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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이 참치를 유혹하다  

허영만의 ‘와인 식객’ 

글 손용석 기자, 사진 LG트윈와인
허영만 화백을 따라 나선 곳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해산물 뷔페 토다이. 이곳에서 허 화백과 함께 해산물과 화이트 와인의 궁합을 살펴봤다.

“이제 막 밭을 갈고 나온 시골 아주머니 같네요. 손엔 흙을 잔뜩 묻히고 나타난 아낙네들 있잖아요.”

허 화백에게 시골 아낙네로 ‘찍힌’ 주인공은 바로 호주 화이트 와인 ‘카트눅 에스테이트 샤르도네(Katnook Estate Chardonnay)’. 카트눅 샤르도네는 농익은 과일 향이 물씬 풍기는 화이트 와인이다.

오크(참나무)통 숙성을 거치면서 사과를 비롯한 레몬 계열의 아로마가 선명해 언제 어디서 마셔도 아로마가 발산되는 ‘선이 굵은 와인’으로 꼽힌다.

카트눅에 이어 등장한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몽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쿠레(Montagny 1er Cru Les Coueres)’. “이건 완전히 다른데…. 자기 자신 외엔 관심이 전혀 없는 도도한 여인 같네요. 흠잡을 데 없이 잘 차려 입었지만 뭔가 부족해요. 호주 와인처럼 뚜렷하게 향을 발산하기보다는 좀 복잡한 맛을 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명가 메종 몽티유가 생산하는 몽타니는 앞서 마신 호주 와인과 같은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허 화백의 평가처럼 호주 와인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맛을 가졌다.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자체가 오크 향이나 진한 과실 향보다는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어나는 아로마도 은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적으로 변신한다. 한 잔 머금으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바디감이 좋고 고급 와인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산도와 미네랄이 뛰어나 전 세계 와인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다. 호주와 프랑스 와인에 이어 등장한 화이트 와인은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실레니 소비뇽 블랑’.

허 화백이 뜸을 들이다 “이 와인은 밤꽃 향이 나는데…”라고 말하자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허 화백은 “와인이 좋은 것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며 “특히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표현할 때 상대방이 공감을 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와인도 사람처럼 꼴이 있는 것 같다”며 “비록 와인에 대한 ‘내공’이 딸리지만, 10개 정도 꼴로 와인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2월 26일 허 화백과 함께 와인에 맞는 안주를 찾기 위해 방문한 곳은 서울 코엑스와 대치동에 지점을 두고 있는 해산물 뷔페 토다이였다.

1985년 미국 산타모니카에서 처음 선보인 고급 해산물 프랜차이즈 토다이는 200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토다이 측에선 이날 와인에 맞는 안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인 ‘참다랑어’를 비롯해 지금 한창 살이 오른 ‘대게’, 영양분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생선으로 꼽히는 ‘도미’ 등 다양한 해산물을 내놓았다.

해산물에 맞춰 준비된 와인은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화이트 와인들. 와인을 준비한 LG트윈와인의 김수한 대표는 “제철 해산물을 더욱 빛내 줄 와인”이라며 “신대륙과 구대륙 와인을 다양하게 준비해 보다 풍성한 조화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샴페인에 빠진 연어 카나페와 참치 다타키


1 샴페인과 카나페 2 초밥과 소비뇽 블랑 3 대게와 샤르도네
흔히 해산물 요리를 즐길 때 고급 샴페인보다 어울리는 와인은 없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샴페인이란 동네 슈퍼 진열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달짝지근한 복숭아 샴페인이 아닌 프랑스 샹파뉴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스파클링 와인을 말한다.

이날 등장한 샴페인도 프랑스 최고급 샴페인 중 하나인 ‘퀴베 데 무안 블랑 드 블랑(Cuvee des Moines Blanc de Blanc)’. 블랑 드 블랑이란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중에서 화이트 포도 품종인 샤르도네로만 만들어진 샴페인을 말한다.

허 화백은 “드라이한 맛이 일품인 샴페인”이라고 극찬했다. 샴페인과 함께 나온 음식은 참치 다타키와 연어·새우 카나페였다. 다타키(たたき)란 생선을 짧은 시간 내에 겉만 살짝 익힌 것으로 속살은 날로 먹고 겉은 익혀 먹어 생선이 가진 고유의 맛을 최대한 끌어낸 조리법이다.

일본 고치(高知)현의 전통적인 요리법으로 유명하다. 참치 다타키는 참치를 표면만 하얀색이 될 때까지 살짝 구워낸 것이 특징이다. 카나페는 크래커나 빵을 이용해 한쪽 면에 햄, 치즈, 달걀, 어패류, 생선 알 등의 고급 식재료를 얹어 한 입 크기로 즐기는 대표적인 에피타이저. 샴페인의 풍성한 기포가 참치 다타키의 미감을 더욱 부드럽게 해 사르르 녹는 듯 만들었고, 샴페인의 드라이한 맛은 카나페의 담백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대게 속살엔 샤르도네가 최고

대게는 몸통에서 쭉 뻗어나간 다리의 마디 모양과 누르스름한 마른 대나무 빛깔 탓에 ‘대게’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온이 낮은 한류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수온이 높아지면 저항력이 매우 약해진다. 수심이 깊은 바다의 모래나 진흙 속에 몸을 묻고 야행성으로 살아가는데, 특이한 점은 먹이가 없을 경우 동족끼리 잡아 먹기도 하고 혹은 자기 다리를 잘라서 먹기도 한다.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어획하는데, 초봄에 제 맛을 낸다. 이 시기에 10개의 다리에 쫄깃한 살이 꽉 차고, 특유의 뛰어난 향을 간직하게 된다. 허 화백은 “최근 먹는 회나 굴 중에서 자연산은 보기 힘들다”며 “하지만 대게는 양식할 수 없는 해산물”이라고 설명했다. 대게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으로는 샤르도네가 꼽혔다.

호주 카트눅 와인은 풍부한 아로마로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대게의 담백함을 돋보이게 만든다. 균형 잡힌 스타일의 프랑스 몽타니 역시 입안에서 대게의 속살과 잘 녹아 내렸다.

도미 스테이크와 초밥엔 소비뇽 블랑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급 어종으로 분류되고 있는 도미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오래 두어도 맛이 장기간 보존되는 도미는 성체가 되기 직전에 가장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비만 예방에 효과적이며, 콜레스테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고단백 식품이다. 부드러우면서 상큼한 소스가 얹어진 도미 스테이크엔 특유의 신선한 향과 맛을 가진 소비뇽 블랑이 찰떡궁합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소비뇽 블랑의 개성 있는 아로마가 푸짐한 도미 살에 생기를 불어 넣어줬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뇽 블랑은 초밥의 새콤한 맛에도 감칠맛을 더해줬다. 특히 뉴질랜드산 실레니 소비뇽 블랑의 경우 특유의 열대 과일 아로마로 초밥에 얹힌 생선회의 풍미를 그윽하게 만들었다.

200904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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