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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댈세] 여성들만 힘든 게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 왔던 여성차별‧혐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사진은 3·8 여성의날 110주년인 2108년 3월 8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의 모습. / 연합뉴스
군대에 다녀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행정보급관이 전역 직전 짧게 밀어버린 뒤통수가 아직 하얗던 2017년 여름, 교양 수업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학교에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수의 친구 정도만 알고 있던 페미니즘은 이미 너무나도 대중화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돼버렸다. 2022년 봄, 페미니즘은 이제 빼놓을 수밖에 없는 대화 주제가 됐다.

페미니즘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시작한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대한민국이 묻어 왔던 여러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했다. 리벤지 포르노를 엄벌할 수 있게 됐고, 데이트 폭력이 사회의 심각한 화두가 되었으며, 홀로 앓아야 했던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처벌과 함께 피해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사회, 경제, 문화 여러 부분에서 여성의 노력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선 다음 날인 3월 10일,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의 홍보용 모니터가 꺼진 모습. / 연합뉴스
5년 사이 페미니즘은 ‘新기득권’이 됐다

하지만 지금 사회적 기류가 다시 한번 변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을 필두로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기류는 제20대 대선을 거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페미니즘은 왜 갑자기 이런 난관을 맞았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필자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 바라보는 사회문제의 진단 자체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대한민국이 마치 여성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걷기 싫어하는 내 습성도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상은 어떨까? 우선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연구원이 2016년 유럽 15개 국가와 대한민국에서 ‘혼자 밤길을 걸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비율’과 ‘실제 신체적 위해 경험률’을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안감 비율은 체코, 러시아를 이어 16개국 중 3위로 매우 높은 반면, 실제 위해를 경험한 비율은 1.5%로 16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0대 대선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내놓은 성격차지수(GGI)에서 2021년 대한민국이 총 156개국 중에 102위로 하위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대한민국에 구조적인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국제기구의 ‘성격차’를 ‘성평등’으로 왜곡 해석한 것으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보고서가 통계청의 2017 제2회 ‘통계 바로 쓰기 공모전’에서 3등 수상작으로 뽑혔다. 2017년 이후 제3회 ‘통계 바로 쓰기 공모전’은 열리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의 현실 인식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현 20대는 단군 이래 가장 진보적이며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일례로 목회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세대별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니 50대와 60대의 각각 25%, 17%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20대는 무려 과반인 54%가 ‘인정해 줘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진보적인 20대와 손잡지 않고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권력 획득을 위해 기성세대인 586 정치인들과 연대했다. 압도적인 지지층을 형성한 문재인 대통령과 페미니즘이 결합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지난 5년간 새로운 기득권이 돼버린 셈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김잔디(가명)씨는 2022년 1월 당시 사건과 회복 과정을 담은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냈다. 당시 몇몇 정치인은 가해 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피해자 김씨를 향해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다. / 연합뉴스
동반자를 밀어낸 건 당신들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이 간과했던 것은 페미니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고 여겼던 586 정치인들이 실상 페미니즘이 그렇게도 타파하고자 했던 가부장제와 가장 친숙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정치적 동반자는 카메라 앞에선 성평등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들의 인식은 그대로였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칭했던,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던 거물급 정치인들의 연이은 성추행 사건으로 민주당은 보궐선거에서 참패했고, 누구보다 가해자를 규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목소리를 보태야 할 진선미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칭했다. 피해 여성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여성가족부도 침묵했다. 심지어 페미니즘 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에서는 당대표가 현직 국회의원을 성추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들은 실질적으로 페미니즘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2030 남성들과 연대하기보다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규정짓는 일부 사람들은 군무새·군캉스 등 징병 되는 남성들에 대해 노골적인 비하를 지속해서 자행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남성이 스스로 잠재적 가해자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제작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남자들이 이득을 봐 왔으니 이제는 손해를 좀 봐도 되지 않느냐”는 것처럼 여성 우대 정책을 쏟아냈다. 속 시원한 대답을 한번 듣고 싶다. 군무새는 되고 김치녀는 안 되는 건가?

여성이라 힘들다고? 모두가 힘들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주류 페미니즘의 방향성은 여성의 문제만 중점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남성들이 소외를 느끼고 반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남성들의 이러한 반발을 여성계와 언론은 ‘백래시’로 명명하며 오히려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졸지에 2030 남성들은 기득권을 빼앗겨 화난 집단이 되었고, 586과 여성계가 주도하는 사회 담론에서 소외된 채로 유기됐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금의 2030, 1990년대생 남성들이 가진 기득권이 뭐가 있었는가?

앞서 ‘여성은 취업은커녕 노동하기조차 힘들다’는 [이슈토크] 코너 필자의 주장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공무원, 또는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여성은 지금의 세대보다 더 차별에 시달렸던 엄마였고 이모였으며 언니였다”는 필자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런데 2022년 현재 2030 남성이 또래 여성에게 공무원 또는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라고 추천 또는 강요를 하고 있는가? 오히려 좁아진 취업의 문턱에 함께 허덕이는 상황에서 여성임을 내세워 노동조차 힘들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닌가?

불평등의 타파를 외치던 페미니즘이 이제는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 필자 역시 단지 젊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경제도 어렵고, 모두가 힘겨운 시기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최종면접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친구, 선배, 후배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그로 인한 화살이 또래 남성을 향할 이유는 없다. 그들도 똑같이 힘겨운 20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위 기고는 필자 요청으로 이름 대신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 필자명: 초원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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