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인터뷰] 윤 정부 외교,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에 묻다 

“‘안보 포퓰리즘’ 버리고 실리 외교 무게 실어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국가안보실이 장악한 외교 라인 과욕이 ‘48초 환담’, ‘한·일 굴욕회담’ 참사 자초
다변화하는 세계 패권 경쟁에서는 이슈별로 국익 우선하는 실용주의가 바람직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외교 참사가 국가안보실이 외교 라인을 장악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과정에서 드러난 외교 난맥상은 국정 동력을 약화하는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윤 대통령 부부가 만들어내는 가십거리에 외교·의전 라인의 우왕좌왕이 더해져 ‘외교 참사’ 수준에 이르렀다. 잇따르는 외교 난맥상을 실수와 발뺌으로 잠재우기에는 국제 정세가 엄혹하다. 미·중 대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다 북한의 핵실험 위협이 더해졌다.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을 다시금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10월 7일 [중앙일보] 서소문 사옥에서 외교 전문가인 김준형 한동대 교수를 만나 외교 난맥상의 문제를 진단했다. 김 교수는 2019년부터 2년간 국립외교원장을 지냈다. 미국 민주당과 진보 쪽 조야(朝野)와 국제 정세에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 성향인 윤석열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대통령실 과욕이 문제, 외교는 외교부에 맡겨야

국립외교원장을 마친 뒤에는 활동이 뜸해 보인다.

“예전에는 보통 10~11월에 미국에 갈 일이 많았는데 정권이 바뀐 뒤에는 초청하는 곳이 없다. 진보 성향의 이전 정부에서도 미국 출장단을 꾸릴 때 균형을 맞추느라 성향이 다른 전문가 몇 명을 넣곤 했는데 지금은 아예 빼버린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전문가들 속 얘기를 제대로 못 듣는 점이 좀 아쉽다.”

외교 그룹 성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게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우리에게 이러이러한 목소리들이 있다는 걸 비록 소수 의견이라도 미국에 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러면 미국이 한국을 잘 못 판단할 수도 있다. 또 미국의 여러 시각을 우리가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미국에서 들리는 소식이 있나?

“일단 진보 진영에서는 한국을 꼭 일본처럼, 전적으로 미국 편으로 만드는 게 미국의 이익이 되느냐는 얘기가 있다. 오히려 중국에 레버리지(지렛대)가 될 수 있는 한국이 미국에 이익이란 거다. 저는 그 의견이 맞다고 본다.”

최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장례식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로 연일 해외 순방에 나섰던 윤 대통령의 정상 외교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대체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하고 오면 지지율이 올라야 정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초기에 얼마나 잘했나. 이렇게 나갔다 올 때마다 지지율 까먹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취임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국민들이 벌써 외교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

“먼저 기본 설계부터 잘못됐다. 영국 조문과 미국의 국제회의는 정상적인 회담을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신임 대통령으로서 외교무대에 데뷔해 빌드업한다는 마음으로 갔어야 했다. 출발 전부터 목표와 욕심이 너무 컸다. 여기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플랜 B를 세우지 않은 게 결국 바이든과의 ‘48초 환담’, 일본과의 ‘굴욕 회담’ 논란이 벌어진 거다.”

정상 외교는 미리 상대국과 조율을 해서 동선과 내용을 준비하지 않나?

“당연하다.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때는 수주에서 수일 전부터 미 국무부와 단어 하나까지 다 조율한다. 우리는 정식 회담을 하는 거로 알았는데 실제로는 격이 낮은 ‘풀어사이드(pull aside, 약식회담)’도 못했잖나. 적어도 이삼 일 전에는 알았을 텐데 왜 대책을 안 세웠는지 모르겠다. 일본과도 그렇다. 2년 9개월 만에 양국 정상이 만나는 거면 동선은 물론이고 회담 개최 발표 문구까지 합의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회담인지 환담인지도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게 결국 드러났잖나. 설계에서 의전까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대책 마련할 시간은 충분했다.”

외교부는 늘 해오던 매뉴얼이 있었을 텐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청와대와 깊이 연결된 장관하고 연결되지 않은 장관의 차이는 엄청나다. 내 경험상 청와대와 연결되지 않은 장관은 실권이 없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권력 내부자는 아니지 않나. 지금은 김성한(국가안보실장), 김태효(국가안보실 1차장)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봐야한다. 외교적 실수가 국내 여론에 영향을 끼치니까 자꾸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국가안보실이 외교 라인을 장악했다는 뜻인가?

“일례로, 대통령이 해외 나갈 땐 국가안보실장이나 1차장 둘 중 한 사람은 국내에 남아서 상황을 지휘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이번에 김성한 실장과 김태효 1차장 모두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렇게 되면 외교부의 정책 조언에 힘이 안 실린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보고받는 자리에서 실무자들에게 얘기할 기회를 거의 안 준다는 소리가 여러 경로로 들린다. 국·과장들이 대통령에게 의전부터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설명해야 하는데 회의 시간의 10%도 안 준다고 한다. 정치권력이 압도적으로 나오면 어느 순간부터 관료들은 입을 다문다. 그게 관료 조직의 속성이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까?

“외교는 외교부에 맡겨야 한다. 대통령 된 기분을 가장 만끽하는 게 해외 순방이라고 한다. 과거 반미 성향 강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다녀와서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외교부가 그만큼 의전이나 명분으로 사람 설득하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문성으로는 저들을 따라올 집단이 없다. 외교부에 맡기고 대통령실은 정책 조정과 지원에 집중하는 게 맞다.”

미국의 경제 동맹 참여 압박 더 거세질 것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관해 얘기해보자. 북한의 핵 위협을 미국 정가는 어떻게 보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 원칙) 때문에 비핵화가 더 안 됐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내 진보와 보수 모두 북한을 비핵화할 수 있다는 신화에 매몰돼 현실적 접근을 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두고 군비 축소나 핵확산 방지 등 관리가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미국이 북핵에 대응해 한·미·일 동맹을 더 강화할 가능성은 없나?

“강경파들은 한·미·일 동맹 강화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러시아, 중국과의 전선이 동시에 열린 것도 감당하기가 버거운 현실이다. 한반도 위기 상황까지 벌어지면 전략적으로 더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정도가 미국 진보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미국 보수 진영은 어떤가?

“미국 내 진영 분포는 국방부 중심의 강경파와 그보다 좀 유연한 국무부 중심의 바이든 쪽 그룹이 있다. 아직까지는 국무부 그룹이 주류다. 이들은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는 것 같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기조는 지키지만,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없는 거다. 동시에 북한 도발에 과거처럼 사납게 대응하지 않는 게 보이지 않나.”

우리 정부는 어느 쪽과 좀 더 긴밀한가?

“국방부나 백악관의 한국 데스크 쪽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백악관 한국 데스크는 우리 교포 출신이 많고 대체로 강경파로 분류된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압박과 봉쇄를 통해 붕괴시켜야 한다는 근본주의 성격이 짙다.”

그렇다면 미국 보수 진영의 한국 정부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정부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한국의 보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좀 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망루 사건’에 미국의 충격이 컸다고 한다. 2015년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때 시진핑 중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망루 위에 올라 참관한 일 말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이었는데 한국 정부가 워낙 강경해서 자기들이 끌려갔다고 한다. 그게 변명인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저들의 시각이 그렇다.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나 ‘칩(Chip) 4’(반도체 동맹) 참여를 압박한다든지 이런 건 시작에 불과할 거다. 일본에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에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사이 지렛대 역할로 실리 추구해야

우리 정부도 미국의 요구에 발을 맞추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거의 추종하는 것 같다. 외교부 안에 인도·태평양 전담 부서가 신설된다고 한다. 미국과 진영을 같이한다는 뜻이 되는 거다. 다만 미국의 전략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바이든 방한 전 우리 정부가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안보협의체) 가입 의사를 전했을 때 미국이 딱 선을 그었다. 미국의 의도를 여기서 읽어야 한다.”

어떤 의도가 숨어 있나?

“과거 미국은 단일 대오로 동맹을 맺었지만, 지금은 맞춤형으로 촘촘해졌다. 커트 캠벨(미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말했듯이 ‘비스포크(Bespoke) 전략’이다. 이슈별로 동맹을 구축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거다. 미국이 한국의 쿼드 참여를 거절한 이유는 쿼드의 핵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인도여서다. 한국은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즉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다. 앞으로 미국은 IPEF, 칩4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계속 압박할 거다.”

중국은 우리의 교역 1위 상대다. 미국 요구를 수용하는 게 가능할까?

“우리에게 리스크이기도 하지만, 레버리지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은 우리 도움 없이 절대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을 완성할 수 없다. 중국은 우리 없이 반도체 굴기 못한다. 우리가 미국에 기울어도 반도체 분야는 못 때리는 이유다. 자기도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드(THAAD) 배치 논란 때 한국을 지나치게 밀어붙여서 너무 미국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중국 내에 있다. 그래서 한국을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아직 한국이 완전히 미국쪽으로 가버리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다.”

미·중 양국과의 관계 문제는 늘 애매하고 아슬아슬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교역의 중국 의존도가 30%를 넘는 건 좋지 않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우리 정부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미국으로 기운다는 점이다. 경제적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는 ‘프리 앤 오픈’이란 말이 붙는다. 아세안(ASEAN) 국가들의 노력때문이기도 하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미국 편에 완전히 설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이 ‘프리 오픈’을 붙인 거다. 이걸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IPEF에도 들어가고 칩 4에도 참여하되, 중국을 배제하는 선봉이 되지 않는 유연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슈별로 접근해야 국익 챙길 수 있어


▎미국 상무부는 9월 6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전략’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 동맹 ‘칩 4’에 한국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두고 친일 비판이 나온다.

“현 정부에서 한·미·일 관계에 있어서 ‘안보 협력’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안보 협력이라고 하는 순간 유사시 어떤 방식으로든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안보의 경계가 희미해지면 외교를 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무기 쌓고 긴장을 올리는 안보 우선주의는 한국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북한의 핵 위협과 도발이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데 대응은 필요하지 않나?

“비핵화는 신화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법제화한 순간 비핵화는 사실상 끝난 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담대하게 돕겠다지만, 포기 안 하면 무슨 수가 있나. 국제연합(UN)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중국과 러시아가 빠진 대북 제재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안보 포퓰리즘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만 올려줄 뿐이다.”

외교 전문가로서 정부에 충고를 한다면?

“대통령실이 바뀌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망령에서 그만 벗어나라고 하고 싶다.”

어떤 의미에선가?

“외교는 정권과 정권이 아닌 국가와 국가로서 상대하는 거다. 지금 정권이든 전 정권이든 외교 상대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대표다. 전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건 정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국내 정치가 외교를 좌우하니 미국,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거다. ‘문재인보다 낫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윤 대통령의 욕심은 이 정부 내내 발목을 잡을 거다.”

외교적으로는 어떤 전략을 펴는 게 좋을까?

“이 정부는 경제와 군사적으로 ‘동맹’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편 아니면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흑백론에 빠져 있다. 지금 세상에 공산주의 국가가 어딨나. 그냥 독재, 권위주의일 뿐이다. ‘친미’, ‘반미’를 떠나 국익을 우선하는 실용주의로 가야 한다. 이슈별로 접근해야 국익을 챙길 수 있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11호 (2022.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