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Home>월간중앙>이슈토크

여론조사 보도, 이대로 괜찮습니까? 

 


▎지난 20대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불리며 잦은 지지율 역전을 보였다. 대다수 언론은 오차범위 내 차이에 대해선 우세 여부를 밝히지 않아야 함에도 역전, 우세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경제신문 캡처
투표용지가 손을 떠나기 직전까지 고민해야 했던 지난 대선이 기억난다. 애써 도장을 눌러 찍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다. 내 결정이 어쩌면 후보의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한 표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치열하게 이어졌던 여론조사 결과를 꾸준히 지켜봤던 나로선 표 한 장이 가진 적잖은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 보도, 중립적이면서도 신중하고 정확해야


▎국내 언론사들은 대개 1000명가량의 표본을 추출해 여론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표본오차 ±3.1%p의 여론조사에서 1.5%p 수준의 차이는 15명 정도에 불과하다. The Joongang 캡처
지난 3월 치러졌던 20대 대선처럼 호각세(互角勢)를 이어갔던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땐 더 그렇다. 자신의 표가 당선 후보를 바꿀 ‘캐스팅 보트’라는 생각에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지하는 후보가 확실히 있는 사람들은 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할 것이다. 반면 제3의 후보나 군소정당 후보에 투표하려던 유권자들은 표를 줘도 당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사표 심리가 작동하면서 차선책이 되는 거대 양당 후보에게로 향할 수 있다. 이렇게 선거철의 여론조사 보도는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 최종 결정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 보도는 필연적으로 통계와 한 몸이다. 전수조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통계에는 항상 오차범위라는 허점이 존재한다. 그러니 여론조사 발표는 중립적이면서도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여론의 방향을 잘못 전달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난 대선 기간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두권을 달리던 두 후보가 접전을 벌이며 누구 한 명이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던 2월 말이었다. 한 언론은 1.5%p 차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오차범위 내 앞섰다’, ‘역전했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3.1%p였다. 겨우 1000명 내외의 표본, 기껏해야 15명 차이로 갈린 결과다. 기사를 접한 수용자 입장에선 ‘이 후보가 악재를 극복하고 다시 앞서가는구나’라고 오인할 수 있는 편향적인 보도였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 날, 다른 조사에서는 다시 윤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우세’했다.

여론조사 보도 내용도 빈약했다. 언론들은 오로지 숫자 싸움에만 매몰된 채 지지율의 이면에 있는 사회 현안들과 후보자 공약에 대한 해설은 뒷전으로 미뤘다. 포털 헤드라인을 도배했던 여론조사 기사들에는 제목부터 기사 끝까지 숫자만이 빽빽하게 자리 잡았다. 가장 중요한 여론의 추이, 변화 양상에 대한 설명이 빠진 기사들이 대다수였다. 세대별, 지역별로 몇 퍼센트의 지지율이 나왔는지, 이념성향별로는 어땠는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그저 조사된 통계를 소수점 단위까지 받아적기에만 급급했다.

0.1%p 차이까지 반영할 정도로 정밀하다고?


▎미국 언론사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소수점을 제외한다. 작은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각 후보에 대한 지지도의 추이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 캡처
지금은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보도가 정치뉴스 섹션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쏟아지는 보도들 가운데 오차범위 내 ‘우세’라는 표현 대신 ‘접전’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유권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전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한 매체에서는 0.4%p 차이로 양당 후보가 맞붙은 유성구의 결과를 망설임 없이 ‘앞섰다’고 표현했다. 조사의 표본오차는 ±3.5%p, 유성구 조사표본은 192명에 불과했다. 0.4%p면 겨우 한 명 차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등 몇몇 나라들의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소수점 단위를 표기하지 않기도 한다. 여론의 추이만 수용자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반면 소수점 한 자리까지 빼곡히 적어놓은 우리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를 보고 있으면 마치 0.1%p 단위까지 변별할 수 있는 정밀한 조사결과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과연 여론조사가 현실을 0.1%p까지 반영한다고 자신할 만큼 정밀할까?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투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선거일수록 주변인의 의견과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기 쉽다. 특히 대선과 달리 이번 지방선거에선 선거구도 많고 후보자들도 늘어나 여론조사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높이려면 중립적이면서도 자세한 해석이 들어간 언론 보도가 절실하다. 언론이 숫자의 늪에서 빠져나와 통계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 필자명: 진현준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