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청소년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수시 제도는 도입 당시 수능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영역을 폭넓게 평가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지만, 입시 비리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됐다. 사진은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이화여대 입학식.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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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통지서 4개를 현관문에 붙여두고 퇴근하는 어머니를 맞던 6년 전 겨울을 떠올린다. 대학 로고가 찍힌 종이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이내 날 푹 끌어안고 그저 고맙다고 했다. “알아서 잘 커 줘서 고맙다. 아들.”그때는 그 말뜻을 잘 몰랐지만, 이제는 어떤 마음이셨을지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강북 사교육의 메카라는 서울 중계동에 살면서도 학원 타령 한 번 안 하던 아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셨을 테다. 하루에도 두 군데씩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3년간 학교생활과 진로활동에만 충실했던 ‘FM’ 학생이었다. 그런 내게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기회였다. 대학들은 ‘사교육 없이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내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합격장을 보내줬다.그 무렵 주변에 학종으로 합격했다는 동기들은 나보다 더 목표가 뚜렷하고 열정이 넘쳤다. 그래서 이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수시 전형은 점수가 설명하지 못하는 학생의 진로에 대한 열의, 학문에 대한 관심까지도 조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학 당국에서도 학교가 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는 유연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2019년 8월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재학생들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촛불 대신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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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에 맞춰 지원해 합격한 뒤 반수, 전과하는 학생 늘어 하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전국을 강타한 2019년, 대입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하자 교육부가 대책을 내놨다. 학종의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폐지하고, 평가항목과 배점 등 세부 평가 기준을 공개하자는 것과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까지 확대한다는 게 골자였다. 정량적 지표로 학생을 선발해 의혹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발상이었다.고위 공직자 자녀의 입시 비리 사건들을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시 확대가 공정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순 없었다. 오히려 대입제도에 대한 정부의 제약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제 정시에서 학생들이 더 높은 학벌을 위해 비인기학과에 지원하는 건 예삿일이 됐다. 지난해 문/이과 통합으로 치러진 첫 번째 수능에선 교차지원 문제까지 심해졌다. 수학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이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에 대거 지원하며 교차지원이 예년의 세 배에 달했다고 한다.문제는 성적에 맞춰 학과에 지원하거나 교차지원한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며 재수를 준비하는 '반수'나 학과를 옮기는 '전과'를 시도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올해 기준으로 재수나 반수를 선택한 학생들은 전년도 졸업생 대비 30.8%에 달했다. 교차지원한 이공계 수험생 중 56%가 반수를 고민하거나 계획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니지도 않을 학교에 학벌만 보고 지원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기회를 뺏어버리는 이런 상황을 ‘공정’하다고 할 순 없다.
▎대학들은 입시제도의 공정성 회복을 이유로 정시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 난이도 조절에 따른 사교육 과열 등의 문제엔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는 상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수능 직후 수시 논술고사가 치러진 성균관대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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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문제 해결하려면 대학 자율성 보장이 먼저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정책을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기존 대입 정시 확대 기조를 유지, 강화하겠다는 규제책을 내놓았다. 허나 어떤 방향에서든 정부의 개입은 항상 부작용을 낳았다. 대입제도는 기본적으로 대학이 기준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어떤 학생을 뽑을지, 어떻게 공정하게 운영할지는 오롯이 대학이 고민할 일이다.대입제도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쓰는 ‘자기소개서’다. 6년 전에도 그랬듯, 여전히 대학은 지금의 수험생들에게 매력적인 자기소개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주위의 고3 수험생 학생의 한 마디가 쓰리게 스친다.“학교야 더 높은 데 맞춰 가면 될 것 같고, 학과는 상관없어요. 어디든 가서 고민해 봐야죠.”- 필자명: 진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