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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스페셜 | 22대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5)] 이상휘 세명대 교수의 출사표 

“철강도시 포항, 이제 경제·문화도시로 탈바꿈해야”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청년시절 부두 하역 노동자로 일하며 서민의 삶과 애환 공감
여의도 정치권 ‘기획통’… 포항 발전 위한 그랜드디자인 구상


▎이상휘 교수는 11월 10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빌딩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상휘 교수(세명대 교양대학)가 고향인 포항시 을룽군·남구 지역에서 출마 채비에 들어갔다. 20대 청년 시절에 부두의 하역 노동자로 일한 그는 서민의 삶과 애환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한다. 2004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할 때는 “새벽에 하루 업무를 미리 마쳐놓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일념으로 어금니가 빠질 정도로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2006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거 캠프에서 선거기획통으로 활약했고 이후 서울시 민원비서관으로 일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2009년부터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청와대 춘추관장, 홍보기획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21년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선대위 비서실 기획실장을 맡아 또 한 번 기획통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현재는 포항 남구 오촌읍에 거주하면서 어떻게 하면 포항을 철강도시에서 경제·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11월 10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빌딩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총선 출마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의지”

여의도에서 ‘선거기획통’으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돌연 2019년 정치권을 떠났다. 이유가 뭔가?

“정치에 대한 회의와 염증을 많이 느꼈던 시기다. 욕심 없이 일했을 뿐인데 돌아보니까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정치권에서 적폐가 돼 있었다. 그래서 충북 진천에 가서 책방을 차리고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다. 결혼생활 30년간 가족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책방에서 삶이 대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2021년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선대위에서 정무2팀장을 맡아 정치에 복귀했다.

“2021년 12월 초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저를 만나러 왔다. ‘정권 재창출하는 데 노력하면 어떻겠느냐? 산에 있는 것도 좀 웃기지 않느냐?’ 그러더라(웃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무슨 거물도 아니고, 산에 있다는 게 좀 어색했다.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저를 찾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방을 나와 윤석열 후보 선대위 비서실 기획실장을 맡았다.”

그때 윤석열 후보가 선거기획통을 영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에서는 전직 청와대 출신 ‘숨은 실세’라고도 했다.

“전략적으로 선거 캠페인을 총괄하는 건 자신 있었다. 또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제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해왔던 일이었다.”

내년 총선에서 포항 출마를 선언했는데?

“윤석열 정부 탄생은 제 정치 인생에서 ‘운명’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총선에 출마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권 재창출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결국 원내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에 맞는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 또 그걸 추진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설득하는 정치적 노력도 해야 하고…”

포항 남구·울릉군 지역구를 선택한 이유는?

“포항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서 6대조가 살았다. 저는 6살 때 부모님 따라 상대동으로 넘어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남구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남자가 출세하려면 형산강 다리를 넘지 마라.’ 형산강 다리가 포항 도심과 포스코 산업단지를 잇는데, 이걸 넘으면 남자가 꿈을 못 펼치고 평생 포스코 밥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자조적인 얘기다. 30살 전까지 저는 형산강 다리를 넘지 않고 서울로 갈 생각을 못 했다.”

그때의 짠내 나는 일화는 KBS 인간극장에도 나오지 않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은 40톤짜리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보름간 일한 적이 있다. 옛날에는 그런 배에서 일하는 선원 중에 전과자나 폭력사범이 더러 있었다. 오징어잡이 배에서 일하면서 엄청 두들겨 맞았다. 배에서 밥 짓는 사람을 화장(火匠)이라고 하는데, 그 화장한테 뿌득뿌득한 생오징어로 뺨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 25살에 아는 분 소개로 항만 일용직으로 들어갔다. 일용직 맞교대 생활만 3년을 했다. 오직 땀으로 승부하겠다는 게 그때 결심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동방그룹 급여 담당 직원으로 정식 발령을 받게 됐다. 그때 제가 맨 넥타이가 우리 가문의 첫 넥타이였다. 아버지께서 선비셨는데 직업을 안 가지셨다. 그래서 제 일생의 소원이 회사원이었다.”

부두 하역 노동자 출신으로 정치권 입문


▎이상휘 교수는 포항이 철강도시에서 경제·문화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다 평사원에서 일약 그룹 비서실로 영전했는데…

“열심히 일했더니 1년 만에 ‘너는 괜찮은 놈이다’라면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냈다. 그때 동방그룹이 세계 100대 기업에 들어가는 큰 회사였는데, 비서실이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막상 들어가 보니 죄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공채로 들어온 엘리트들이고,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이니 ‘이거 큰일 났다’ 싶어 사표 낼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맡은 업무는 출근 전 새벽에 다 끝내기로 했다. 출근 후에는 새 업무를 업데이트해서 실적을 쌓아갔고. 그러니까 남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그 사이 보증을 잘못 서서 월급이 통째로 차압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밤에 대리운전하고 주말에는 인형 탈 쓰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겨우 갚았다.”

그 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들어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춘추관장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역임했다.

“원래 이명박 대통령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군현 의원 보좌관으로 있을 때 그저 밤낮없이 일했다. 그 여파로 어금니가 다 빠졌다. 그게 소문이 났는지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선 후보 때 저를 자기 캠프로 스카우트했다. 그 덕에 제가 42살에 최연소 시장 직무 인수위원회 총무분과위원이 됐다. 이후 오세훈 시장의 첫 민원비서관을 맡았다. 그때 제가 전략도 짰지만 현장을 많이 뛰었다. 민원 조정 회의도 제가 주관했는데, 그런 얘기가 안국포럼(이명박 캠프)에도 들어가 여러 사람 추천으로 이명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총선 얘기로 돌아가면, 지난 9월 한 여론조사에서 현직 의원과 근소한 차이로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정계에 복귀한지 얼마 안 됐는데 상승세다.

“깜짝 놀랐다. 제가 현장을 다녀보면 주민들께서 제 존재를 인식하고 계시더라. 아마 제가 2011년부터 공중파나 종편 채널 등 방송에서 시사평론가로 활동한 이력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가가 맞나’라는 우리 지역 표현에 제가 어울리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 말은 포항에서 ‘어디 소주집이나 차려주면 잘 살 만한 사람’을 뜻하는데, 그런 제가 청와대에서 일하고 방송에도 나오니 포항에서 화제가 된 것 같다.”

지역 현안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제가 출마하려는 지역구에는 울릉도도 포함된다. 천혜의 비경을 가진 울릉도의 경관은 다음 세대까지 보존해야 할 자산이다. 저는 이를 원칙으로 삼되 울릉도의 경제적 가치도 높임으로써 보존과 경제를 양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제가 울릉도에서 1년 반을 살아보니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무슨 말이냐면, 울릉도는 전부 길을 내고 있다. 산길에도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이런 점은 보완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울릉도에서 드론(UAM·항공교통) 시대를 열 생각을 하고 있다. 울릉도 곳곳에 드론 중개 허브를 설치해 여객·관광객을 운송하면 교통도 살고 비경도 보존할 수 있다. 첨단 관광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포항 메트로시티 건설에 힘 보탤 것”


▎이상휘 교수가 9월 10일 포항 남구 구룡포의 한 삼치잡이 어선에 올라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페이스북
포항 남구의 현안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영일만대교를 건설하는 것이다. 바다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다리를 놓는 프로젝트다. 3조~4조원가량 예산이 필요하다. 벌써 군사적·환경적 요인을 고려한 설계 용역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지금 건설 계획만 세웠을 뿐 준공 후 영일만대교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못 그리고 있다. 저는 영일만대교를 따라 구룡포·도구·영일만항 등에 관광 허브를 조성함으로써 경제적 관광지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 허브에 무엇을 채워 넣어 관광객 유입을 끌어낼지는 고민 중이다.”

대형 국책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포항 메트로시티 건설이다. 그러려면 지하철이 필요하다. 현재 포항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공단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생각은 다르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공단을 만든다고 해서 꼭 포항에서 출퇴근하라는 법은 없다. 외곽에서 살 수도 있다. 고민한 결과 포항의 가장 큰 문제점이 교통 환경이 척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역을 만들고 도시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포항 내 각각의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살기 좋은 인프라가 구축되면 시민들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지역 경기가 살아난다. 아울러 절벽과 기암 등 경관이 뛰어난 장기에서 호미곶까지 구간은 모노레일을 설치해 관광객 유입을 유도할 수 있다.”

군사도시라는 이미지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목된다.

“포항 남구에 오천읍이 있다. 블루밸리 공단이 들어서는 등 경제적 기대효과가 커지면서 인구도 늘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군사도시다. 해병대사령부가 여기 있다. 소위 계룡대 이래 군사도시가 돼서 척박한 지역으로 인식돼 있다. 제가 국회에 들어가 입법활동을 하게 되면 지금 3군 체제로 있는 육·해·공을 4군 체제로 바꿔 해병을 독립화할 법안을 내놓을 것이다. 이를 통해 오천 주민들의 군사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해병사관학교를 포항에 유치함으로써 군에 대한 엘리트 의식도 재고하고자 한다.”

포항의 변화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포항은 해군 기지로서 국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철강을 통해 대한민국이 경제 10위권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약의 발판 역할을 해줬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도 포항이다. 1970년대 문성리 주민들이 똘똘 몽쳐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며 자발적으로 일으킨 운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점화시켰다. 이러한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이제 우리는 포스코에 대한 의지, 철강도시 포항에서 벗어나 또 다른 모험을 할 시대를 맞이했다고 본다. 저는 그것을 경제·문화도시 포항이라고 부르겠다.”

- 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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