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상투적인 서부활극의 주인공으로 각인된 배우였다. 그런 그가 메가폰을 잡고 작품성 높은 영화를 잇달아 내놓았다. 그가 감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전환점으로 삼은 영화가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죠.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은 개인적으로 고귀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엔 용서받기 어려운 일도 존재한다’는 생각과 공존할 때에만 의미를 갖습니다. 원수를 물에 새긴다는 말은 적어도 용서를 빌 쪽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상상해 보시죠.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 모든 사람이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구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하겠는지!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용서하는 도량보다 더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더 근원적이고 일차적이며 우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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