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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대통령 공약으로 본 공정 현실화의 선결 조건 

“공정의 열매 맺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통합” 

尹 공약집 속 공정 척도 다섯, 인사·검찰·2030·부동산·남북관계
0.73% 벽 뛰어넘으려면 ‘보수 결집’ 아닌 ‘중도 결집’ 주력해야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월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지지자를 향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과연 이 시대의 과제이자 시대정신인 ‘공정’을 잘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5월 10일 취임식을 하는 그의 앞에는 숱한 공정의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검수완 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를 비롯해 한덕수 국무총리 내정자와 장관 후보자 18명의 국회 인사청문회, 삐걱대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과의 공동정부, 국민의당과 합당 문제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무엇보다 검수완박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0.73%p차 석패의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인정사정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향후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공정과 통합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가장 비판받았던 키워드 두 개가 ‘불공정’과 ‘분열’이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과 국회 인사청문회 파행, 조국 사태, 검찰 파동, 부동산 정책 실패, 여야 충돌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문재인 정부 = 586 운동권 세력의 불공정과 분열·갈라치기 정치 = 내로남불’이 등식처럼 굳어져버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공허한 메아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서 지난 3·9 대선 때 불공정의 반대인 공정, 분열의 반대인 통합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당선인은 앞으로 ‘공정’과 ‘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땀 흘리는 모습만 보여줘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요컨대 ‘착한 청개구리 전략’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비판받았던 부분과 반대로만 하면 지지율도 올라가고 국민의힘은 6·1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불공정’과 ‘분열’의 시즌2가 재현된다면, 대가는 더 혹독할 것이다.

尹-安 두 리더의 아슬아슬한 관계학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소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군령을 어기고 전투에서 패배한 최측근 장수 마속(馬謖)의 목을 베고 3일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39살이던 젊은 마속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장수로서 공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공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참수당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는 예나 지금이나 공정의 실현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그리고 공정과 통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월 취임식 이후 윤석열 시대의 공정과 통합의 청사진을 알려면 그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된다. 공약집은 ‘공정’에서 시작해 ‘공정’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약집 제목부터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총 10개 주제 가운데 셋째 주제가 ‘공정과 상식의 회복, 대한민국 정상화’인데, 이 외에도 공약집 전반에 걸쳐 ‘공정’과 ‘통합’이 중요한 국정철학으로 깔려 있다. ‘내로남불 청산론’이 담겨 있는 이른바 ‘윤석열의 공정 시나리오’를 5개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자.

윤석열 시대의 공정 척도 첫째 키워드는 인사(人事)로 보인다. 인수위원과 지난 4월 13일까지 완료된 1·2차 내각 및 김대기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의 면면을 보면, 일단 ‘통합’과 ‘능력’에 포커스를 맞춘 느낌이 든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부산경남(PK)·국민의당,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김대중,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구경북(TK)·노무현, 박주선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회 위원장은 호남·김대중을 상징해 통합적이다.

한덕수 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대기 비서실장 내정자는 모두 경제관료 출신으로 향후 국정운영의 3각 축을 경제 라인업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파격적인 ‘한동훈 카드’에서는 집권 초기 공직 기강과 적폐수사 과정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엿보인다. 인사청문회 때 ‘승자의 밀어붙이기’ 프레임과 ‘패자의 발목잡기’ 프레임 가운데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 따라서 6·1 지방선거의 민심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무서운 잠복 변수는 또 있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인수위원 사퇴로 촉발된 윤석열-안철수 두 리더의 관계학은 늘 아슬아슬하다.

공정의 둘째 키워드는 요즘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검찰의 중립성이다. 집권 초기 적폐수사 과정에서 윤 당선인과 검찰이 어느 정도 공정성을 보여주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불공정한 정치보복’과 ‘공정한 적폐수사’는 종이 한장 차이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현(문재인) 정권은 검찰개혁이라고 외치면서 구체적인 사건에 관한 수사지휘권을 남용하는 등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검찰 개악’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에 대한 예산 편성권 부여 등의 공약을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검수완박은 곧 범죄완판일 뿐”이라고 말해왔다. 검찰은 ‘연산군의 사헌부 폐지’,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 같은 거친 표현을 동원해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내부 반발을 감수하고 검수완박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5·10 취임식 이후에 닥쳐올 사정의 칼날로부터 문재인-이재명을 지키려는 의도라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취임식 바로 다음 날부터 모든 권력이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일은 역대 정권에서 늘 작동해왔던 법칙이다.

공정의 셋째 키워드는 2030세대다. 요즘 ‘조국의 강’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딸 조민씨의 대학 입학이 취소된 것과 관련해서 지난 4월 13일 사회관계망(SNS)에 “왜 다른 학생은 봐주고 내 딸만 선택적으로 입학을 취소했느냐”는 글을 올렸다(흥미롭게도 윤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씨가 ‘좋아요’를 눌렀다). 문재인 정부에서 ‘불공정의 선봉장’으로 지목됐던 조 전 장관이 딸 문제로 불공정 논란을 제기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19년 조국 사태가 민주당이 3·9 대선에서 패배한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조심해야 하고, 국민의힘은 ‘박근혜의 강’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부모 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제도를 마련하겠다”며 ‘입시비리 암행어사제’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세부 대안을 제시했다.

‘정치보복’, ‘적폐수사’ 종이 한 장 차이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 묘역을 찾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막혀 묘역 근처에서 묵념하고 있다.
또 윤 당선인은 정시 모집 인원 비율을 확대하고 대입 전형도 단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2030세대의 미래와 직결된 대입 제도의 책임자 격인 교육부총리에 문재인 대통령은 운동권 출신의 재선 국회의원(유은혜)을 기용한 데 반해 윤 당선인은 대학 총장 출신의 교육전문가(김인철)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2030세대의 최대 관심사인 취업과 채용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채용시험과 국가 자격시험에 특정인에 대한 특례 제도와 가산점 제도가 있어서 논란이 많았고 노조의 고용세습, 편법적 고용 승계, 전·현직 임직원 자녀 특혜채용이 자주 발생했다”며 “공정한 채용 기회를 보장하고 채용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3·9 대선 과정에서 2030세대의 남녀 간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였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국가 자격시험 특례 전면 재검토, 채용 가산점 제도의 불공정 시정 공약 여하에 따라서 6·1 지방선거 때 2030세대 표심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성평등이나 젠더 갈등, 세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여가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해 여가부는 어떤 형태로든 대폭 리모델링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이 전력투구해야 할 공정의 넷째 키워드는 부동산 문제다. 오늘날 부동산은 단순히 땅이나 주택, 건물이 아니라 국민의 삶 자체라고 할 만큼 관심도가 높다. 이에 걸맞게 윤 당선인은 초대 국토부 장관으로 중량감 있는 대권주자이자 제주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을 깜짝 발탁했다. 원희룡 내정자가 정책 능력을 발휘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설 수 있겠지만, 정치력만 동원하다 실책을 범한다면 본인은 물론 윤석열 정부도 크게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원 내정자가 지난 4월 11일 “몇 번의 조치로 (부동산)시장을 제압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겨냥해 “주택임대시장의 작동원리 무시”, “시장질서 혼란 야기”, “세입자들의 큰 피해”라고 강한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면서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활성화’, ‘소규모 주택정비 활성화’, ‘외국인 주택투기 방지’ 등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尹, 공정·통합 전광석화처럼 추진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대선 뒤 처음으로 만났다. /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에서도 공정의 개념은 중요하다. 북한의 ‘삶은 소대가리’ 망언과 잦은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의 극심한 불공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 역시 공약집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굴종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케 했다”며 “남북관계는 폐쇄와 단절 속에서 대결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혹평했다. 이어 윤 당선인은 “예측 가능하고 원칙적인 자세로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며 ‘한·미 군사동맹 강화’, ‘북한인권재단의 조속한 설립’, ‘한·중 고위급 핫라인 설치’와 같은 세부 계획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통합’이라는 쌍두마차를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늦을 수록 어려워진다. 윤 당선인은 당선하자마자 ‘대한민국 공정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의 대 변혁’에 착수했다. 그는 “현 청와대 구조는 왕조시대 궁궐의 축소판이니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의 국정운영이 필요하다”면서 ‘청와대 명칭 폐지’, ‘참모의 소수 정예화’, ‘민관합동위원회 신설’ 등 파격적인 공약을 실행해나가고 있다. 윤 당선인의 초반 행보가 호평받을 수 있을지는 용산 시대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당선인이 공정의 열매를 맺기 위한 조건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합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4월 12일 대구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윤 당선인 앞에는 세월호 참사 8주기, 광주 5·18 민주화운동 42주기, 6·10 항쟁 기념행사 등 통합의 일정이 연이어 있다. 윤 당선인은 국민대통합을 위해 ‘보수 결집’이 아니라 ‘중도 결집’에 주력해야 0.73%p의 벽을 껑충 뛰어넘을 수 있다.

-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 cj0208@hanmail.net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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