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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주식부터 호텔까지 가리지 않는 ‘바이 코리아’ 

 

우리나라 주식·채권·부동산에 투자한 ‘차이나 머니’가 20조원을 넘어섰다. 다른 외국인이 ‘팔자’에 나설 때도 중국인 투자자들은 사들인다. 휘청거리는 패션기업을 자본력으로 주워 담고, 한국 철강산업의 메카인 포항에 철강기업 진출을 모색한다.



국내 증권·부동산 시장에 유입된 ‘차이나 머니’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우리금융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국내 증권시장에 유입된 차이나 머니 잔액은 총 19조8600억원으로 집계됐다. 4년 6개월 전인 2008년 말 4711억원과 비교해 무려 42배 증가했다.

여기에 국내 부동산에 투자한 중국 자금은 지난 6월 말 1조3400억원에 달해 전체 차이나 머니는 21조2000억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기관·민간 투자액을 모든 합한 금액이다. 채권과 부동산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주식에서 크게 늘었다. 주식은 올해 다른 외국인들이 일제히 ‘팔자’에 나설 때도 중국은 2조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2008년부터 급증하는 중국 자금의 국내 유입은 지난해부터 채권에서 주식 위주로 선회하는데, 이는 과거 패턴뿐 아니라 최근 전체 외국인 자금의 흐름과도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임한나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차이나 머니 유입을 보면 초기에는 국가기관 중심으로 들어왔으나 최근 민간자본이 늘고 있다”며 “조만간 개인투자자가 해외 증권시장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제도가 중국에 도입될 예정이어서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자본은 주식 시장 투자뿐 아니라 금융회사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중국국부펀드의 하나인 중국투자공사(CIC)가 참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07년 설립된 CIC는 총자산이 5700억 달러로 기업 인수합병(M&A)의 큰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전 세계 광산과 금융업체에 투자해 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이 지난해 말 설립한 투자자문사 파인스트리트가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위해 다양한 투자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CIC도 컨소시엄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파인스트리트 측은 “중국 국부펀드를 포함해 미국과 유럽 빅 펀드들과 협의 중이다. CIC는 정치적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어디까지나 재무적 투자자로 경영권과는 관계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CIC의 참여가 거대 중국자본의 한국시장 투자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을 평가하면서도 자칫 중국당국이 한국 금융자본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CIC 자회사인 중국회금공사는 19개 국유은행·보험·증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성중 선임 연구원은 “CIC의 해외 금융업체 투자는 단순 국부펀드 투자의 의미를 넘어 중국 금융업체의 글로벌 경영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CIC의 자국 금융기업 투자를 비공식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CIC가 이번 인수전 참여를 계기로 한국 M&A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본다.

중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는 패션업계에서 가장 활발하다. 막대한 자본과 중국 내 유통망은 갖고 있지만 자체 브랜드가 부족한 중국 기업의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안나실업이 더신화의 캐주얼 브랜드 ‘인터크루’를 인수했고, 12월 디샹그룹은 ‘BNX’ ‘카이아크만’을 판매하는 아비스타의 최대주주가 됐다.

올해 초에는 ‘블루독’ ‘알로봇’ 등 아동복 브랜드를 가진 매출 1500억 원대의 서양네트웍스가 홍콩 기업 리앤드펑그룹에 매각됐다. 리앤드펑은 지난해 프랑스 고급 브랜드 ‘소니아 리키엘’을 인수하는 등 글로벌 인수합병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매출 21조 원의 대기업이다. 또 이효리가 모델로 활동했던 ‘GGPX’ ‘클라이드앤’ ‘탑걸’ 브랜드의 연승어패럴도 중국 패션기업 산둥루이에 매각됐다.

중국 기업의 한국 패션 기업 인수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 쇼핑몰과 백화점 등 유통 채널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자국에 전개 중인 브랜드로는 이를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국내 패션업체의 상품 기획력과 디자인 능력이 중국의 자금력·생산기반과 합쳐지면서 윈윈 전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 시장에 독자적으로 진출해 성공한 국내 패션 업체가 손에 꼽힐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내수시장 진출 효과와 함께 보다 손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브랜드 가치 하락과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철강업계에서도 차이나 머니 바람은 거세다. 지난 9월말 세계 4위의 중국 철강업체 바오스틸이 경기도 화성시 석포리에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준공했다. 대지면적 3만4517㎡, 투자금액 260억원 규모다. 국내 중소기업인 GNS와 합작 설립한 비지엠이 운영을 맡았다. 비지엠은 바오스틸로부터 원자재를 들여와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할 계획이다. 바오스틸은 1977년 상하이에 설립된 중국 1위의 철강 국영기업으로 2010년 기준 총자산 77조원, 12만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의 메카인 경북 포항에도 중국 철강업체가 진출할 전망이다. 중국 내 1위 강판기업인 판화그룹은 포항시 외국인 전용단지 내 5만㎡ 부지에 2200억원을 투자해 착색도장설비와 아연도금설비를 들여올 계획이다. 판화그룹은 중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포항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메이드 인 코리아’ 프리미엄을 달고 유럽에 수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기권 포항시 기업유치과장은 “판화그룹의 포항시 유치를 위해 실무협의를 했고 이흥화 회장 등 오너를 포함한 실무진이 포항시를 다녀갔다”며 “포항시로써는 할 수 있는 제안을 다 해놓은 상태로 판화그룹의 결정만 남았다”고 밝혔다.


▎8월 시장 조사에 나선 중국 바이어들이 중국 상하이 코리아패션센터를 찾아 국내 의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 자본은 한국 패션기업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패션업체 인수, 철강은 포항 진격

국내 업체들은 ‘자동차 생산기지인 울산에 도요타 공장이 들어오는 격’이라며 반발한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투자는 회사의 자유지만 이미 국내 철강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에서 중국 기업 진출이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기업이 가격 할인을 앞세워 내수 시장을 공략하면 국내 업체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내 기술과 관련 분야의 인력 유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2003년 전 세계 철강 생산량에서 중국산 비중은 23%에 불과했지만 지난 8월에는 50%를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차이나 머니의 표적이 패션업계였다면 올해 들어서는 호텔 사업에 관심이 높다. 호텔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인천도시공사가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인 인천 하버파크호텔을 중국 기업이 인수할 예정이다. 현재 하버파크호텔의 감정가는 51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외 지역에서 한국 호텔이 중국 자본에 인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 문을 연 이 호텔은 인천 중구 항동에 위치한 특2급 비즈니스호텔이다. 213개 객실을 갖추고 숙박료가 저렴해 최근 몇 년간 중국인 관광객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과 가까워 주로 중국인 관광객과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국내 소무역상들이 이용해 왔다.

바로 옆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선 안정적인 매출 구도를 확보하는 셈이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의 윤재효 과장은 “2011년 말부터 중국 업체들이 부동산 컨설팅업체를 통해 호텔 인수를 문의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미 제주도엔 중국 자본이 인수해 운영하는 호텔이 10곳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M&A 시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종규 삼성증권 책임 연구원은 “공격적 M&A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중국 기업의 M&A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은 우리의 기술력과 브랜드를 흡수해 내수 시장의 고급화 니즈를 충족시키고, 국내 업체는 중국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 맞물리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투자은행(IB) 및 인수합병 업계에서는 차이나 머니의 다음 물색 대상이 화장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실적이 탄탄해 매물로 잘 나오지 않지만 지분 인수나 재무적 투자 등의 방법을 문의하는 중국 기업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수출을 통해 덩치를 키운 중국 기업이 자국 시장 경쟁에 뛰어들면서 독자 브랜드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저력 있는 한국 중견 화장품 업체의 신생 브랜드에 중국 기업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 패션·화장품 브랜드 인수 후엔 아웃도어 업체로 눈을 돌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홍콩에 본부를 둔 사모펀드 유니타스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에 1900억 원을 투자한 바있다.

차이나 머니의 급증은 투자 다각화 효과가 있지만, 급격한 자금유출이 있을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 중국 자금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정연우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기업의 투자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과 국내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우리 브랜드 가치 하락과 기술 유출 등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201311호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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