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高효율' 생사 건 기술 개발 경쟁
미래형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진 메이커들이 고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유력한 미래자동차 모델로 꼽히는 하이브리드차와 수소 연료형차 개발에 이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선두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BMW ·폴크스바겐 ·도요타 ·혼다 ·GM 등을 직접 둘러봤다.
2012년 3월의 어느 월요일. 대기업 임원 K(45)씨는 새로 장만한 2000cc급 연료전지(fuel cell) 승용차를 몰고 서울 강남의 아파트 주차장을 나선다. 이제 막 보급이 시작된 까닭에 차 값은 가솔린차보다 비싼 편이다. 하지만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무공해차인데다 자동주행 ·주차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편리하기 그지 없다.
K씨가 2차로의 좁은 길을 지나 막 큰 도로로 접어들 무렵 연료격인 액체 수소를 충전하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연료전지차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주유소도 수소 충전소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휘발유차가 세계를 뒤덮은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나간 100여 년의 자동차 역사를 뒤바꿀 미래의 신차들이 하나둘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공해가 전혀 없고 무한정 재생산이 가능한 수소와 같은 새로운 연료로 움직인다. 정보기술(IT)이 접목되면서 차량 스스로 주행과 주차까지 해결하는, 영화에서나 보던 스마트카의 등장도 머지 않았다. 친환경 ·에너지 절약 ·리사이클링 ·편리함 등 자동차 산업의 핵심 키워드를 충족시키는 자동차들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래 자동차로 먼저 각광을 받았던 것은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차체 무게 ·충전시간 ·짧은 주행거리 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전기차를 대신할 차세대 모델로는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차와 유해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수소 연료형차가 꼽히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정차하면 가솔린 엔진이 꺼지면서 전기 모터가 나머지 기능들을 유지시키고, 다시 출발할 때는 곧바로 엔진이 작동한다. 연료 소모와 배출 가스도 적고 연비도 좋다. 특히 시내 주행에서 연료 경제성이 10~40%나 높다. 하이브드리차의 선두 주자는 일본 도요타(豊田)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미국 시장 진출에 이어 유럽 땅에서도 달리고 있다.
도요타는 2005년 이후 판매량을 연 30만 대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다. 시빅 하이브리드 등을 앞세운 혼다(本田)도 미국 시장을 휘젓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는 제너럴 모터스(GM) ·BMW 등과 달리 연료전지차의 과도기 모델로 평가받는 하이브리드차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연료전지차에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전기 운전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하이브리드차 개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가격은 현재 가솔린 모델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상용화 측면에서는 하이브리드차보다 한 발 뒤지지만 유해 배기가스가 전혀 없어 궁극적인 미래 자동차로 손꼽히는 수소 연료형차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수소 연료차는 BMW나 폴크스바겐이 주도하는 직접 연소 방식과 GM과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리고 혼다와 도요타 등이 연구 중인 연료전지 방식으로 나뉜다. 1978년부터 수소 자동차 연구를 시작한 BMW는 수소를 실린더 내에서 폭발시켜 그 힘으로 엔진을 돌리는 내연 방식을 택하고 있다. BMW 측은 수소 엔진차를 5년 이내에 유럽에서 팔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을 대상으로 수소차를 판매하는 자동차 메이커는 BMW가 첫 주자가 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연료전지차는 수소를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시켜 전기를 만드는 일종의 발전기인 연료전지로 움직인다. 연료전지는 산소와 수소의 반응으로 물만 배출하는 ‘그린’ 동력원이다. 하이브리드차는 엔진이 없으면 곤란하지만 연료전지차는 그 자체만으로 동력원이 된다. 연료전지차 분야에서는 2002년에 세계 최초로 판매승인을 받은 혼다, 하이브리드차를 건너 뛰어 연료전지차 시대로 넘어가려는 GM, 그리고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도요타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시장을 선점하려고 독자 개발에 몰두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표준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은 에너지원인 수소의 순도와 압력 ·보충구의 형태 ·수소 탱크의 안전 기준 등을 표준화한다는 방침이며, 공동 개발로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수소 충전소 설치 등 연료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연을 잔뜩 뿜어내는 휘발유차는 도로에서 밀려날 날이 멀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그린라운드 본격 가동, 기후변화방지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CO2) 총량 규제, 저공해 자동차 의무 판매를 포함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이 자동차업계의 목을 죄어왔다. 여기에 연료인 화석연료(석유)의 고갈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도 걸려 있다. 툭하면 터지는 오일쇼크는 가솔린 차량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가 자동차의 새로운 ‘표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무공해와 고효율이 미래형 자동차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증기기관이 디젤기관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 표준이 달라지면 그것을 선점하거나 재빨리 따라잡는 회사를 제외하곤 도태될 수밖에 없다.세계 각국의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 자동차업계를 돕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방심하다간 자칫 한순간에 자동차 시장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정부는 연료전지차 개발을 정부 보조금 형태로 체계적으로 지원해왔다. 지난해 연료전지 개발비 지원 규모는 340억엔(약 4,080억원)에 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장이 20년 후에는 100조엔(약 1,2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기업들도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를 팔아 벌써 이익을 남기고 있다. BMW는 개인에게 연료전지차를 파는 첫 회사가 될 공산이 크다. GM은 연료전지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로 다우케미컬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반면 국내에서는 투자 재원 부족 등으로 선뜻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로선 멀리 뒤처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을 계속하면서 기술 표준이 결정되면 그 네트워크에 동참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 개발 과제의 하나로 미래형 자동차를 선정하고 오는 2010년까지 5,910억원(정부 2,960억원 ·민간 2,9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동차 선진국의 투자에는 까마득히 뒤지고 있다. 미래형 자동차 시장을 향한 선진국들의 고속질주와 한국의 고민을 들여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