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벤처 신화의 파르테논 

THE WORLD’S RICHEST CITY❽ palo alto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는 벤처와 정보기술(IT)로 부를 일궜다. 애플·구글·페이스북은 이곳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신화를 이루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문 곳이기도 하다.

▎미국 팔로알토에 있는 HP 본사(왼쪽)와 인접 지역인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오른쪽). 이 지역은 세계적인T기업들의 태동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에 있는 인구 6만4000명의 소도시 팔로알토는 미국을 상징하는 부자 도시다. 이곳은 1인당 평균소득이 5만7257달러로 미국 내 인구 5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6위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다. 소득 중앙값(크기순으로 배열했을 때 중앙에 있는 값)은 9만377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부자가 많다는 얘기다. 애플 본사가 자리 잡은 쿠퍼티노는 1인당 평균소득이 4만4749달러로 미국 내 11위, 실리콘밸리에서 2위다.

팔로알토 부자의 특징은 자수성가다. 전통 굴뚝산업이 아닌 벤처와 정보기술(IT) 산업 분야를 일궈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며 거대한 부를 이뤘다. 팔로알토의 유명한 부자의 면면을 살펴보자.

203억 달러 재산을 가진 미국 13위 부호 래리 페이지(40) 구글 창업자, 110억 달러 재산으로 미국 부호 29위에 오른 로렌 파월 잡스(49,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부인), 94억 달러 자산가로 미국 36위이자 미국 청년 1위 부호인 마크 저커버그(29) 페이스북 창업자가 이곳 주민이다.

야후의 공동 창업자 제리 양과 데비 필즈, 유튜브 창업자 자웨드 카림, 잡스의 후계자 팀 쿡 애플 회장, 마리사 메이어 야후 회장 역시 팔로알토에 거주한다. 뿐만 아니다. 이곳의 알타 메사 공동묘지는 IT산업의 국립묘지 격이다. 휴렛팩커드(HP)의 공동 창업자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 2011년 세상을 떠난 IT의 전설 스티브 잡스가 잠들어 있다.


▎스티브 잡스의 팔로알토 집 앞에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사과가 놓여 있다(2011년).
잡스는 1980년 팔로알토에 정착해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도시에 살았다. 미국 벤처와 IT산업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임을 보여준다. 잠시 붐을 이뤘다 이내 쇠락하는 황금광 도시와 달리 팔로알토는 IT분야에서 혁신을 이뤄내고 새로운 산업을 기르고 있다. 창의와 혁신은 이들의 키워드다.

이들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미국 경제를 이끌었고 미국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미국이 계속 쥐는데 기여했다. PC-인터넷-모바일-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어지는 거대한 IT, 미디어 문화와 경제 혁명을 이끌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7월은 IT경제가 모바일과 SNS의 결합으로 새롭게 자극받고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 시기였다. 저커버그는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페이스북의 전체 광고 매출 가운데 모바일 광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SNS 기업 페이스북은 모바일 광고 팽창에 힘입어 부활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올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18억1000만 달러로 업계가 예상한 16억2000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순이익은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65% 증가한 4억8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광고 매출이 전 부문에서 늘었으며 전자상거래 부문의 광고는 전년 동기 대비 2배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전체 광고 매출액 15억9900만 달러에서 모바일 광고 비중은 41%로 지난 분기의 30%보다 11% 포인트 늘었다.

실적 발표 뒤 페이스북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쳤다. 7월 31일(현지 시간) 뉴욕증시 나스닥시장에서 페이스북 주가는 장중 주당 38.31달러로 14개월 만에 공모가였던 38달러를 웃돌았다. 기업공개(IPO) 이후 수개월 동안 부정적 전망을 받으며 먹튀 논란까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화려한 성과다.

저커버그는 주가 급등으로 6일 동안 47억2000만 달러(약 5조2700억원)를 벌었다. 주가가 그동안 42% 올랐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6000만 주의 스톡옵션을 제외하고도 4억2500만 주의 페이스북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주가 상승으로 저커버그가 부유한 주식의 총액은 159억8000만 달러(약 18조원)로 치솟았다. 저커버그의 총 재산은 189억4000만 달러로 추정돼 블룸버그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서 36위로 급상승했다.

실적의 바탕이 된 페이스북 이용자는 끝없이 늘고 있다. 하루 한 번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이용자(DAUs)는 7억 명에 이른다. 이 중 모바일로 접속하는 이용자 수는 4억7000만 명으로 67%를 차지한다. 모바일에서만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 지난 분기 1억9000만 명에서 이번 분기에는 2억2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페이스북이 모바일 문화를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모바일 광고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모바일 광고는 세계 모바일 광고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이번 실적 발표를 보면 이 비중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구글과 페이스북의 시대다.

벤처 스타 배출한 스탠퍼드대가 중심

IT와 인터넷 비즈니스의 대명사인 구글, SNS문화와 산업을 이끈 페이스북은 PC혁명과 모바일 혁명을 주도한 애플과 함께 팔로알토에서 부화했다. 모두 팔로알토에서 길러진 혁신적인 IT기업이다. 왜 팔로알토일까. 이 도시에는 미국 테크놀로지 기업의 터줏대감 HP를 필두로 수많은 IT기업과 벤처기업이 있다.

마우스 산업의 선두주자 로지텍, 인터넷 결제와 송금 문화의 선구자 페이팔, 그리고 IT산업의 초기 주자 선마이크로 시스템스도 팔로알토에서 성장했다. 미국을 상징하는 창의적인 상당수 거대 IT기업의 인큐베이팅(incubating)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 기업들은 한결같이 세계 경제사를 새로 쓰게 할 만한 영향력이 있다. 그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전통산업인 제조업의 가치와 생산성이 예전만 못해진 21세기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팔로알토에 벤처기업이 모인 가장 큰 이유는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스탠퍼드대학이다. 명문 스탠퍼드대는 창의와 혁신의 정신으로 1960년대 이후 미국 첨단기술의 상징이 됐다. 실제 수많은 벤처와 IT 사업가들이 스탠퍼드 출신이다. 첨단기술 중심의 연구개발 능력이 학생과 연구자, 그리고 엔지니어들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 주변에 연구 파크를 세운 것이 기술 연구개발 클러스터의 효시가 됐다. 이곳에 모인 인재들이 과감하게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후배들에게 많은 자극이 됐을 것이다. IT 분야에서 초기에 벤처 성공신화를 쓴 인물의 명단은 이 학교 동문 명단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빈트 서프 박사를 시작으로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야후 공동 창업자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벤처 1세대인 HP 창업자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도 이 학교 동문이다.

시스코시스템즈의 설립자 레오나드 보삭과 샌드라 러너,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공동설립한 앤디 벡톨샤임, 비노드 코슬라, 스콧 맥닐리 역시 스탠퍼드대 동문이다. 물론 하버드대 출신인 저커버그를 비롯해 스탠퍼드 출신이 아니지만 이 도시에 뿌리 내린 벤처 영웅도 많다.

네트워킹이 다른 곳보다 용이한 점이 세계 인재를 모이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선 비가 적고 온화한 기후도 사람을 끄는 매력으로 꼽는다. 여기에 잘 발달한 도로, 공항 등 다양한 인프라도 강점이다. 무엇보다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큰 흡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스탠퍼드대의 존재는 팔로알토 한 도시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 도시가 자리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의 남부일대에 세계적인 첨단기술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를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지역은 특허 생산, 고급 인력의 밀집도, 벤처자본의 투자 등에서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기술 혁신과 벤처문화의 상징이다. 기술이 인재를 부르고 인재가 기술을 생산하고 다시 기술이 자본 투자를 이끌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손꼽히는 부자 도시가 된 것이다. 지식기반산업으로 부를 일군 모델이다.

이곳 벤처산업에서 꽃핀 새로운 기업문화, 투자문화는 세계로 퍼져나갔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문화 가운데 중요한 것이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이다. 지금도 창의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상상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벤처자본 투자가들이 몰려든다.

도전정신으로 부를 일구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행정 구역상 산타클라라 카운티와 거의 겹친다. 인구 178만 명의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지난해 조사에서 미국 내 대도시 가운데 경제 실적이 가장 좋은 지역으로 꼽혔다. 실리콘밸리의 위력이다.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는 새너제이다. 인구 98만 명의 새너제이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도시다. ‘실리콘밸리의 수도’라는 별칭이 있다. 80만 명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를 제치고 북부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가 됐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다.

새너제이가 실리콘밸리의 활력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소도시 팔로알토는 벤처의 핵심인 혁신을 상징하는 도시다. 스탠퍼드대 중심의 연구와 핵심 기술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는 도시에 머물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엔지니어와 사업가·투자가와 증권회사 직원, 컨설턴트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 정보를 바탕으로 기술을 거대한 산업으로 만드는 궁리를 하는 곳이다. 아이디어를 돈으로 전환하는 벤처 비즈니스의 심장부가 바로 이곳이다.

노키아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북미 연구센터가 팔로알토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적인 항공기 제작사이자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도 둥지를 틀고 있다. 세계적인 증권 회사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메릴린치는 뉴욕 본사를 제외하고 가장 큰 지역 사무실을 여기에 열었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이 캘리포니아 사무실을 이곳에 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한 창의도시 팔로알토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중심인 벤처경제발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팔로알토는 도시를 넘어 국가, 국가를 넘어 세계경제 이끄는 거대한 혁신과 창조경제의 현장이다.

201309호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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