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와인 마니아‘안동 김 여사님’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우서환 비나모르 사장
5년 전 와인으로 제2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잘 되나 보자”는 식의 배 아픈 표정들이었다. 가게 문을 연 지 며칠 후 근처에 산다는 멋쟁이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와인 한 잔을 시켰다. 용모나 차림새가 동네 분이 아닌 듯했다. 깔끔하고 단아했으며 기품이 가득 배어 있었다. 장사를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알아보러 온 듯 이것저것 물었다. ‘그냥 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터라 대충 얼버무리곤 했다. 그는 한참 만에 가게 문을나서면서 “동네에 품격 갖춘 와인 카페가 하나 생겨 좋구먼” 하면서도 걱정스러움을 떨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후로 가끔 와서 컨디션이 좋으면 반 병까지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즐겼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곡은 힘이 있다며 자주 청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손님이 늘어난다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는데 한 번도 계산을 거른 법이 없었다. 때로는 그냥 가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장사는 그게 아니라며 한사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이 멋쟁이 할머니에게만은 와인이 싸든, 비싸든 가격이 고정돼 있었다. 어느새 그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요, 대화 상대였으며, 가게 운영과 인생의 선임자로서 자리매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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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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