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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오늘도 어디선가 학대받고 있다 

 


▎지난 2월 11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이 적용되면서 반려인은 반려견에게 2m 이내의 목줄 또는 가슴줄을 착용해야 한다. 사진은 적용 당일 서울 모처에서 목줄 없이 반려견과 산책 중인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월 11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m 목줄 제한, 공용주택의 공용 공간에서의 안전 지침을 골자로 한다. 그보다 일찍이, 작년 2월부터는 맹견 소유자에 한해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다. 교육 이수도 필수다. 반려인구 증가에 비례해 그만큼 맹견에 의해 사람이 물리고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국가적 차원에서 동물보호법을 손본 결과였다.

1500만 반려인과 나머지 비반려인의 공생을 위해 법이 개정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공생을 고민한다.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은 여전히 객체로 존재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달 전 다리를 저는 길고양이를 봤다. 아니, 정확히는 왼쪽 뒷다리를 완전히 접고 세 발로 꾸역꾸역 걷는 녀석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고양이를 본 그 날, 내내 마음이 쓰였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상태가 안 좋아져 고통이 심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내 동물구조 신청을 해야 할까 싶어 관련 홈페이지까지 찾아 들어가게 됐다. 괜스레 신경이 더 쓰인 이유는 있었다. 비슷한 시기 길고양이를 불에 태우는 등 동물 학대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게시된 갤러리를 폐쇄하고 엄벌을 요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 동의자는 22만 명을 훌쩍 넘었다. 작게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비난부터 끔찍한 학대까지, 주변에서 공공연히 듣고 보던 일이다. 세 발로 꾸역꾸역 걷던 그 고양이가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한 상상이 가 닿는 곳에 학대가 있으리라 의심해보는 것은 그래서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9월 강원 속초에서 반려견이 누군가에 의한 흉기 테러를 당해 크게 다치고 강아지가 상자에 담겨 유기되는 사건이 발생해 애견인과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사진은 흉기 테러를 당해 크게 다친 후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수술대기 중인 반려견 모습. 연합뉴스
동물 학대 혐의 첫 구속 이후 11년…달라진 건 없다

한 국가의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알 수 있다던 간디의 말을 떠올렸다. 동시에 한국 진보의 현재를 반추했다. 이 나라에서 동물 학대 혐의로 구속된 일은 2011년이 처음이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고등학생 7명이 연쇄 개 도살단을 조직해, 동네 개들 18마리를 장난삼아 도살했던 사건이다. 결론적으론 소년보호사건으로 넘어가긴 했으나 엄연히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이 실형을 구형한 첫 사건이다. 고양이, 개뿐만 아니라 비좁은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 한 드라마 촬영의 소품으로 내몰린 후 죽음을 맞이한 말을 생각해보면 2011년의 선도적인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10년씩이나 된 일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1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겠다.

캐나다 퀘벡 주의 '동물복지 및 안전법'에는 "인간은 동물 복지와 안전을 보장할 개인적, 집단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반려견의 경우만 따져본다면, 그런 나라에서 펫숍 운영은 불법이다. 특히 생후 6개월 미만의 아주 어린 강아지를 판매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된다. 캐나다,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국가는 대개 국가가 관리하는 동물보호소에서 분양을 책임지거나, 혈통견의 경우는 전문 사육사(브리더, Breeder: 사육자, 품종개량자)가 관리하고 번식시킨다.


▎길고양이가 산책로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산책을 즐기는 행인이 있으나 경계하지 않는 모습. 연합뉴스
반려동물이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 조성돼야

동물의 범위를 넓히자면, 스위스에서는 로브스터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는 것조차 불법이다. 기절시킨 후에야 물이 펄펄 끓는 냄비에 넣을 수 있다. 식용이 되는 과정에서 로브스터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생경한 문화를 들은 나의 친구는 '골치 아프고 무서워서 뭘 먹을 수 있기나 하겠니?'라고 비아냥거렸다. 본질은 내 친구의 그 반문에 있었다. 생명을 함부로 대함의 책임은 아주 골치 아프고, 때론 무섭게 느껴져야 할 만큼 막중한 일이라는 것이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됐음에도 갈 길은 멀다. 독일처럼 나라에서 입양, 동물 구조 등을 책임지고 개 세금을 걷는 것, 일본처럼 반려동물 입양 가족 한 사람이라도 입양을 반대하면 분양하지 않는 것 등 맹견뿐 아니라 모든 반려인에게 그 책임을 막중히 지워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결국 일련의 제도들은 번려동물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세 다리로 걷던 고양이를 목격한 이후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같은 장소에서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같은 뭘 찾는 듯 풀숲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마주했다. 딸로 보이는 사람의 손에는 고양이 먹이로 예상되는 캔이 올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고양이 보금자리 주변에 먹이를 놔주려는 모양새였다. 부끄러운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처럼 직접 돈을 주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적극성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서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이제 인간으로서의 책무가 됐다. 이에 국가의 진보적 역할이 필요한 때다.

- 필자명: 한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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