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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취재] “남 잘 사는 거 보기 싫다”… SNS 피로 증후군 

“남들 인스타그램엔 취업 소식… 자꾸 비교하니 우울해져”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SNS 안 하니 트렌드에 뒤처지고… 막상 하자니 시간 낭비와 박탈감에 피로감
전자기기 사용 자제하는 ‘디지털 디톡스’ 각광… SNS 삭제하니 ‘우울감’ 줄어


▎취업준비생 이모(26)씨는 1시간에 200번이나 접속할 정도로 SNS에 빠진 적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넷플릭스 ‘셀러브리티’의 주인공 ‘서아리(박규영 분)’가 SNS에 올린 게시물의 반응을 확인하는 모습. / 사진:넷플릭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겨 따라하게 됐다.” 취업준비생 이모(26)씨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자신의 일상을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생활도 지켜볼 수 있어 급속히 빠져들었다. 한동안 남들의 일상을 구경하기만 했던 이씨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시시콜콜한 생활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정말 많이 할 때는 1시간에 200번이나 접속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앱을 눌러 들어갔던 적도 있다”며 “친한 친구들에게는 내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게시물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의 표시를 나타내는 기능인 ‘좋아요’는 인기를 나타내는 척도다. 유명 연예인의 게시물에는 수백만개의 공감 버튼이 눌리기도 한다. 이씨는 “최소 150명이 내 게시물에 공감을 해줘야 만족감을 느꼈다. 목표치에 달성했을 때 자존감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씨 사례처럼 이미 많은 현대인의 일상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잠식되고 있다. 2022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한국미디어패널조사가 진행한 SNS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9941명 가운데 57.6%가 SNS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20·30세대다. 20대의 93.3%, 30대의 88%가 SNS를 활용했다. 이들은 주로 ▷지인과의 소통 ▷자신의 일상 기록 및 공유 ▷오락성 콘텐트 소비 행태를 보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SNS 이용을 더욱 부추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만남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일상을 알리고 소통하는 창구로 SNS가 제격이었다. 대학생 김모(25)씨는 “코로나로 인해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가 아니면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서 더 많이 이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SNS는 ‘쇼트폼(짧은 영상)’ 콘텐트도 이용할 수 있어 영상을 보다 보면 그야말로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된다. 쇼트폼은 예능·뉴스 등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60초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하는 콘텐트다. 전문가들은 쇼트폼이 도파민을 자극해 일종의 디지털 마약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 교수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쇼트폼은) 자연환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자극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준다”며 “저조차도 그런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 몇십 분이 지나가는 걸 경험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SNS는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정모(24)씨의 사례가 그렇다. SNS를 하지 않는다는 정씨는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친구들끼리 만났을 때 요즘 뭐 하고 지냈냐는 이야기를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SNS를 통해 일상이 공유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SNS를 중심으로 퍼지는 ‘밈(온라인 유행어)’을 파악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정씨는 “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던 친구들이 ‘이것도 몰라’라고 말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로감


▎이용자들이 많은 대표적인 SNS 모바일 앱.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한국미디어패널조사의 SNS 이용행태 조사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국내 SNS 이용률은 57.6%로 나타났다. 2019년에 비해 약 10%p 상승했다. / 사진:권혁중 인턴기자
정씨에게는 SNS가 상당한 스트레스였던 셈이다. 이처럼 SNS를 하지 않자니 트렌드에 뒤처질 것 같아 걱정이고, 막상 하면 시간을 낭비하고 남들이 과시하는 일상을 보는 것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SNS 피로 증후군’이라고 한다. 대학생 강모(23)씨의 사례다. 강씨는 SNS로 인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던 적이 많았다고 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다 잠시 휴식을 위해 SNS에 접속하면 자신도 모르게 30분이 지나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강씨는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영화를 보는 등 휴식 시간을 온전히 즐기면 모를까, SNS를 하다가 시간이 그렇게 갑자기 지나가면 ‘벌써? 뭐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1시간에 200번이나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던 이씨도 비슷한 이유로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그는 “글을 올리고 반응을 끊임없이 확인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SNS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걸 느끼니 피곤해졌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현재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마치 금연에 도전한 흡연자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다시 들어가는 것처럼, 이씨도 자연스레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이씨가 SNS 활동을 중단한 가장 큰 이유는 취준생인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추리닝 차림으로 학원에 가는 자신의 모습과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남들의 모습을 계속 비교하기 두려웠다는 것이다. 이씨는 “솔직히 말하면 배가 아팠다. 나도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계속 공격만 받는 느낌이었다”며 “안 좋은 내 상황과 계속 비교하다간 내 삶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중단했다”고 말했다.

돌풍 일으킨 스레드 인기도 시들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팔로어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 ‘인스타그램 팔로어 구매’라고 검색하면 관련 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팔로어 50명을 구매하기 위해서 약 9000원이 필요했다. / 사진:네이버 화면 캡처
SNS 피로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4월 페이스북의 국내 이용자 수는 979만 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115만 명 감소한 수치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지나친 광고 등으로 인해 불편함이 가중돼 이용자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페이스북의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이 방치되는 것도 인기가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주로 ‘OO대학교 대나무숲’으로 운영되는데,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인까지 대나무숲에서 고민을 털어놓거나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하지만 팔로어 36만 명을 자랑하던 S대학교 대나무숲은 올해 업로드된 게시물이 단 4개에 불과했다. K대학교 대나무숲(팔로어 36만 명)은 지난 2월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직장인 장모(25)씨는 “원하지 않은 게시물을 보기 싫어서 페이스북을 삭제한 뒤부터 대나무숲을 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재밌는 글도 많이 올라왔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새롭게 출시한 SNS의 돌풍도 시들해졌다. 음성 기반의 SNS‘클럽하우스’(2020년)와 ‘싸이월드’와 유사한 ‘본디’(2023년)는 나오자마자 인기가 빠르게 식었다. 지난 7월 출시된 ‘스레드’도 마찬가지다. 스레드는 텍스트 중심의 SNS로 하나의 게시물에 500자까지 작성이 가능해 자신의 기분과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아 출시 5일 만에 가입자가 1억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현재 이용자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과 비슷한 이유로 스레드의 이용자들이 피로도를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직장인 전모(23)씨는 스레드에 가입하자마자 삭제했다. 그는 “불필요한 정보를 남발해서 정신이 없었다. SNS는 하나로 충분한데 굳이 두 개나 관리해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스레드에 접속했더니 친구를 맺은 지인들의 소식보다 광고와 뉴스 등 원하지 않는 소식이 쏟아졌다. 특히 자신의 일상을 뽐내는 ‘인플루언서(영향을 주는 사람)’의 글이 많았다.

최근 미디어도 SNS의 문제점에 주목하고 있다. ENA에서 방영된 ‘행복배틀’은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같은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가정을 자랑하며 경쟁을 펼치는 과정을 그려낸다. 특히 SNS에서는 서로를 추켜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과시하기 바쁘고 서로를 헐뜯는 SNS의 부작용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셀러브리티’에서는 SNS의 ‘팔로어’ 수로 계급이 결정된다. 팔로어가 많은 인플루언서는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기만 해도 큰 홍보 효과는 물론, 많은 이익을 얻어 드라마에서 ‘권력자’로 묘사된다. 반면 팔로어 수가 적을 경우 인플루언서의 힘을 얻어 팔로어를 늘리기 위해 ‘시녀’가 된다.

실제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팔로어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 취재 결과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팔로어 50명을 구매하기 위해 약 9000원이 필요했다. 이처럼 팔로어가 인기의 척도가 되고 구매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자 팔로어가 적은 사람들은 SNS 활동을 꺼린다. 한 대학생은 “지금 내 팔로어는 2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인데 남들에 비해 부족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SNS 증후군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디지털 디톡스’가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과 해독의 합성어로, 전자 기기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스마트폰, 컴퓨터 등과 의도적으로 멀어지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색적인 방법으로 디톡스가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 남동부 발트해에 있는 ‘울코 타미오’라는 섬은 스마트폰이 없는 관광지로의 탈바꿈을 선언했다. 이 섬을 찾는 관광객들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오로지 섬과의 시간을 보내도록 요청받게 된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한 절에서는 출근 전 1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끄고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 받는 디지털 디톡스


▎대학생 김이슬(21)씨는 ‘디지털 디톡스’의 일환으로 스마트 폴더 기종으로 휴대폰을 바꿨다. 김씨는 “SNS를 안 하게 되면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사진:김이슬씨 제공
미국과 영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최근 ‘덤폰(구형 휴대폰)’이 유행하고 있다. 덤폰은 스마트폰과 달리 전화, 문자 메시지 등 기본적인 기능만 갖춘 휴대폰으로, SNS를 일상과 격리시키기 위해 주로 이용한다. 대학생 김이슬(21)씨도 덤폰과 비슷한 스마트 폴더 기종을 쓰고 있다. 김씨 역시 SNS로 인한 피로감을 느껴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했는데, 휴대폰을 바꾼 뒤부터 일상이 한층 여유로워졌다고 밀했다. 그는 “SNS를 안 하게 되면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SNS를 하던 시간에 다른 일을 하게 돼서 하루를 생각보다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휴대폰을 바꾸지 않고 SNS를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학생 정종원(22)씨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SNS를 하면 나의 뇌가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SNS를 삭제하고 난 뒤부터 독서 활동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정보를 얻게 되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gur145145@naver.com

202309호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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