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장군 이순신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것도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바로 명량대첩이다. 1598년 또다시 정유재란이 터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명나라와 강화조약을 진행하는 가운데 결국에는 결렬됐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이순신은 투옥되었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백의종군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합천에 있는 권율 도원수 휘하에 머물게 된다.
바로 이즈음,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조정의 성화에 못 이겨 부산으로 출정을 했다. 곧바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멸하고 마는데 바로 칠천량해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부산으로 출정할 때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렇다. 지휘관이 달라졌다. 그 동안은 이순신이 지휘했었다. 그런데 원균이 지휘한 것이다. 전선도 똑같았고 무기도 장비도 군사들도 똑같았다. 그런데 오직 리더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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