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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17)] 종교적 성지 순례의 원점을 찾아서 

성지 순례로 신·인간·자연에 주목한 인류… 원조는 그리스 신전 

종교적 차원의 순례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황제 스스로가 신이었던 중국에는 없는 문화
신과 나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특별한 ‘나만의 고독한 여정’이 성지 순례의 가치이자 의미


▎튀르키예(옛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에게해 동쪽에 인접한 도시 디딤의 아폴로 신전 내부. 태양이 신전 내부에 비치도록 지붕을 아예 오픈했다고 한다. 기존 신전의 벽은 지금보다 3배 정도 높았다. / 사진:유민호
'아마르나쓰 야트라(Amarnath Yatra), 2년 만에 재개. 100만 명 참가 예상’ 지난 6월 30일 접한 인도발(發) 뉴스다. 힌두교 성지 순례지 아마르나쓰 지역이 오픈되면서 100만 명의 신도가 현지로 출발했다는 소식이다. ‘야트라’는 힌두어로 성지 순례란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년간 중단됐지만, 정부가 다시 허용하면서 6월 30일부터 43일 동안 성지가 오픈된다고 한다.

아마르나쓰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내부에 들어서 있다. 1960년대 서방 히피(Hippie)들이 추앙하던 지상낙원 카슈미르(Kashmir) 지역 중심에 들어선 셈이다. 힌두교 신 ‘시바(Shiva)’는 아마르나쓰의 핵심이다. 시바를 상징하는 거대한 동굴이 들어서 있다. 순례자들의 노래와 춤을 동굴 속 시바에게 바친다. 아마르나쓰 성지에 이르는 길은 1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동토지대다. 보행이 가능한 여름철 두 달 정도가 성지 순례 기간이다. 인도 정부가 직접 나서 순례 기간과 일정을 조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아마르나쓰 성지 순례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연례 행사에 나서는 힌두교도의 규모다. 위험한 산행에다 추운 히말라야 날씨 때문에 평소에도 많지않다. 보통 10만 명 단위로, 최고 기록은 2011년의 63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100만 명을 넘어서는 대규모 참가가 예상된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의 지구촌 풍경이지만, 신에 의존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실종된 상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전염병=종교 귀의’가 일상적이었다. 역병이 돌수록 신에 매달리는 애원이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21세기의 전염병은 다르다. 전 세계가 고통에 빠져들었지만, 기묘하게도 신을 찾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 성직자가 행하는 구원의 기도 대신 고성능 유럽산 백신에 매달리는 것이 전부다. 21세기 코로나19 세상을 보면 19세기 말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부터 떠오른다. “신은 죽었다.”

신의 축복을 구하기 위한 성지 순례

과연 21세기 인간은 종교나 신을 잊은 채, 백신 하나만으로 대재앙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힌두교 아마르나쓰 성지 순례를 보면 그 같은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신을 찬미하고,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르나쓰를 지키는 시바는 천지 창조는 물론 파괴와 대재앙도 동시에 주관하는 분노의 신이다.

추측건대, 올해 아마르나쓰 순례자들은 시바의 영역인 파괴와 대재앙 영역에 집중할 듯하다. 힌두교도는 시바야 말로 전염병을 통한 글로벌 대재앙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파괴·대재앙·분노의 신 시바를 달래고 추앙하자는 것이 아마르나쓰 성지 순례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힌두교는 한국은 물론 서방의 관심에서 벗어난 제3세계의 종교다. 당연하지만, 힌두교도의 세계관도 백신 뉴스에 매달리는 서방과 전혀 다르다. 힌두교는 12억 명의 신자를 가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종교다. 서방 바깥세상에서 보면, ‘전염병=종교 귀의’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의 말은 닳고 닳은 물질주의 세상에 익숙한 생각일지 모른다. 전 세계 인구의 7할에 이르는 비(非)서방권 관점에서 보면 “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의 성지 순례 현황은 힌두교 아마르나쓰를 보면서 주목한 부분이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신에게 구원을 갈망하는 목소리 자체가 극히 드문 나라가 한국이다. 사실 한국은 종교적 차원의 성지가 극히 드문 나라에 속한다. 대대손손 통하는, 전 국민이 합의에 도달할만한 한반도내 성지 자체가 없다. 가톨릭 성지가 곳곳에 있지만 한국인 모두가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굳이 꺼낸다면 종교와 무관한 이념이나 이벤트 성격의 성지는 넘친다. ‘백두대간’이란 거창한 이름의 성지에서 보듯, 민족 자주에 기초한 성지는 최적의 본보기다. 21세기 들어서는 인기 드라마나 영화 세트 현장 같은 곳이 성지라는 이름을 단 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가를 성지라 부르며 집단 순례로 내몰고 있다. 결론은 서방에서 말하는 종교적 차원의 성지와 무관한 곳이 바로 한반도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의 성지 순례도 한국에는 없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성지 순례는 ‘순례자가 종교적 의무를 지키면서 신의 축복을 구하기 위해 성지 또는 본산(本山) 소재지를 차례로 찾아가 참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 ‘성지 순례(Pilgrimage)’는 라틴어 명사 ‘페레그리누스(Peregrinus)’에서 왔다고 한다. ‘외국에서 온(peregre)’과 ‘나라, 지역(agri)’이란 단어의 합성어로, 명사로는 ‘외국인, 이방인’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보통 일생을 통틀어 단 한번 정도 실행하는 길고 긴 여정, 즉 최소한 몇 개월 걸리는 장기 여행이 성지 순례의 고전적 의미다.

왜 한국에는 고전적 의미의 성지 순례가 없을까?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의 정신 세계를 지배한 중국이 근본 배경이 될 수 있다. 중국에는 성지 순례 자체가 없다. 일부 지역에 한정된, 신흥 종교 유적지나 사이비 교주를 위한 곳은 있다. 그러나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 이뤄지는 장기적 차원의 종교적 순례와 ‘전혀’ 무관한 나라가 중국이다. 대륙 내부는 물론 중세 유럽에서 보듯 국경을 넘어 멀리 이스라엘까지 성지 순례를 행하는 식의 발상 자체가 중국에는 없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황제 자체가 성지를 믿지 않고, 황제 스스로가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는 천자(天子) 또는 천제(天帝)로 불린다. 하늘의 아들로서 세상을 통치하는 신의 황제란 의미다. 따라서 종교적 차원의 성지는 천자·천제라는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대립 개념이 된다. 국내 또는 국외 성지 순례에 나설 경우 천자·천제에 반하는 역적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중국 왕조의 대부분은 세금 확보를 위해 원거리 이동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았던 폐쇄적 체제로 유지됐다. 중국(中國)이란 국명에서 보듯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이상 다른 곳으로 여행하거나 이동할 생각 자체도 없었다. 실크로드는 식물성 고착 국가 중국의 실상을 이해할 증거 중 하나다.

보통 실크로드라고 하면 중국산 비단을 가득 실은 낙타의 유럽행 장기 여행부터 떠올릴 듯하다. 주의할 점은 낙타를 탄 장사꾼의 정체다. 한족의 중국인이 아닌 현재 중동 지역의 페르시아인 또는 아랍인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중국까지 가서 물건을 구입한 뒤 중간의 동료들을 연결해 유럽까지 이어달리면서 실어 나른 것이 육지·해상 실크로드 비즈니스의 실상이다.

쇄국체제로 순례 개념 자체가 없던 동양


▎디딤 아폴로 신전으로 향하는 성지 순례 루트. 완만한 언덕을 따라 3일 동안 20㎞를 걷는 여정이다. / 사진:유민호
실크로드는 이들의 비즈니스 네트워크일 뿐 정작 중국인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다. 중간 중간 들어선 숙박 시설이나 안전 시설도 전부 중동 네트워크에 의해 운영됐다. 13세기 몽골이 단기간에 중국 중앙아시아 동유럽까지 석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들 중동 네트워크에 있다. 같은 기마민족이 닦은 길을 따라 몽골이 그대로 이어달린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해외로 나갈 생각 자체가 없는 민족이 중국의 한족이다. 이동형 소·양·염소의 몽골이나 기마민족과 달리 고착형 돼지를 키우는 민족이 바로 중국 한족이다. 페르시아인·아랍인들이 찾아와 물건을 구입한 뒤 유럽에 되파는, 21세기 보따리 장사 같은 것이 실크로드 비즈니스의 전부다. 실크로드에서의 중국과 중국인의 위상은 수동적 의미에 그친다.

중국이 해상 실크로드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세계에 자랑하는 14세기 정화(鄭和)의 해상 진출도 마찬가지다. 정화는 한족이 아니다. 중동 출신 검은 얼굴의 이슬람교도다. 정화가 바다를 통해 접한 나라의 대부분은 중국 서쪽의 이슬람국이다. 한족이 아닌 정화가 해상 진출 선봉에 선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정화의 해상 진출이 이뤄진 뒤 중국은 해금(海禁), 즉 바다를 통한 접촉이나 교류를 전면 금지시킨다. 정화를 통한 해상 실크로드 자랑에 열을 열리지만, 실제는 바다를 통한 외국문물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쇄국의 나라다. 왜일까? 정화의 해상 진출은 주변국에서 조공을 받기 위한 탐색전에 불과했다. 서방의 신대륙 진출에서 보듯 새로운 세상에서의 도전과는 무관한, ‘중국이라는 우물 안 세계관’이 전부다. 현재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해상 실크로드 개발의 근거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이 신대륙에서 보여준 수백 년간에 걸친 모험이 아닌, 조공을 받기 위한 실험성 단발 이벤트가 정화 스토리의 전부다.

이상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중국에 왜 성지가 아예 없는지, 성지를 향한 장기 순례에 관한 발상 자체가 왜 없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 쇄국 세계관을 120% 수입해 한반도 전체에 적용한다. 명나라를 잇는 소중국을 자처하고 자랑한 것은 물론이다. 명나라는 1662년 망한다. 그러나 조선은 19세기 말까지 줄기차게 명나라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숭배한다. ‘성지=반역자들의 소굴’, ‘성지 순례=혹세무민 일탈행위’로 해석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것은 물론 외국과 담을 쌓고 살아간 쇄국체제의 나라가 조선이다.

국경 넘는 성지 순례를 장려한 서양


▎튀르키예(옛 터키)의 디딤으로 가는 성지 순례 경로. ①은 기존 추정 순례 루트. ②는 1985년 독일 고고학팀이 발견한 새로운 순례 루트로 바다가 아닌 내륙의 산을 통한 길이다. 협곡으로 이어진 길로, 비교적 편하게 걸을 수 있다. ②를 통해 2500여 년 전의 흔적을 더듬었다. / 사진:구글 지도
지난 6월 한 달 내내 고대 그리스 성지 순례의 역사에 매달렸다. 장소는 튀르키예(옛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에게해 동쪽에 인접한 도시 디딤(Didym)이란 곳이다. 태양의 신 아폴로를 모시는 곳으로, 에게해 최대 항구인 아나톨리아 이즈미르(Izmir)에서 160㎞ 남쪽에 있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디딤 아폴로 신전은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크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도 전시돼 있지만, 기둥(Column)을 받치는 둥근 대리석 기반의 지름이 무려 2.6m 정도에 달한다. 신전이 크다는 것은 신전 순례자가 많았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 역사를 보면 기원전 5세기 에게해를 대표하는 순례지 중 하나가 디딤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도 지형적 조건을 보면 디딤을 본 뜬 순례지로 추정된다. 디딤 아폴로 신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기원전 8세기부터로 추정된다. 현재 디딤 신전의 골격은 기원전 55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아 침략으로 파괴되지만, 다시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지원 하에 복구된다. 기독교는 그리스 신전 수난사의 최종 완결판이다. 일신교 사상에 의해 수많은 그리스 신들이 혹세무민 잡신으로 추락한다. 기독교 국가 로마는 서기 385년 디딤 신전의 문을 닫는다. 1000년 이상 지속된 성지 순례의 역사도 끝난다.

성지 순례는 동과 서의 세계관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중국과 달리 서방은 국가 국경을 넘어선 종교적 차원의 성지 순례를 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장려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전쟁을 멈췄다. 경기장 주변의 제우스와 헤라 신전으로의 성지 순례가 이유 중 하나다.

서방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발아기인 기원전 3000년으로 돌아가 보면 인류 초기 성지 순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출발 당시의 도시 인구는 많아야 1만 명 정도에 그쳤다. 신과 신전도 외진 곳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 들어섰다. 그러나 신들을 만나려는 도시 밖 사람들의 행렬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서방 지도자들은 신탁(神託)을 주장하거나 아예 신을 자처하면서 군림했다. 제정 로마 창설자 아우구스투스와 그 이후의 황제들도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됐다. 그러나 이들 지도자들은 국경을 넘어 행하는 성지 순례를 막지 않았다. 왜 일까?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한 지도자들조차도 하늘의 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신으로 진화한 로마 황제라지만, 주기적으로 그리스 신전에 들러 제우스와 아폴로를 경배했다. 천자·천제의 나라 중국에는 그런 역사가 없다. 도교에서 볼 수 있지만, 황제를 모신 사원을 성지 순례라는 명목으로 문을 열었을 뿐이다. 새로운 황제가 나타나면 곧 사라진, 단발성 이벤트 성지인 셈이다.

그리스 신전 중 가장 큰 ‘디딤 아폴로 신전’


▎아폴로 신전 앞에 남아있는 대리석 순례길. 3일간 순례를 마치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이 대리석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듯하다. / 사진:유민호
디딤 아폴로 신전의 성지 순례는 특이한 형식으로 이뤄졌다. 곧바로 디딤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북쪽의 고대 항구 도시 밀레투스(Miletus)에서 아폴로 신전까지 걸어가는 순례가 일반적이었다. 대략 20㎞에 달하는 순례로 3박 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밀레투스의 순례 출발점은 지금도 남아있다. 아폴로의 분신인 델피(Delphi)를 모신 델피니온(Delphinion) 신전으로, 원래는 지름 30m 정도의 원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아폴로의 상징 델피는 돌고래를 뜻하는 돌핀(Dolphin)의 그리스어에 해당된다. 그리스 당시 돌고래는 항해의 안전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아폴로 신전은 에게해와 지중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고대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성지 순례지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건립됐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오라클(Oracle)’, 즉 예언에 있다. 알렉산더대왕도 오라클을 듣기 위해 그리스 델피 신전에 들렀다. 미래를 예견하는 당대 최고의 인기 신이 바로 아폴로다. 힌두교 시바가 그러하듯 아폴로도 상반된 얼굴을 가진 신이다. 예언만 아니라 전염병이나 질환을 통해 국가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신이 아폴로이기 때문이다. 병 주고 약 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폴로는 인간의 품격을 높인 음악과 예술의 신으로도 통한다. 디딤에 찾아가 미래 예언을 듣고, 병 치료에 관한 아폴로의 축복 기도도 받자는 것이 당시 성지 순례의 최대 목적이었다. 그러니 무서운 아폴로에게 뭔가 바라기 전에 신을 맞이할 깨끗한 몸과 마음이 필요했다. 3일간에 이르는 순례는 그 같은 준비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비밀에 쌓인 순례 루트’는 디딤 아폴로 성지 순례에 특별히 관심을 쏟은 이유다. 고대 기록에 의해 20㎞ 순례에 관한 글들은 있지만, 정확한 루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고고학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고고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디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고대인들의 순례 루트 발굴에 나섰다. 독일 베를린 고고학팀과 관련된 현지인과의 만남은 그 같은 과정 속에서 얻은 귀중한 단서다. 70대 노인으로, 37년 전인 1985년 50여 명의 독일 고고학자를 도와 20㎞ 순례 루트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안내를 받으며 순례 루트 현장으로 향했다.

독일 고고학팀이 발견한 순례 루트는 바다가 아닌 내륙의 산을 통한 길이다. 산과 산 사이의 협곡으로 이어진 길로, 비교적 편하게 걸을 수 있다. 100%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순례 루트로 사용됐을 근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순례 도중의 숙박용 집이나 신전으로, 바닥에 구르는 대리석과 작은 우물이 증거다. 물을 기반으로 하면서 신전과 숙박용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밀레투스 작은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지만, 순례 루트 곳곳에 조형물과 신에게 바치는 제사용 도구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냥 하루 종일 걷는 것만이 아니라 중간의 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디딤으로 향했다고 볼 수 있다. 산길이라지만, 20㎞ 거리를 3일이나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 떠나는 신과의 만남도 매력적

순례의 최종 목적지인 디딤의 아폴로 신전 바로 앞에는 폭 10m, 길이 150m 정도의 길이 들어서 있다. 짧지만, 평평한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공간이다. 3박 4일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신전에 도달한 순례자들의 기쁨과 흥분이 넘실되는 듯하다. 상상컨대 순례자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아폴로 신전을 우러러봤을 것이다. 신에 바치는 동물을 신전의 신관(神官)에게 전한 뒤 생로병사에 관한 축복과 예언에 매달렸을 것이다.

신관이 대신 전했던 아폴로의 목소리를 120% 믿었던 것이 고대 순례자들의 순리이자 상식이었다. 아폴로 예언의 특징이지만 항상 양면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좋게 볼지, 나쁘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디딤에 머무는 동안 순례 루트 마지막 길을 수차례 찾았다. 오렌지 색깔 일몰이 시작되기 직전 찾아가 고대 순례자들이 흘렸을 기쁨의 눈물을 상상하며 통감했다. 당시의 길을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건하고도 순결한 인간의 영령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한국에서 성지 순례라고 하면 ‘해외’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이스라엘·이탈리아·인도·스페인은 해외 성지 순례의 대명사에 해당될 듯하다. 내용을 보면 ‘집단’으로 떠나는 성지 순례가 기본이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 떠나는 신과의 만남도 매력적이다. 외로움에 빠진 ‘고독(loneliness)’이 아닌 혼자서 살아가는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고독(Solitude)’에 기초한 성지 순례도 좋다. 1대 1 대면, 그게 신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친구나 가족과의 시간은 평소에도 가능하다. 일상적 시간이 아니라 신과 나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일생일대 특별한 ‘나만의 고독한 여정’이 성지 순례의 가치이자 의미일지 모르겠다.

디딤 순례 루트를 찾던 중 깨달았지만, 성지로 가는 에게해 밤하늘의 별과 달이 너무도 밝고 맑다. 한여름 밤의 폭죽처럼 느껴진다. 고대 순례자들도 밤하늘의 폭죽에 주목했을 것이다. 신을 잊은 사회, 신이 죽은 시대, 신이 불필요한 시간으로 접어든지 오래다. 혼자서 떠나는 성지 순례가 한층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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