 받고 첫 사격훈련을 하러 나간 날이었다. 총성 대신 울린 문자의 내용은 “31번 확진자가 대구에서 나왔다”였다. 일주일 후 우리 부대는 국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병사들 사이에선 뜬소문이 떠돌았다. 감염되면 평생 호흡 장애에 시달려야 한다거나, 얼굴이 새까매지고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근거 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때 우린, 믿을 만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사무실 바로 위층에 확진자 300명이 들어온다는데, 걸리면 우리 인생도 돌이킬 수 없이 꼬여버리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부대에선 병사들한테 부모님과 통화하고 편지를 쓰라고 명령했다. 영화에서 전쟁터로 향하기 전 군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휘관은 준전시 상황이라면서 병사들을 다그쳤다. 펜을 잡은 전우 한 명은 “이러다 진짜 어떻게 되면 이 편지가 유서가 될 수도 있겠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린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와 위험 앞에 섰다. 국방의 의무는 누구나 다 지는 것이라지만,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바이러스 자체보다 바이러스로 잃게 될 청춘을 두려워했다. 사회에서 음악을 했던 선임이 평생 흉통을 달고 살게 되면 앞으로 버스킹도 못 하게 될까 근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쨌든 우린 나름의 사명감을 부여받았고, 건강과 꿈을 담보로 환자들을 집으로 건강히 돌려보냈다. 다행히 아무도 아프지 않았지만, 전역하고 동기들을 만나 그때 이야기를 하면 모두 치를 떨고 한숨을 쉰다. 나도 그때만 회상하면 괜히 온몸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뛰는 것 같다.

신문 너머로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면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뛴다. 타의로 전쟁터에 빨려 들어갔을 청년들의 마음을 상상한다. 분명 사명감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이 있을 거다. 그 숭고한 희생정신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선에 가야 했던 청년들도 있을 거다. 그 청년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폴란드로 대피했던 우크라이나 청년이 러시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비극은 청년들에게 더 가혹하다

청년이라 징집되고 청년이라 희생된다.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에 가장 참혹하게 삶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치열했던 삶과 반짝였던 꿈이 숫자 1로 치환돼 버린다. 목숨이 한없이 가볍게 취급되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 죽음은 익숙한 일이 돼 버리는 거다. 우크라이나 바이애슬론 국가대표 선수의 안타까운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채 죽어갔을 청년 병사들이 먼저 생각났다. “살아있었다면 언젠가 멋진 성취로 자신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청년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거다. 온몸으로 전쟁 후유증을 견디며 황폐해진 삶의 터전을 다시 일궈야 한다. 어떤 젊은이는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의 죽음 앞에서 절망할 거다. 또 다른 젊은이는 다리 하나를 잃은 채 휠체어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탐욕과 고집 때문에 죄 없는 젊은이들이 희생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비열한 전쟁에 희생되기엔 너무나도 소중한 목숨이다.

생명에 값을 매길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감히 청년의 죽음이 더 비극적인 이유를 말해본다면, 그들이 죽음으로 잃어버릴 시간과 꿈의 크기가 커서다. 죽음의 무게를 알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스탠드 위드 우크라이나(Stand with Ukraine)’를 외친다. 하지만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만큼 전쟁은 체감하기 어렵고, 그만큼 관심도 초반보단 줄어들었다.

비슷한 비극을 여러 차례 경험했던 우리나라다.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모두가 천안함 용사 46인의 죽음을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들의 죽음이 숭고하면서도 더 안타까웠던 건, 젊은 꿈들이 펴 보지조차 못한 날개를 타의에 의해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서늘해지는 마음에 뉴스를 외면하고 싶다가도 다시 그곳의 청년들과 대면한다. 씁쓸하게도 점점 멀게 느껴지는 비극이지만, 함께 비극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본다.

- 필자명: 진현준(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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