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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10) 정책발(發) 삼각파도, 전세 사기를 일으키다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5월 3일 오후 서울 은평구청에서 전세 피해 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가장 비싼 전셋집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만기가 2023년 도래하고 있다. 전셋값은 2021년 역대 최고가를 찍고, 2022년 가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4억원 빌라를 4억2000만원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을 만큼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전셋집 자체가 귀했다. 오죽했으면 전세로 나온 아파트를 보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섰을까? 이는 불과 2년 전 일이다.

2023년 5월 전세 사기는 사회적 이슈가 됐고,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2년 전 전셋값도 역대 최고가였지만, 전세계약물량도 역대 최대였다. 그 만기가 올해 도래하고 있다. 이 이슈는 올여름에도 뜨겁고, 가을에도 뜨거울 것이다.

“전 정부 부동산정책 실패의 후유증”


▎ 2021년 가장 비싼 전셋집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만기가 2023년 도래하고 있다. 사진 정수연
이 위험은 대체 어디서 비롯됐을까? 전 정부 부동산정책 실패의 후유증이다. 이를 ‘삼각파도’라고 부르자. 첫 번째 파도는 규제 일변도 부동산정책이 불러일으킨 청년들의 불안감이었다. 이들은 ‘영혼이라도 끌어모아(이하 영끌)’ 집을 사야만 했다. 임대주택 강권 일변도의 정부정책을 보면서 ‘이번 생에 내 집을 마련할 마지막 기회’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전 정부는 청년들이 내 집 한 채 마련하려는 걸 ‘투기꾼의 욕심’으로 비치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다.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강권하는 전 정부 인사들 대부분이 자기 집 한두 채를 번듯하게 가지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청년들은 전 정부의 말을 믿고 계속 무주택자로 있을 수는 없었다. 마음 급한 가장들은 마지막 영끌에 힘을 써봤지만, 담보대출은 집값의 50%, 나머지는 어찌 마련할지 방도가 없었다. 전 정부는 15억원 이상인 집에 대해서는 대출도 금지하는 등 ‘부자 부모의 지원을 받는 금수저’들에게 편리한 대책만 자꾸 냈다. 결국 부자 부모가 없는 흙수저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전세’였다. 전셋값을 최대로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이제 새 임차인을 못 구하는 집주인이 돼 2023년 역전세(전셋값 하락으로 전세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두 번째 파도는 전세 물량의 급감이었다. 임대차3법이 시작된 2년 전 임차인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상하게도 전셋집은 씨가 말랐다. 집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원치 않은 전 정부가 계속해서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다. ‘양도세를 비과세 받으려면 직접 자기 집에 거주할 것’이라는 2017년 8·2대책이 사이렌을 울렸다. ‘재건축 조합원도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반드시 실거주할 것’이라는 2020년 6·17대책이 재차 사이렌을 울렸다. 이에 집주인들이 앞다퉈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전세 물량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남은 전셋집이라고는 영끌한 청년들의 갭투자 집뿐이었다. 그렇게 두 개의 파도가 합쳐졌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전셋값은 계속 올랐다. 도시 외곽으로 가자니 자녀 교육이 발목을 잡았다. 높은 전셋값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임대차3법이라 불리는 계약갱신청구권제도가 2020년 8월 도입되면서 앞으로 4년 동안이나 전셋값을 못 올리게 된 집주인들이 미리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전셋값은 급상승했다. 다음 그래프를 보라.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전셋값 지수는 드라마틱하게 상승했다. 언젠가는 꺼질 정책발(發) 거품이 끓어올랐다.

“올해 하반기 신용경색 위험 경계해야”


▎4월 13일 국회자유경제포럼 정책세미나 〈윤석열 정부 부동산정책의 현황과 과제〉 자료. 사진 정수연
자녀가 전학을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높은 전셋값이라도 좋다는 세입자, 그리고 계약갱신청구권 정책에 떠밀려 미리 전셋값을 올려 받고 싶은 집주인, 영끌한 청년 집주인이 전세 시장이라는 무대 한복판에 올라섰다.

마지막 세 번째 파도는 ‘보증금반환 보증보험 정책’이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정부는 임차인의 편이 돼 그들의 전세보증금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정책 취지는 좋았다. 세입자는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셋값이 너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보증보험은 전세금 전액을 보증해주었으니 말이다. 은행은 떼일 리 없는 돈을 대출해줬다. 책임은 공사가 질 테니 걱정이 없었다.

2019년 기존 제도가 확대됐고, 2021년 임대사업자들에 대해 의무화됐다. 당시 정부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이 제도의 가시적 성과가 절실히 필요했다. 좀 더 많은 가입자가 필요했다. 전세보증금을 100% 보장하고, 주택 가치를 초과하는 전세대출의 보증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떤 보완장치도, 진중한 검토도 할 시간이 없었다. 이 성과 위주의 정의로운 갈라치기 정책이 마지막 삼각파도가 돼 무대 위에 올라선 집주인, 청년, 세입자들을 덮쳤다.

이제 이 전세 사기의 사회적 이슈의 출발점이 어디인지가 확실해졌다. 전세 사기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방안은 ‘규제 일변도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교본 삼는 것이다. 다시는 정책이 시장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심리’라서 시장 주체들의 불안을 자극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급한 것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정책발(發) 삼각파도가 덮친 집주인, 세입자 모두가 피해자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싶은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은 집주인 모두를 구제해야 한다. 전세 사기와 역전세, 깡통전세는 구분해야 한다. 전세 사기는 근저당설정에 대해 허위로 고지하거나, 집주인을 가짜로 내세우는 불법의 영역이다. 정책발(發) 파도에 떠밀려 높은 전셋값을 주고받은 집주인을 ‘집 가진 죄인’으로 취급한다면 전 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차이가 없어진다. 부채를 지고라도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싶은 집주인들에게 ‘보증금반환 대출’을 허해야 한다. 그리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서 그 대출을 제외해야 한다.

무엇보다 올해 하반기 신용경색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 경매로 넘어가는 집들, 회수되지 않는 부실채권들이 연달아 문제가 될 수 있다. 돈의 흐름이 끊기고 그 막힘과 부침이 반복되면 자칫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부동산정책을 ‘정의’의 굴레에서 풀어줘야 한다. 정책이 정의의 탈을 쓰면 변질되기 때문이다. 주택보유자를 죄악시하는 정책은 집주인을 곤경에 빠뜨리고, 이를 본 일부 무주택 세입자가 통쾌해할 수 있지만, 집주인의 곤경은 무주택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집주인의 대출이 DSR 규제에서 벗어나야 서민들의 보증금이 안전해진다. 경제는 가진 자, 못 가진 자 구분 없이 모두가 연결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소개: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감정평가학회 명예회장,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연구회장.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감정평가학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서울부동산포럼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부동산경제학‧부동산대량감정평가‧부동산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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