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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갈 때 과욕을 경계하라 

CEO, 나를 바꿔놓은 한 문장 | 김일섭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 

글 이필재 경영전문기자 jelpj@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

"인생을 돌이켜보니 분수에 맞지 않는 욕구를 다스리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당한 대가를 넘어선 욕심이 모든 재앙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에 이른다’는 성경 말씀을 새삼 되새기게 되죠.”

김일섭(64)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은 이 금언은 개인뿐 아니라 법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잘나가던 기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들을 보면 호황의 정점에서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원인입니다. 한마디로 과욕을 부린 것이죠. 사람이 잘나가다 보면 교만해지듯이 기업도 상향 사이클을 그리다 보면 앞으로 닥칠 하향 사이클을 생각하지 않고 부적절한 시기에 과잉투자를 하게 됩니다. 기업이 나아갈 방향과 기업가의 욕심이 치닫는 방향 사이에서 욕심을 선택하는 겁니다.”

김 회장은 개인 기업 즉 비공개기업과 상장된 공개기업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라고 본다. 기업을 공개하는 건 내 회사를 버리고 우리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를 새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남의 돈이 들어온 공개기업은 망하면 나 혼자 책임지면 되는 비공개기업과 달라요. 그래서 공개기업은 기업가가 사사로운 욕심을 부려선 안 됩니다. 그런데 간혹 그런 욕심을 부려 지속돼야 할 기업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이런 오너 리스크를 제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외부 자문위원회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너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친분을 평소 오너와 쌓은 사람, 사회적으로 이름이 높은 명망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다가 오너가 트랙을 벗어나면 경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사결정 과정의 ‘종심(縱深)’을 깊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의 경우 대기업은 물론 큰 학교에도 대부분 이런 기구가 있다.

그는 사외이사가 이런 자문위원회 역할도 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 2인자가 정면 충돌한 신한금융지주 사태도 이런 관점에서 재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오너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사외이사를 맡다 보니 사실 그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 온 사람은 해당 기업 쪽에서 경계하죠. 그렇지만 사외이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제어가 이뤄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외이사의 눈을 의식해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요.”

공직자는 사표와 유서 휴대해야

장기 집권 자체가 악은 아니다. 세계적 기업 GE의 잭 웰치 회장은 20년 장기 집권하고 후계자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게 대권을 넘겼다. 45세에 취임한 이멜트 회장이 정년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으면 역시 20년 장기 집권이다. 포스코를 일군 박태준 전 회장이나 이건희 삼성 회장도 장기 집권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복수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지낸 김 회장은 그러나 사외이사의 경우 연임까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회사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연임이 필요하고, 삼연임을 하게 되면 회사와 밀착돼 독립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사로운 욕심이다. 사적 이해관계와 공적 이익이 부닥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사익을 선택한다. 공직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을 특채한 것도 이런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은 공직에 들어서는 사람은 두 가지 문서를 늘 가슴에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표와 유서다. 사욕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까?

“언제든 던질 수 있는 공직에 대한 사표와 사인(私人)으로서의 유서를 작성해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휴대하는 겁니다. 사표는 우리 사회의 장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지만 정치적 이유 등으로 좌절하게 됐을 때 직을 걸기 위해 필요합니다. 저는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국민적 저항이 크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일은 주무 부처 장관 세 명이 연달아 사표를 낼 각오로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국민도 설득할 수 있어요. 유서는 사인으로서의 나는 죽었다는 상징적 사망선고입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친구로서의 나는 끝났다는 자기 다짐이죠. 유서 자체는 상징적인 거지만 그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익의 유혹에 빠질 때 품에서 꺼내 읽어 보죠.”

그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멘토링할 때도 과욕을 경계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욕심을 잘 다스려야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죽음만 사망이 아닙니다. 정신적 사망, 인격적 사망도 엄연히 사망입니다.” 오래 해도 질리지 않을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진출 분야를 선택했으면 최소한 만 시간 동안 그 일에 몰입하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시간의 투입이 아니라 몰입입니다.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책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의 조언이죠. 요즘 창의성을 많이 강조하는데 창조야말로 만 시간의 몰입 없이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몰입해 전문가로 성장하되 우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상식을 넓히라고 말합니다.”

공인회계사인 김 회장은 회계업계와 학계를 오가며 회계법인 대표와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을 지냈다. 한국회계연구원장, 한국공기업학회장, 벤처리더스클럽 회장도 역임했다. 그 자신은 욕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일 욕심은 많지만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는 편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거죠. 어느 자리에 앉든 오래 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되레 더 오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인회계사회 이사·부회장을 8년 했는데 최장수 기록이에요.”

201010호 (201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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