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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11) 전세사기와 갭투자의 이면, 전세라는 ‘그림자 금융’ 해법 

 


▎6월 5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복합문화센터에 마련된 ‘찾아가는 전세피해 상담소’에서 관계자들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빌라왕 사태로 촉발된 전세사기 드라마는 희미해지고, 거대한 쓰나미처럼 역전세가 밀려오고 있다. 사기꾼들을 적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의 영역을 넘어 이제 경제의 영역으로 그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다.

6월 4일 한국은행은 ‘깡통전세 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에서 작년 1월보다 올해 4월 전세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집들이 52만 가구에서 103만 가구로 2배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전체 전세가구의 절반이 역전세의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전세사기로 시작한 깡통전세의 비극은 이제 역전세로 일반화돼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전세는 주거 문제 아닌 금융경제 문제


▎한국은행은 조사국은 6월 4일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을 통해 전국의 깡통전세와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을 추정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로 출발한 이 깡통전세, 역전세 모두 주거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정할 때가 왔다. 전세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다. 갭투자 집주인은 공적금융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도 다 누릴 수 없게 만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때문에 전세라는 사금융을 이용한 채무자일 뿐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빌린 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됐다. 그냥 두면 파산으로 이어진다.

주택가격 하락은 늘 소비 위축에 의한 경제 침체를 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돈의 흐름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역전세의 금융 규모 자체가 너무 크다. 3월 6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전세보증금 포함 가계부채 추정 및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전세보증금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1058조 3000억원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율이 4위인 우리나라가 이 전세대출까지 포함하면 1위로 올라선다. 2021년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05.8%지만, 전세보증금을 합할 경우 이 비율은 156.8%로 껑충 뛴다. 그러니 금융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정치인과 전문가가 지금의 역전세 문제, 다시 말해 경제 문제를 ‘갭투기한 악덕 집주인’과 ‘불쌍한 임차인’이라는 선악 구도로 만들어 ‘권선징악’적 해법만을 논하고 있다. 그들에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말해 주고 싶다. “왜 갭투자한 집주인을 도와야 하느냐”며 보증금반환목적 대출의 DSR 제외를 반대하는 이들은 정말 경제를 모르는 이들이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둑이 터질 수도 있는데, 그 갈라진 틈을 메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파국을 부르는 사람들


▎5월 2일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건축업자 A씨의 사무실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둑이 터지면 세입자는 그나마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많은 수의 임차인이 정의라는 명분으로 보증금반환목적 대출의 DSR 제외를 반대한다. 집주인은 대출을 받아 빚을 더 지더라도 채권자인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어 한다. 경매로 집을 넘겨버리고 아예 대출을 갚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를 전략적 부도(Strategic Default)라 하는데, 실제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발생했었다. 2010년 미 오바마 정부는 금융위기에 대응해 모기지 모라토리엄을 시행했지만, 집주인들은 대출을 갚지 않고 오히려 전략적으로 부도를 택했다. 그들에겐 그것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집주인들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을 돌려주고 싶어 한다.

이제는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임차인을 위해 진정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때다. 그들은 돈을 돌려받고 싶어 한다. 그들이 돌려받아야 하는 돈을 모든 국민이 나눠 내야 하는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집주인이 책임지는 대출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낫겠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선진 금융기법이 전세를 대신해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6월 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 신용이 높아도, 충분한 담보물이 있어도, 오로지 소득에만 근거해 대출하도록 강제하는 후진적 금융구조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다. 전 정부에서 15억원 이상의 주택에 대해 대출을 금지했던 정책은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최고봉이었다.

모든 것을 국가가 개입하고 정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금융기법이 발전하지 못한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나라 금융업계는 주택의 실제 가치에 대해 어떻게 측정할지, 그리고 그 실제 가치의 몇 %를 대출해줘야 안전한지 판단하는 시스템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정부가 개입하고 정부가 결정하니 말이다. 그래서 위험을 예측할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적은 자본으로 큰 수익을 창출하는 선진 금융기법이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고령화 인구절벽시대에 국민연금은 더 큰 투자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투자도 투기로 보는 후진적 시각으로는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의 창출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고 싶은 포퓰리스트들을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레버리지에 기반해 확대‧재생산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연자방아 돌리는 전래동화처럼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머무를 것인가? 이제는 경제적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

금융기법에 근거한 자가보유 촉진정책 이야기할 때

LTV 한도가 80%여도 모든 것이 소득에 기반한 DSR 규제에 막혀있는 한, 전세라는 사금융을 이용하려는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전세는 일종의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으로 중앙은행의 규제나 감독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역전세 같은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공금융을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만큼 사금융 시장인 전세 시장으로 밀려난 금융소비자들이 집을 담보로 사금융을 이용하는 것, 이것이 전세의 본질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 그림자 금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역전세 리스크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전세 소멸론을 말하지만, 사실 금융기관들의 담보대출 리스크 관리기법을 선진화하고 대출규제를 완화해 사금융으로 간 대출을 공금융으로 끌어오면 전세는 저절로 소멸할 것이다.

자가 주택을 마련하기 쉽게 모든 이들에게 공금융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해법이다. 국가가 법으로 전세를 금지해봐야 부작용만 발생할 뿐이다. 월세에서 자가로 이동하는 징검다리인 전세를 불태우는 것이 돼 주거불안만 심화시킨다. 이제는 ‘자가 보유 촉진 정책’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임대주택만을 강권하던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임대와 자가, 선택의 자유를 넓힐 수 있도록 주택 정책과 금융 정책을 촘촘히 짜야 한다. 전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새 정부의 철학을 상징하는 키워드인 ‘자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에 기반해 전세제도의 손질 또한 국가의 무분별한 개입이 되지 않도록 자기검열에 가까운 신중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 소개: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감정평가학회 명예회장,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연구회장.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감정평가학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서울부동산포럼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부동산경제학‧부동산대량감정평가‧부동산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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