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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인구소멸·지방소멸 막을 해법 있나 

“매달 100만원씩 지원해도 아파트값 1억원 오르면 허사” 

저출산 문제 본질은 대한민국의 가족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
단기간에 해결 안돼… 시민사회 자기반성과 사회혁신이 열쇠


▎인구 절벽이 계속되며 폐교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폐교한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공업고등학교. / 사진:연합뉴스
고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칠레나 멕시코 같은 비서구권 국가들이나,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같은 유럽의 인구 소국(小國)인 국가들을 제외하면 우리는 사실상 OECD에서 가장 젊은 국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인 것은 빠른 고령화 속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5~30년 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40% 수준에 이르러 일본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나라가 된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는 출생아 감소가 누적된 결과다. 우리나라는 베이비붐이 시작된 1950년대 후반부터 1982년까지 거의 매년 8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인구가 노년기로 진입하게 된다. 작년에는 베이비부머의 첫 세대라는 ‘58년 개띠’가 65세 노인인구가 됐다.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1971년생이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났다. 반면 2022년부터 태어난 아이의 수는 25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불과 50여 년 만에 1/4 토막이 난 것이다. 감소 속도는 최근 더 빨라졌다. 2001년 출생아 수가 60만 명이 무너지고 바로 다음 해에는 50만 명이 무너졌다. 50만 명은 당시 우리나라 대입정원보다 적은 숫자다. 2021학년도 지방대 대량 미달사태는 이미 2002년에 예고됐던 것이다. 작년에 태어난 아이의 수는 24만 명으로 떨어졌다. 이 또한 수도권 대학입학 정원보다도 적은 숫자이다.

우리 사회가 대학의 정원을 축소하지 못하면 오는 2042년에는 지방대 전체가 학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학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교직원과 그 가족은 생계를 잃게 될 것이며, 대학이 있던 지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인력을 제공받지 못하는 지방 산업 역시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최근 TV에 알바 중계 업체 광고가 크게 늘었는데, 이는 많은 자영업자들이 알바생을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바생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20대 초반 인구의 감소에 기인한다. ‘위기의 저출산’ 첫 세대인 2000년대 초반생들은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는 노동시장에서 신규 진입 인력이 급속히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전에 없던 신규 인력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방 기업들은 더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줄어든 청년 수를 채우기 위해 수도권은 더 많은 지방 청년들을 흡수하고, 지방 인구위기(지방소멸)는 가속할 것이다. 먼 미래가 아니라 불과 5년 후 펼쳐질 일들이다.

청년 인구 유출로 지방소멸 위기 확산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또 다른 축으로는 ‘지방소멸’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 출생아 수 감소가 누적돼 나타난 현상인 우리나라 전체의 고령화, 인구 감소와는 달리 지방의 인구 위기는 출생이 아닌 인구이동(유출)에 기인한다. 지방의 인구이동은 사실상 수도권으로의 대규모 인구 유출을 의미한다. 이들 대부분은 청년으로 구성된다. 지난 3년간 수도권 전체 순유입 인구(유입 인구-유출 인구)는 14만 명 정도다. 20~34세 지방 청년의 순유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145.2%에 이른다. 청년이 아닌 중장년층은 되레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이동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청년인구가 수도권으로 유입된다. 요약하자면 지방소멸의 위기는 인구이동 때문이고, 인구이동은 청년인구의 유출 문제이다. 더 간단히 말해 지방의 소멸위기는 지방청년의 위기인 것이다.

지방의 청년 순유출에는 여성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러한 청년 수도권 유입의 성비 불균형은 지방 산업구조와 연관성이 높다. 제조업 중심의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평생 직장으로 삼을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업 일자리가 부족하다. 그래서 지방의 여성 청년들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입사 시험에 승부를 걸든가, 서비스업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게 된다. 그렇다고 지방 남성 청년들의 일자리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최근 제조업의 위기로 지방 청년의 유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거제 조선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방의 제조업 사업체에서 제공되는 일자리마저도 비정규직화가 높은 수준이다.

지방의 인구 유출은 단순히 인구의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구가 떠나면서 지역의 경기 침체와 일자리 감소가 일어나고, 의료·문화·생필품 구입 등 생활 인프라도 사라지게 된다. 교육 여건의 악화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한 연쇄적 지역 쇠퇴 과정은 다시금 지역의 인구 유출을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특히 청년이 떠나면서 출생아 수 감소를 야기한다. 또한 사람들이 떠날 때는 지역의 중산층이 먼저 떠나게 되는데, 이렇게 지역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지역의 빈곤화 경향도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중심에는 청년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혼인, 출산, 양육 등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친다. 하지만 이 같은 ‘분별적’인 지원책으론 부족하다. 우리 사회 청년들의 전반적 생애 과정 이행은 멈춰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짝을 찾고,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반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출산은 오랜 기간 쌓인 구조적 문제


▎지난해 6월 서울 목동의 학원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 저출산 정책을 펼쳐 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봤다. 정부의 지원 정책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출산과 양육의 총비용이 줄어들면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경제학적 가정을 전제로 한다. 개별 지원을 제공해도 청년의 생애과정을 가로막고 있는 일자리, 주거, 사교육비 문제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효과가 안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원씩 5년 동안 주거비 비용을 보조해 준다 하더라도 아파트값이 1억원 이상 오르면 허사가 된다. 양육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양육비 지원으로 현금을 주더라도 이 현금은 자칫 다시 사교육으로 흘러가기 쉽다. 실제로 2010년대 초 무상 보육이 도입되던 시기에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20만원을 지급한 적이 있다. 당시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는 20만원짜리 미술학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구조적인 문제만으로 설명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좋은 직장을 갖고 주거를 마련한 청년들이라고 해서 이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세 명씩 낳는 것도 아니다. 비용의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을 구성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IMF 경제위기’ 이후 사교육 등 경쟁 체제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세대다. 아이는 공부, 엄마는 뒷바라지, 아빠는 돈만 벌어오면 되는 그런 가족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중산층 가족이더라도 정서적 친밀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성장기를 보낸 청년들이 바로 지금의 청년들이다. 그러니 가족에 대한 효능감과 수요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어려움과 구조적 장애물들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더욱 혼인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경제적 성취를 이뤘음에도 자신의 부모들처럼 사교육의 책임 속으로 자신의 삶을 ‘갈아 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경쟁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저출산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가족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를 만든 것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정책이 아닌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첫째,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오랜 기간 쌓인 구조적 문제다. 정부의 몇몇 특단의 조치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모든 구조적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책임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기업의 역할과 같은 민간의 참여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청년들의 생애 과정을 가로막는 이 구조는 우리의 생활과 인식이 쌓여서 만들어낸 총체적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자기반성과 사회혁신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다. 실제로 저출산을 극복한 해외 사례들은 단순히 지원사업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부분 전반적인 사회체제의 전환으로 만들어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에 대처해야 할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먼저 인구 감소와 이로 인한 초고령화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봐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 문제처럼 각종 조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원칙을 갖고 사회구성원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체제 전환을 이뤄나갈 것인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인구 변동의 경로를 따라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전망하고,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지방의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지원 정책 사업들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 다만 더 효율적이고 실효적인 방안들로 정책들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개별정책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일반의 문제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저출산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 기조’로 다뤄야 할 거시적 문제들을 ‘개별 사업’들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청년과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 지원과 함께 아파트값을 내리기 위한 주거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양육비 절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교육 부담을 낮추기 위한 교육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인구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구조의 전환으로 해결될 수 있다. 아파트값은 떨어져야 하며, 일자리는 나눠야 하고, 학벌 지상주의는 약화돼야 한다. 기득권의 조정이 이뤄져야 우리 사회는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야 멈춰선 청년 생애과정도 재개될 수 있다. 지금의 심각한 인구문제는 몇몇 정책들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 이제는 정책이 아닌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의 책임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구정책은 미래 세대를 위한 현재 세대의 양보이기도 하다.

-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dearlim@gmail.com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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