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스토리] 시계(視界) 제로 민주당의 행로 

호랑이 없는 무주공산, 백가쟁명 난무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원칙 뒤집기·강성팬덤’ 자성하고도 계파 간 힘겨루기 여전
성찰과 쇄신보다 8월 전당대회 앞두고 당권 장악에만 골몰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달아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중지란에 빠졌다. 6월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당 내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주최로 열린 대선·지선 평가 토론회에서 한 의원이 평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외풍 때문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 소용돌이 탓이 크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연달아 패배하면서 리더십이 붕괴했다. 의원들뿐만 아니라 당원들마저 친문(친문재인), 친명(친이재명)으로 갈라져 선거 패배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닐 수 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양 진영 갈등은 ‘친문-친명 대전’이라 할 만큼 극렬했다. 대선 패배 후 말을 아꼈던 이낙연 전 대표와 친문 의원들은 ‘이재명 책임론’을 연일 내세웠다.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6월 2일부터 이들이 포문을 열었다.

김종민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이재명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의 출마를 두고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 당선인이 지난 1월 ‘이재명의 민주당’을 선언한 이후 이재명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으로 우리가 대선을 치렀다. 거기까지만 해도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대선후보니까 같이 간 것”이라며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더 연장됐다. ‘이재명을 위한’ 민주당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도 같은 날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이 의원이 계양을에 나감으로 인해서 (발이) 묶여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며 “만약 거기 묶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전국 선거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었을 텐데 전략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친문 좌장 격인 전해철 의원은 더 강경했다. 전 의원은 “이번 선거 전면에 나섰던 이재명 의원이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8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3월 대선에 이어 이번 선거 패배의 중심에 있었던 이 후보는 평가 대상”이라며 “그런 분이 당을 이끄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대선 경선에서 패한 뒤 의견 표명을 자제해온 이낙연 전 대표도 입을 열었다. 같은 날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지방선거 패배 이유로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에 ‘졌지만 잘 싸웠다’고 자찬하며 패인 평가를 미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는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하는 건 국민께 가장 질리는 정치 행태”라며 “그러니 국민의 인내가 한계를 넘게 됐다”고 지적했다.

대선·지선 연전연패에 ‘친문-친명 대전(大戰)’


▎민주당 안팎의 전문가들은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의 가장 큰 이유로 ‘팬덤 정치’ 심화를 꼽았다. 친문- 친명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은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다. 사진은 2017년 3월 민주당 대선 후보 충청권역 경선에서 문재인,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의 응원전 모습.
참아왔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일까. 같은 날 약속한 듯 이재명 의원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내자 친명계도 반발했다. 손혜원 전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쓴 글에 대한 반박글을 통해 “(이 전 대표) 본인만 패인을 모르는 듯”이라고 했다. 손 전 의원은 “계속되는 민주당의 오만과 뻘짓 속에서 그나마 경기지사 성공, 인천 계양에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린 것이 이 당선자”라며 “대선, 지선에서 아무 도움도 안 된 당신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제 얼굴에 침 뱉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했던 이원욱 의원에게는 이재명 의원 지지층으로부터 ‘수박’이란 야유가 쏟아졌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이나 지지층을 조롱하는 은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던 ‘양념’과 함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만 쓰인다. 이 의원은 자신의 SNS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정말 맛있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국민에게 시비 걸듯이 조롱과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려서 일부러 화를 유발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라며 발끈했다.

윤호중·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방선거를 치른 지도부가 사퇴한 뒤 이어받은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자제령을 내렸지만, 여진은 계속됐다. 이번엔 대선·지선 평가를 두고 양쪽이 책임 공방을 벌였다.

“검수완박 하면 불리하다, 송영길·이재명 출마하면 더 불리하다, 정치 전선 말고 민생·복지 전선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라고 주문했습니다. 정반대로 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은 외부의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6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 소회의실에서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선거 평가 2차 토론회 패널로 나온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패배 원인을 ▷팬덤 정치 ▷성찰 대신 비호감 행보 ▷진보 정당 실종으로 압축했다. 유 대표는 “대선과 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팬덤 정치와 민주적 규범 파괴에 따른 일종의 환멸”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유권자를 등 돌리게 한 결정적 장면으로 지난해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당헌을 개정한 일을 꼽았다. 민주당은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을 때 귀책사유에 따라 치르는 보궐선거는 무공천한다는 원칙을 당헌에 명문화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터라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당헌에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낙연 당대표는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내기로 하고 전 당원 투표와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당헌을 고쳤다. 투표에 참여한 당원이 고작 26%대에 불과했지만, 찬성 비율 ‘86%’를 내세웠다.

결국 지난해 4월 7일에 치러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57.5%를 득표한 오세훈 시장과 62.67%를 얻어 당선한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각각 서울 25개 구, 부산 16개 구 전체를 내줬다.

민심을 거슬렀을 때 돌아올 결과를 뼈아프게 체험했지만 이후에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불과 1년 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민주당은 다시 무리수를 뒀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부터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정권 임기 말에 갑자기 밀어붙인 것에 국민을 설득할 만한 명분도 부족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법사위 캐스팅보터였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입법 반대로 돌아서자 긴급히 민형배 의원을 투입했다. 민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양 의원을 대체했다. 대번에 ‘위장탈당’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민 의원과 민주당은 “우리가 절차적 정당성을 위배했느냐”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 뜻대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됐지만, 민심은 전보다 더 싸늘해졌다.

‘양념’에 길들여져 팬덤 굴레에 스스로 갇힌 꼴

토론회 참석자들은 또 다른 패배 요인으로 ‘팬덤 정치’를 꼽았다. 민주당을 지탱하는 정치 팬덤은 친문재인, 친이재명 두 줄기다. 문재인-이재명 두 정치인의 친위대 혹은 ‘사수대’를 자처한다. 양측은 201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후 2018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이재명-전해철),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선거 때마다 대립각을 세워왔다.

특히 비주류로 머물렀던 이재명 의원이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강성 팬덤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친문과 갈등이 확장했다. 이 의원은 ‘개딸(개혁의 딸)’, ‘개아들(개혁의 아들)’이라 불리는 팬덤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앞서 2017년 대선 경선에서 이 의원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친문 강성 팬덤을 문 대통령이 ‘양념’이라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인식이다.

6월 15일에 재선 의원들 주도로 열린 선거 평가 토론회에서도 팬덤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강성 지지층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가운데 이를 의식한 강요된 침묵과 눈치 보기, 강성 지지층에 기댄 SNS 정치 부상도 분열을 부추긴 요소”라고 지적했다.

원인 분석을 통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해결할 실마리는 찾았지만, 앞으로 정치 일정은 더 큰 파고(波高)를 예고하고 있다. 차기 당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기 싸움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친명계의 한 민주당 인사는 “지선 후 지금까지 나온 이재명 책임론은 자신들의 강성 지지층만으로 승기를 잡기가 어려워지니 이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명분을 없애 경쟁 자체를 제거하려는 포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비대위는 6월 13일 전당대회준비위원장에 4선인 안규백 의원을 위촉하고 룰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선관위원장에는 도종환 의원이 낙점됐다. 쟁점은 전당대회 룰을 정하는 문제다. 현행 전당대회 규정은 ▷대의원 40% ▷권리당원 45%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당원 여론조사 5%다.

친명계는 권리당원과 일반국민 여론조사 비중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1만6000여 명 수준인 대의원 표가 70만 명에 육박하는 권리당원보다 더 큰 결정권을 갖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명분이다. 이 의원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활용하려는 기대가 내심에 깔려 있다. 또 선거권 행사 기준을 현행 ‘6개월 전 입당해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에서 ‘3개월 전 입당해 3회 이상 당비 납부’로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 대선 전후에 가입한 지지층을 고려해서다.

반면 친문계는 전대 룰 변경을 강하게 반대한다. 더 나아가 이 의원의 전대 불출마론을 꺼내 들었다. 친문당권 주자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은 최근 “지금까지 대선 패배 이후에는 (대선 주자가) 약간 물러서서 많은 분의 의견도 듣고 개인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가졌다”며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을 반대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선거 패배 책임자와 계파 갈등 유발자, 문재인 정부 책임자의 불출마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재명·전해철·홍영표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영인 의원은 “기존 지도부에 들어 있지 않은, (선거 패배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은 새롭고 참신한 지도부가 구성되는 게 국민의 바람 아니겠냐”고 말했다.

세대교체 노리는 7080, 친명·친문 동반 퇴진 요구


▎민주당 내에서 586세대를 이을 새로운 정치세대로 ‘79(70년대생, 90년대 학번)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세대교체론의 중심에 선 강병원·강훈식·박용진·전재수·박주민 의원(왼쪽부터).
이런 요구는 세대교체론과 맞물려 급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세대교체론은 계파와 팬덤에서 자유롭고, 국민이 식상해하지 않는 새로운 인물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586 퇴진론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대상은 ‘97세대(1970~1980년대생·90년대 학번)’다. 현역 의원 중에는 강병원·전재수·강훈식·박용진·박주민 의원이 이 범주에 든다. 강병원 의원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내 논의를 통해 좋은 혁신안을 만들어냈는데 그걸 이재명 의원이나 친문 대표 주자나 586 대표 주자가 얘기한다면 국민께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는 정당이라고 비칠 것”이라며 “새로운 젊은 세대가 등장해 ‘한번 우리 당을 바꿔보겠다’고 얘기하면 국민께 다가가는 파급력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의견 표출에 이 의원과 친명계는 언급을 삼간 채 로키(low key)로 일관하고 있다. 세대교체론은 이 의원이 대선 과정에서 강조했던 것이기도 하다.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룰 개정이나 불출마론에 관해서도 논쟁에 가세해 얻을 이익이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수도권의 한 친명계 의원은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당내에 분산돼 있는 기득권을 정리하고 새판을 깔아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세대교체를 오래 고민해온 이 의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