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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는 어쩌다 외면받게 됐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용답도서관에 마련된 용답동 제2투표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월요일 미국전에서 안정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금요일엔 사상 첫 16강행을 결정 지을 포트투갈과 절체절명의 승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렸던 2002년 6월,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투표율은 48.9%,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후 최저투표율이었고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하마터면 이 기록이 이번에 깨질 뻔했다. 50.9%, 2002년 이후 최저투표율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오명에도 지난 대선은 꽤 흥행했다. 불과 3개월이 지난 지금, 대선 때는 뽑을 사람 없다며 한숨지으면서도 긴 줄을 기꺼이 기다려 투표를 하고 나왔던 사람들이 이번엔 나들이 명소로 향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투표율을 관찰하며 내심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 이번엔 국민 절반이 투표장을 외면했다. 절반이 투표하지 않은 건 민주주의의 커다란 위기다. 지방정치가 유권자에게 휴일 한 시간을 투표에 투자할 만큼의 효능감조차 주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효능감은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나온다. 시민이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효능감도 자연히 뒤따라온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지방자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과는 거리가 있다. 지역주민들은 정작 자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지방정치에서 소외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은 지방행정, 의회 권력의 결정을 토대로 하향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지 않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작년에 통과되면서 주민참여를 위한 제도적 수단이 일부 보완됐지만, 여전히 참여 활성화를 위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생활주민 의견 빠진 지방자치는 ‘반쪽’


▎현재 지방선거제도는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생활주민’의 입장을 지역사회에 전달하거나 정치 활동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연합뉴스
그나마 지역 거주민들에게는 지방선거 투표권이라도 주어진다.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생활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지역사회에 전달하거나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데 활용할 인프라조차 부족하다. 생활주민은 직장인, 상인, 기술자, 연구자, 학생 등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경제 및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교통의 발달로 업무 및 학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분리된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은 주거 공간보다 업무 및 학업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생활하고 있다. 대도시일수록 이런 경향성은 강해진다. 자연스레 거주지보다 생활지역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생활주민들은 거주민만큼이나 높은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도를 바탕으로 지역 현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생활주민들은 행정적, 법적으로 지역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이들의 말에는 귀담아들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30년간 한 지역에서 장사해 온 사람들로 구성된 상인회는 지역 상권 활성화를 하겠다며 찾아온 공무원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준다.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인 지역에서 대학생들은 거주민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지역의 혁신을 돕기도 한다.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할 창구가 마련된다면 정치인들의 탁상공론 대신 현실과 맞닿은 의제들이 지방의회 테이블을 채울 수 있다.

지금까지 생활주민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지자체에 의해 하향식으로 만들어진 지역 주민협의체에 참여하는 게 전부였다. 제도적 방법이 없다 보니 민원을 넣거나 시위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는 때로 거주민들과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에게 거주민과 같은 권리를 제공할 수는 없지만, 주민자치활동에 참여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주민조례청구제도를 생활주민에게 개방하는 등의 제도적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말과 생각이 모이면 시간은 더 걸린다. 여러 사람이 말할 기회를 얻는다고 합리적 결론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때로 의미 있는 비효율성은 필요하다. 생활주민의 참여는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고 시민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국민 절반에게 외면받은 지방자치의 부흥을 위해 비효율성을 감수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명: 진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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