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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32) 홍성 죽도 산야에서 

 

명품 모임 'J포럼' 사람들과의 낭만 기차 여행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참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어요! 우주의 탄생을 노래한 〈코스모스〉, 생명의 근원을 노래한 〈이기적 유전자〉, 인간의 발전사를 노래한 〈총균쇠〉에 이어 오랜만에 좋은 책, 연약한 인간의 죽음을 노래한 〈죽음의 역사〉를 읽었어요.”

“나도 옛적에 세권을 읽어 봤는데, 참 좋은 책이죠!”

“아! 그럼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을 읽어 보셨겠네요.”

“아! 그런 책도 있나요? 꼭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거의 매주 산에 가고, 바쁜 사업을 하는 분이 언제 그렇게 책을 읽으세요.”

“평일에는 지인들과 술 먹고, 또 열심히 일하고, 길을 가다 서점이 보이면 한 열댓 권 정도의 책을 사 놓고는 산이나 여행을 안가는 주말에, 특히 추석이나 설날 연휴에 작정해서 읽어요. 보통 100페이지면 4시간 정도면 정독하는데, 약 20시간이면 500페이지 한 권을 하루에 다 읽어요. 지난주에는 J포럼에서 인연을 맺은 신예 경제학자 고영경 박사님의 〈7ups in Asia〉, ‘한국의 닥터 둠’으로 알려진 서강대 김영익 교수님의 〈경기순환 알고 갑시다〉 경제학 책 두 권을 하루에 뚝딱 읽고, 그 전날에는 〈죽음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어요. 참, 멍청한 나의 뇌도, 그렇게 읽는 것에 습관이 됐는지… 딱 그때만 활성화돼서 읽다보면 어느새 힘든지도 모르고 즐겁게 읽고 있어요.”

“나는 시간이 없어 책 한권을 며칠을 걸쳐 읽다보니, 앞의 내용을 다 까먹어서 책은 다 읽었는데,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저는 책을 읽고 나서 바로 그 생생한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독후감이나 후기를 써요! 그래서인지 머리에 오래남고, 읽은 책 내용을 비교적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물론 쓰기 싫은 날은 안 써요 (하하)….”


“딴딴딴~~딴딴딴~~ 이번 역은 인물의 고장, 충절의 고장 홍성 홍성역입니다….” 기차여행길에 동행한 분과 한참 대화를 나누다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오늘 우리의 목적지 홍성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J포럼에서 만난 동기들과 함께 떠나는 야외 산행이다. 회원 40여명 대부분이 대표, 조직의 장이나 간부, 전문가들로 나름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모두 세련되고 예의와 품격,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분들이다. 그렇게 존경하는 분들과 올해 첫 단체 모임으로 충남 홍성으로 기차여행을 준비한 것이다. 홍성역에 도착하자 서울 청량리역장을 반납하고 고향 홍성역장에 부임하셨다는 김명철 역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휴일도 없이 고향을 알리고자 나오셨다는, 오늘의 특별가이드 역장님이 기적 소리처럼 우렁차게 홍성에 대한 소개 말씀을 해주셨다.

“홍성은 천수만과 어우러진 수산물의 보고로, 대하·우럭·새조개·꽃게·새우 등 사시사철 싱싱한 수산물이 풍부하고 잔잔한 은빛 수면 바다로 석양이 아름다우며, 괭이갈매기 등의 철새 도래지로 새들의 천국입니다. 홍성군은 조선시대에는 홍주라고 불렸는데, 홍주목사가 부임해 근무했던 큰 고장으로 1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 조선 시대 사육신 성삼문,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 독립운동가였던 백야 김좌진 장군, 화가 이응노 등이 태어나고 자란 인물의 고향이자 충절의 고장입니다. 특히 광천 새우젓은 토굴에서 숙성시켜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데, 그 유명한 광천시장이 홍성에 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홍성역에서 불과 5분여 만에 홍성읍성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홍성읍성을 구석구석 감상하고 싶었는데, 섭씨 33도가 넘은 폭염에다 시간도 빠듯해 차 안에서 문화 해설사님의 설명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홍성읍성은 1972년 10월 14일 사적으로 지정됐고 면적은 34만6961㎡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홍성읍성의 둘레는 533보(步) 2척(尺)이며, 성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성은 1906년 을사늑약의 체결을 반대하여 민종식(閔宗植), 이세영(李世永) 등이 일으킨 의병부대가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을 격퇴시킨 사적지로도 유명합니다.”

설명을 듣다보니 너무 아쉬워서 운전기사 분에게 부탁을 드려 차에서 내렸다. 마음에 드는 사진 두 장만 서둘러 찍고 인근의 김좌진 장군 생가를 찾았다. 김좌진 생가는 북쪽으로 삼준산, 남쪽으로 삼불산, 동쪽으로 불무산이 장군의 생가를 에워싸고 와룡천이 앞마당에 흐르고 있는 길지였다. 풍수지리로 보면,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만한 명당자리라고 한다.

김좌진(1889~1930년) 장군은 홍성에서도 부유하고 명문가로 꼽히는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한학을 배우고, 하얀 명마를 타고 무예와 호연지기를 길렀다. 한양에서 신교육을 받고 큰 깨우침을 얻은 김좌진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형이 가까운 친척집에 양자로 갈 무렵인 불과 17세 때 30명의 노비에게 재산을 골고루 나눠주고, 노비 문서를 불태워 해방시켜줬다고 한다. 더불어 그 큰 저택을 ‘호명학교’로 개조해 후학을 가르쳤다고 하니 훌륭한 장군이기 전에 조선이 내세울만한 인문주의자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이었다. 큰 인물로 성장한 김좌진은 광복군 북군로정서 사령관으로서 1920년 10월 21~25일, 5일간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일제 탄압 36년간의 무장투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워 우리 한국인의 가슴에 영원히지지 않는 별이 된다. 그런데 너무나 젊고 안타까운 나이 41세에, 1930년 1월 24일 한때 김좌진의 가솔이었던 고려공산당 청년회원에 의해 죽고 만다.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이 때에 죽어야 한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국,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용감하고 훌륭한 장군도 한순간에 이렇게 쓸쓸히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 생각하니 왠지 허망하고 가슴이 아파왔다.


김좌진 장군 생가를 떠난 지 10분도 채 안 돼 눈앞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천수만(淺水灣)이었다. 한 눈에도 마음이 확 트이고 상쾌해졌다. 천수만은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반도의 남단에서 남쪽으로 뻗은 천혜의 만(灣)으로 태안군의 안면도, 서산시의 부석면, 홍성군 서부면, 보령시 등에 둘러싸여 있다. 안면도의 최남단인 영목과 부남호의 최북단 기준으로 할 때 길이만 40㎞에 이른다. 갯벌을 옥토로 만드는 간척사업이 진행돼 서산시 부석면 창리와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잇는 방조제로 막힌 서산A지구와, 태안군 남면 당암리와 서산시 부석면 창리를 잇는 방조제로 막힌 서산B지구가 차례로 완공됐다고 한다. 1997년 방조제가 완공됐고, 이에 따라 생겨난 농경지가 A지구 6376㏊, B지구 3745㏊로 총 1만121㏊에 달한다. 그 후 농업 경제성이 악화하자 간척사업을 주도한 현대건설이 2007년부터 천수만 부지 주변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만들어가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매 초마다 마시지 않으면 죽는 산소는 숲에서 30%, 갯벌에서 70%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갯벌의 가치가 크다. 그런 천혜의 자연의 보고가 간척사업으로 사장돼 너무 아쉬운 느낌도 들었지만 더운 날, 자동차로 탁 트인 천수만을 냅다 달리는 그 맛도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는 일품이었다. 우리는 천혜의 천수만을 달려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 죽도에 입성하기 위해 남당항에 도착했다.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죽도. 죽도는 홍성군 서부면 서쪽에 있는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천수만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우럭·대하·바지락 등이 풍부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사계절 맛볼 수 있으며,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남당항 바로 앞 약 3.7㎞ 지점에 위치해 있어 배를 타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올망졸망 8개의 섬이 자식같이 달라붙어 있어 정말 아름답고 귀여웠다. 마치 세 살 먹은 꼬마여자아이 요람처럼 깜직하고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예쁘다. 죽도의 최고봉, 해발 약 50m의 제1전망대 산에 올랐다. 저 바다 멀리 육지의 공장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아득하고, 오뉴월 뙤약볕에 뭉게구름 토실토실, 수묵화를 정성껏 뿌려 놓은 듯 작은 섬들이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죽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있다. ‘그림이 있는 수목원’이다. 금강송과 연못, 각종 조형물과 꽃과 나무들, 그리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가득하다. 홍성군 광천읍 매현리 3만 평의 대지 위에 목본류 460여 종, 초본류 870여 종, 총 1330여 종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림이 있는 수목원은 서해와 근접해 있어 바람이 많고 습도도 높은 편이라 꽃의 개화시기가 육지에 비해 2주 정도 늦어지는 지리적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림이 있는 수목원은 한 인간이 30여 년간 피땀을 흘리며 노력해 2005년 개원했다고 한다. 2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과 한쪽 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구족화가, 바로 이 수목원의 아들이 직접 그렸다는 아름다운 그림들에 고개가 숙여졌다. 장애는 잠시 불편한 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벌써 해가 서해 바다에 뉘엿뉘엿….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예정돼있는 광천토굴새우젓시장으로 달려갔다. 광천토굴새우젓시장은 토굴에서 숙성·발효시킨 새우젓을 특화시킨 홍성군 광천읍에 있는 전통시장이다. 옛날부터 젓갈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광천시장은 1990년대 중반, 광산이 폐광되자 토굴에서 새우젓을 숙성·발효시키는 방법이 개발돼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아직도 전국 새우젓의 70%를 광천토굴새우젓시장에서 유통시키고 있다고 한다.

오후 6시 24분, 멋쟁이 김명철 홍성역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광천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용산역을 향해 내달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멋지고 교양 있고, 향기로운 사람들과 함께한 홍성여행은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함께하는 기쁨…. 바로 이런 게 행복이고 인생의 맛이 아닐까!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1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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