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술 수준은 유럽 ·일본 ·미국의 메이커보다 뒤처진 상태다. 현대차가 유일하게 미래형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뒤늦게 미래형 자동차를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 개발 과제의 하나로 선정했지만 투자 재원도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등 대체연료 자동차를 꽤 오래 전부터 개발해왔다. 1990년대 후반 현대자동차는 아토스 전기차와 수소연료를 이용한 티뷰론 ·베르나 하이브리드카를 만들어 시운전까지 했다. 기아자동차도 천연가스와 연료전지를 얹은 스포티지 모델을 선보였다. 또 옛 대우자동차에서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누비라와 연료전지를 얹은 레조를 시험 제작하기도 했다. 쌍용자동차는 태양광을 이용한 솔라II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연구 ·개발이 진행 중인 곳은 현대뿐이다. 현대 ·기아차의 경우 연구소가 통합돼 있으므로 하나로 볼 수 있고, GM대우와 르노삼성은 각각 모기업인 GM과 르노-닛산네트워크에서 개발을 진행 중이어서 별도로 투자할 이유가 없다. 매각을 앞두고 있는 쌍용차 역시 이 분야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현대차는 전기차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98년 연료전지차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00년 11월 75㎾급 연료전지 스택을 얹은 싼타페 연료전지차를 미국의 연료전지 전문회사인 UTC퓨얼셀사와 공동 개발했다. 기존 싼타페의 엔진 공간에 모터와 모터 제어기·물관리 시스템을 얹고, 차체 하부에 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한 구조다. 또한 LPG 탱크 공간을 개조해 압축수소 탱크를 장착함으로써 실내 공간도 일반 차와 똑같은 수준으로 확보했다.
지난 2002년 9월 4~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2002 퓨얼셀 로드 랠리’에 참가한 싼타페 연료전지차의 성능은 수소 1회 충전으로 160㎞ 이상 주행, 최고 시속 124㎞, 출발 후 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 18초 등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느 자동차 못지 않다. 싼타페 연료전지차는 특히 이 로드 랠리에서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요타(豊田) ·혼다(本田) ·닛산(日産)의 연료전지차와 더불어 완주에 성공하는 성과도 거뒀다.
현대차는 2005년부터 연료전지차를 소량 생산, 특정 고객에게 한정 판매한 다음 시험 평가를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본격 양산에 앞서 연료전지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할 방침이다. 그리고 차량 표준화 정립, 연료 인프라 구축 등의 사회 여건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의 연료전지차 개발팀은 2010년을 상용화 시점으로 잡고 있다.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경제적 파급 효과도 꽤 클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성은 2010년쯤 연료전지차가 세계 자동차의 약 5%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경우 2010년 연료전지차 양산으로 매출액 1조5,000억원, 수입대체 효과 1조원, 수출증대 효과 5,000억원 등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하이브리드차는 연료전지로 가는 10여 년 정도의 과도기에서 경쟁력이 있는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업계에서 하이브리드차 개발을 이끌고 있으며 미국은 따라가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는 역시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차를 개발 중인데, 2005년에 500대 규모의 소량 생산을 거쳐 2006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50대 정도를 시중에 내놔 관공서 등에서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시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 개발 과제의 하나인 지능형 자동차 기술은 연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라는 기계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차의 안전성과 편의성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을 일컫는다. 차의 각 부품과 시스템 간의 정보교환 기술과 텔레매틱스 기술이 핵심이다. 운전자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며, 승객과 보행자의 안전까지 고려한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다중 충돌 방지 ·자동 화재 진화 등의 기능을 더한 스마트카, 즉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 개발이 목표다. 지능형 자동차는 현재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다. 하지만 안전성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점점 커짐에 따라 시장은 계속 불어날 전망이다.
한편 국내 미래 자동차 개발 기술은 전반적으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산업은행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하이브리드차와 연료전지차의 경쟁력을 100으로 봤을 때 국내는 각각 38과 36으로 매우 낮다. 재료와 핵심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 ·개발 투자가 부족하고, 정부의 지원도 미미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국내 메이커들도 기본적인 엔진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축전지 등의 기술 개발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면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능형 자동차 기술의 경우 선진국의 70%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올라있다는 평가다. 한국이 IT강국인 만큼 이를 잘 접목하면 다른 분야보다 빨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연구 ·개발(R&D)비 지원도 절실한데 투자는 미미한 실정이다. 미래형 자동차 투자 규모는 연료전지차에 10년간 2,890억원, 하이브리드차에 7년간 1,280억원, 지능형자동차 기술에 10년간 1,740억원 등 모두 5,910억원이다. 정부가 2,960억원, 민간 부문에서 2,950억원을 분담한다. 반면 외국 정부의 경우 미국은 연료전지차 개발에 5년간 17억 달러(약 2조원), 일본은 연료전지차 개발에 2년간 680억엔(약 8,100억원), 유럽은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4년간 21억 유로(약 3조원) 등을 투자한다.
조상룡 산업자원부 수송기계산업과 사무관은 “예산을 쪼개 다른 분야에도 투자해야 하는 만큼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들어갈 몫은 솔직히 적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기존의 국책 사업과 별도로 연료전지차 등 저공해 자동차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규모 R&D 프로젝트를 추진해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덧붙여 저공해 자동차 보급과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 과감한 유인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소세 ·등록세 ·취득세 ·자동차세의 면제 등 환경친화적 세제 도입과 보조금 지급(차 값의 50% 이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