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지방의 와인 순례에는 성경 대신 포도원(샤토)들이 표기된 지도가 필요하다. 성배 대신 와인잔을 들고, 참배 대신 시음을 통해 수백 년에 걸친 프랑스 와인의 역사를 맛볼 수 있다. 유럽 남부의 강렬한 햇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그리고 샤토에서 맛본 와인 한 잔은 잊지 못할 낭만이 된다. 6월의 샤토 오브리옹은 지독하게 더웠다. 차를 몰고 보르도 시내를 벗어나 남서쪽으로 향한 지 20여 분. 에어컨이 고장난 탓에 셔츠는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보르도 시내에선 강가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라도 있었지만 오브리옹이 있는 그라브의 프삭은 사막과도 같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가던 중 오른쪽에 샤토 오브리옹의 정문이 보였다.
약속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시계를 보니 3시였다. 포도밭을 둘러보기로 마음먹고 정문을 통과했다. 조그만 포도밭 언덕이 등장하고, 그 사이로 내리막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오브리옹의 양조장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리니 한눈에 경사진 포도밭 전경이 들어왔다. 비탈진 언덕 지형은 특급 샤토들의 공통점일까. 포이악의 샤토 라피트 로쉴드 포도밭이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절경에 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기보다는 가방에 든 카메라를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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