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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특집] 진한 부성애(父性愛)의 감동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 

빗장 채워져 있던 ‘아버지의 세계’를 만나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성남에서 7번째 전시 성황… 5개 주제관에 소장품 등 약 170점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과 함께 세대 간 갈등 해소하는 공간 자리매김


▎[조연] 김용석 作 졸업식, 생일 등 기념일마다 아버지는 언제나 카메라를 든 조연을 자처했다. / 사진:1 하나님의 교회
#아버지는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문을 읽을 때나 TV 뉴스를 볼 때도 늘 입은 꾹 닫혀 있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언제나 같은 표정의 아버지는 쉽게 말 걸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뚝딱 만들어주는 마법사였다. 별다른 도구 없이 썰매, 방패연, 목마를 순식간에 만들어주시곤 했다. 물론 그 순간에도 아버지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쉰 살을 앞둔 지금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내 표정도 아버지를 닮아간다. 흐릿한 글자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표정의 비밀을 알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기쁨도, 슬픔도 쉽게 내비치지 않는 아버지. 그렇기에 자녀는 아버지의 깊은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있어도 아버지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아버지에 대한 무지가 오해와 무관심으로 번져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굳게 빗장 걸려 있어 들여다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세계’가 열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새예루살렘 이매성전’과 경남 ‘창원의창 하나님의 교회’에서 진행되는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이하 아버지전)을 통해서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주최하고 ㈜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서울 관악구 등에서 열리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하 어머니전)과 함께 가족애를 재확인할 기회다. 특히 아버지전에선 불같이 뜨겁진 않아도 뭉근한 부성(父性)이 다양한 소품과 사진, 글을 통해 전해진다.

다섯 가지 테마에서 ‘아버지의 언어’를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언제나 ‘가족’을 향해 멈춰 있다. / 사진:하나님의 교회
아버지전은 어머니전의 후속 전시다. 어머니전은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10년간 86만 명이 관람한 롱런 전시다. 아버지전은 2019년 2월 서울 관악에서 개관한 후 부산, 대전, 광주, 창원 등에서 열려 관람객 18만 명이 다녀갔다. 8월 17일 성남시 분당구에서 개관한 전시는 일곱 번째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듯, 부모의 시선은 항상 자녀를 향하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전은 자녀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의 장이다. 아버지전을 접한 관객들은 한결같이 “전시장에서 내 아버지를 만난 것 같다”고 말한다. 전시장은 ‘아버지 왔다’(1관), ‘나는 됐다’(2관), ‘….’(3관), ‘아비란 그런 거지’(4관), ‘잃은 자를 찾아 왔노라’(5관)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시인 나태주, 정호승, 하청호, 만화가 이현세 등 기성작가의 글과 애틋한 사연이 녹아 있는 추억의 소장품 등 약 170점의 작품이 전시장을 채웠다.

전시장 프롤로그를 지나면 활짝 열린 녹색 대문이 반긴다. 대문 옆에 ‘김영수(金永秀)’라는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있다. ‘김영수’는 해방둥이 세대에 가장 흔했던 이름으로,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들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모든 아버지의 인생을 응원하고 헌정하는 뜻을 실었다.

문을 지나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명언, ‘아버지는 자녀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는 글귀가 벽에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 작은 자전거가 놓여 있다. 어린 시절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시던 아버지를 통해 자전거를 배웠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자전거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한 중년 여성은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써주지 못했지만, 자전거만큼은 자신이 가르치겠다던 애들 아빠가 생각난다”고 했다.

1관에 들어서면 당장에라도 아버지가 대문 열고 들어오실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아버지 왔다” 그 짧은 한마디에 쪼르르 달려나가던 유년의 기억이 눈앞에 나타난다. 운동회 준비물, 고무신과 털신, 추억 앨범 등 유년시절 추억의 물품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 중년 남성은 “아버지가 신으셨던 털신과 똑같다”며 이내 천진난만한 시절로 돌아간 듯 들뜬 표정을 지었다.

1관을 관람하며 떠올린 추억을 관람 후기에 풀어놓은 이들도 많았다. ‘매일 신던 운동화가 비에 젖은 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운동화를 드라이기로 말려주신 아빠 덕분에 따뜻한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행여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며, 거실 불을 켜놓고 TV 앞에서 선잠을 주무시던 아빠가 생각났다’는 등 관람객들은 가슴 따뜻해지는 추억들을 반추했다.

침묵 속에 숨겨진 진심을 마주하다


▎[23:55] 황수동 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막차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 사진:하나님의 교회
자녀들이 잘 모르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2관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전시관의 제목(‘나는 됐다’)처럼 이곳에서 만난 아버지들은 늦은 밤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도 피곤한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거기에 아버지는 없었다’ 작품에는 반려견보다 서열이 낮은 아버지의 자리를 나타낸 내용에 관람객들이 공감했다. 대리운전 일을 마치고 늦은 밤 막차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작품 ‘23:55’를 본 한 관람객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외환위기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대리운전을 하셨는데 항상 밤늦게 나가셔서 집에 올 때 버스를 타고 오셨다. 어쩌면 저런 모습으로 기다리시지 않았을까 싶다.”

관심 두지 않았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에 관람객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바쁜 일과 때문에 홀로 때늦은 식사를 하는 아버지의 사진 ‘점심’을 본 관람객은 “점심때마다 음식 사진을 찍어 가족 단체 채팅방에 보내시던 아빠가 떠오른다. 작품 속에서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격동의 시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특별존에서는 한국전쟁 때부터 파독 광부, 베트남전 참전, 중동 건설 붐, 외환위기(IMF) 등 격동의 세월을 가족과 나라의 미래를 일구는 데 바친 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 1000m 막장에서 외로움을 벗 삼고 일했던 파독 광부들. 매일 서로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말, ‘살아서 만나자(글뤽 아우프, GlückAuf)’를 주고받아야 했던 사선(死線)의 아버지들 심정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1970~80년대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떠나 가족에게 보낸 사진 속 아버지들은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도 한껏 폼을 내며 늠름한 표정이다. 마치 ‘걱정 말라’는 말을 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국제우편 봉투에 담긴 아버지 사진은 얼마나 멋있었던지. 아버지는 사진과 함께 ‘미제 색연필’, 초콜릿을 잔뜩 보내시곤 했다.” 사진을 보던 한 언론인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아버지들의 운명은 무척 얄궂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이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던 전쟁의 포화를 이겨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버지들은 IMF 외환위기의 파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 귓가를 울리는 총성, 전우의 죽음···. 날마다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던 그들은 살아 돌아가면 가족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2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중에서-

트라우마 위에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아버지는 숱한 말을 속으로 삼킨 채 더 굳게 입에 빗장을 걸었다. 3관의 테마(….)는 침묵과 고독 속에 혼자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먹먹한 시선으로 좇는다. 시선의 끝자락, 침묵 뒤에 숨겨져 있었던 아버지의 진심이 마침내 드러난다. 채현숙(50대, 성남)씨는 “아버지의 무뚝뚝함이 원래 당신의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가장의 무게 때문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굳게 닫힌 아버지의 입, 깊은 부성(父性)


▎파울 두클로스 파로디 주한 페루 대사가 ‘새예루살렘 이매성전’에서 열리는 아버지전을 관람하고 있다. / 사진:하나님의 교회
아버지의 진심은 말보다 더 진한 글로 발현한다. 가족을 향한 사랑을 담담한 어조로 적어낸 아버지의 편지와 일기는 가슴 저미는 애틋함을 전달한다. 분당 전시장 1호 관람객인 파울 두클로스 파로디 주한 페루 대사는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쓴 편지를 보고 “부성(父性)은 전 세계가 공통임을 알게 됐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전시”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진 작품 ‘다시 만날 때까지’는 군대 훈련소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아내와 아들을 뒤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애잔한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4관(‘아비란 그런 거지’)의 아버지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곁을 지키다 생명을 다하는 가시고기와 판박이다. 결혼하는 딸을 위해 석 달치 수입을 포기한 채 직접 나무를 깎고 칠을 먹여 만든 혼수가구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사연의 주인공 이정은씨는 유튜브 채널 ‘전시회 ON’에서 혼수가구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가득한 혼수가구를 보고 며칠을 가구를 붙잡고 울었다. 아버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지켜주는 나무 같은 존재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아버지의 기억은 긍정으로 바뀐다. 중년의 ‘엄마’가 된 딸 최영주 씨에게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었다. 적어도 이 전시를 관람하기 전까지 말이다. 연락이 끊긴 채 할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던 그는 40년간 원망했던 아버지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진심을 담은 편지를 읽어드리자, 아버지는 숨죽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40년 동안 부녀(父女)를 갈라놨던 갈등의 골이 순식간에 서로의 사랑으로 채워졌다.


▎아버지전 전시관 내부. 옛집을 옮겨놓은 듯하다. / 사진:하나님의 교회
어린 시절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늘 원망했던 손지희 씨는 전시를 보고 나서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겁고 외로우셨을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땐 철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버지는 이미 곁을 떠난 뒤다. 손씨의 깨달음은 또 다른 아버지를 향하며 사랑을 이어간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 합니다.”

세대 간 갈등 해소 공간으로 자리매김


▎아버지전이 열리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새예루살렘 이매성전’ 특설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유길용 기자
아버지전은 점점 벌어지는 세대의 간극을 채우며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을 통합으로 이끈다. 세대 갈등이 사회문제로 심화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순기능을 하는 셈이다. 특히 가정에서의 갈등 유형 1위로 꼽히는 부모-자녀 간 세대 갈등(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일터에서의 아버지 모습이 담긴 사진, 아버지의 손때 묻은 소품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빠도 이런 곳에서 일했어”, “이거 다 아빠가 일할 때 쓰던 건데…” 늘 굳게 닫혀 있던 아버지의 입이 열리면 자녀들은 비로소 마음을 열어 아버지의 시대를 이해한다.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시간을 따라 걸으며, 자녀들은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한다.

“생각해 보니 아빠가 하는 일에 어떤 힘든 과정이 있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관에서 가장 발걸음이 오래 머물렀던 이유다.”(강민정, 30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만 힘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버지의 땀과 눈물이 담긴 글, 사진, 물건들을 보니 울컥했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던 하루였다.”(임소희, 10대) “일터와 관련된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이니까.”(익명, 20대) “아버지는 이발소를 60년간 운영하시면서 8남매를 키우셨다. 우리를 먹이시랴 입히시랴 가르치시랴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래도 화 한 번 안 내시고 늘 사랑만 주셨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다.”(익명, 70대)

손편지 보내기 등 추억 남기기


▎한 관람객이 하루의 끝, 아버지의 고단한 모습을 담은 사진 작품 [쪽잠]을 감상하고 있다. / 사진:하나님의 교회
직장생활 3년 차, 사회 초년생인 한 관람객은 직장인이 된 후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에, 사람에 부대끼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 정말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한숨 터뜨릴 때가 많은데 아버지는 그런 일을 20년 넘게 하셨으니… 어떻게 그 세월을 버티셨을까 싶다.”

아버지들은 앞으로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답을 얻기도 한다. 50대 가장 김충렬 씨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아버지전은 자녀와 아버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로 이어진다. 지난 2020년에는 아버지전 연계 행사로 세대 간 단절과 불통을 해소하기 위한 인성 특강이 마련되기도 했다. 아버지전이 열린 서울과 부산 소재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버지전에 소품을 기증한 고(故)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강연을 이끌었다. 당시 강의에는 청소년과 학부모 등 2500여 명이 모여 세대 간의 간극을 해소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전에는 전시 외에 부대 행사도 준비돼 있다. 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편지와 메시지 등을 통해 아버지께 전할 수 있는 ‘손편지 보내기’ 공간도 마련돼 있다. 편지 발송은 모두 무료다.


▎다양한 소품과 사진, 글을 통해 뭉근한 아버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 사진:유길용 기자
전시회는 경기 성남시 ‘새예루살렘 이매성전’과 경남 ‘창원의창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각 관람할 수 있다. 11월부터 강원도 원주시에서도 개관한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은 휴관한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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