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건축은 다양한 크기의 창문과 화초 등으로 서울부민병원 건물에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연미건축의 장명희 소장(왼쪽)과 인의식 대표는 사각형을 모티프로 서울부민병원을 설계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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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가득 탔던 사람들은 모두 ‘PH’ 층에서 내렸다. 섭씨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인데도 옥상에 있는 정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잔디는 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납작 엎드려 있는가하면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뽐내며 연신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환자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이곳은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의 서울부민병원이다. 건물의 설계를 맡았던 인의식 연미건축 대표는 “환자들이 옥상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었다.서울부민병원 건물의 콘셉트는 ‘사각형’이다. 옥상과 1층 공개공지에 있는 돌로 만든 의자부터 건물 외벽에 각기 다른 크기의 창문, 그리고 내부 조명과 중정(中庭, 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 등에서 사각형을 일관되게 볼 수 있다. 지하 강당의 좌우 벽에 부착된 손바닥만한 사각형은 조명 역할을 한다. 인 대표는 이 건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었다.“불규칙한 형태의 사각형이 유기체처럼 건물을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게 만들었어요. 건물 밖의 공개공지부터 흐름이 시작돼 내부로 스며들었죠.” 크기가 다른 창문들이 일정하지 않게 배치된 덕분에 진료실과 입원실에서 바라본 풍경 역시 제각각이다. 서울부민병원은 지상 10층과 옥상, 그리고 지하 2층으로 구성됐다. 정흥태 인당의료재단 이사장은 이 병원을 지으면서 기존의 병원 로고를 초록색 사각형으로 바꿨다. 건물에서 모티프를 땄다.이 건물이 생명체로 거듭날 수 있는 건 바로 ‘식물’ 때문이다. 건물 대지 면적(1770.10㎡)의 1.5배 되는 공간이 화초로 가득하다. 환자는 진료실에서 의사 등 뒤의 창 밖으로 나무를 볼 수 있다. 2·3층과 9·10층에 창문처럼 생긴 베란다에는 나무를 심어 자연과 어우러져 생활할 수 있다. 건물 한쪽에 ‘ㄷ’자로 들어간 외벽 유리 창문에는 담쟁이 덩굴이 커튼처럼 타고 오른다.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담쟁이 덩굴 너머로 볼 수 있다. 자연을 한 겹 씌워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려는 의도다.인 대표는 “병원답지 않은 병원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환자가 집에 가기 싫어할 만큼 편안한 병원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이 같은 생각은 정 이사장의 생각과 통했다. 정 이사장은 “병원은 병을 치료(Therapy)하고 환자를 치유(Healing)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부민병원은 부산지역에서 유명한 척추, 관절 전문병원이다. 1985년 문을 연 ‘정흥태 정형외과’가 그 시초다. 최소 상처 척추수술과 인공관절수술 경험이 많고 줄기세포 연골재생술 치료를 주도하는 등 최신 의료기술에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고난도의 고관절(엉덩이관절) 내시경 수술을 할 수 있다. 또한 내과,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함께 진료하는 협진 시스템을 갖췄다. 2011년 문을 연 서울부민병원은 부산 북구 만덕대로의 부산부민병원, 사상로의 구포부민병원에 이어 셋째 병원이자 서울의 첫 병원이다.
▎건물 곳곳에 네모난 유기체가 박혀있다. (위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건물 외벽의 네모난 틈으로 자라나온 나무들. 옥상의 네모난 돌 벤치. 건물 천장에 네모난 조명들. 강당 양쪽 벽의 네모난 불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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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인테리어도 직접 설계정 이사장은 서울에 진출한 이유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부민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는 “서울을 넘지 않고서는 브랜드를 전국에 알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환자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서울의 병원과 직접 경쟁하면서 배우면 지방 병원도 한 단계 성장할 거라 생각했습니다.”서울부민병원 터는 원래 주유소였다. 정 이사장은 “강서지역에 종합병원이 별로 없어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응급의료센터는 항상 적자지만 의료는 공공성이 있으니 적자를 보더라도 운영하는 게 맞습니다.”서울부민병원이 들어설 대지를 매입하고 설계 사무소 네 곳에 지명현상설계(건축주가 설계사무소를 몇 군데 지목해 설계를 제안할 수 있게 한 것)를 맡겼지만 정 이사장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고민하던 중 연미건축을 알게 됐다. 부부 건축가 인의식 대표와 장명희 소장이 이끄는 곳이다.충북 옥천에 있는 금강휴게소를 비롯해 경기 이천의 덕평 휴게소, 서울 서초구의 레티스 하우스 등 자연을 녹여낸 설계로 유명하다. 정 이사장은 “자연 환경이 환자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연미건축과 궁합이 잘 맞았다.인 대표는 “건물 골조뿐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하나의 조율된 음을 전달하듯 건축과 인테리어, 조명과 가구를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였죠.” 연미건축은 병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흰색을 없애고 자연에서 따온 초록색, 흙색, 나무의 미색 등을 사용했다.내부 벽은 물론 소파, 안내 데스크 색깔도 모두 식물과 흙에서 따왔다. 장 소장은 “특이한 외관 때문에 사람들이 공사비가 많이 들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시공할 때 불필요한 거품을 뺐어요. 건물 외벽을 비싼 원석 대신 인조석을 사용했습니다.”척추 관절 전문병원이라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배려해 입원실과 진료실, 엘리베이터 등의 배치에 각별히 신경썼다. 바닥의 턱을 없애고 휠체어 수납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효율적인 동선을 구현했다. 완공 이후에도 1층 출입구의 장애인 전용 주차장 및 접근로를 개선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 및 음성안내장치를 보완했다.화장실 세면대 전면 거울과 장애인을 위한 변기센서, 호출벨을 설치하는 등 장애인 편의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건물은 2012년 의료기관 중 최초로 서울시로부터 ‘서울형 장애물없는 건물’ 인증을 받았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를 포함해 누구나 시설물을 이용할 때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장애인이 직접 현장을 심사하고 서울시가 평가·인증하는 제도다.정 이사장은 서울에 진출하던 때를 떠올렸다. “촌놈이 서울에 올라온다고 하니 인근 병원에서 견제가 있었습니다. ‘저 병원이 잘 될까’라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많았죠. 서울부민병원이 개업했을 때만 해도 환자가 별로 없었어요. 직원 200명가량만 병원에 있었습니다. 직원들 월급 날은 금방 돌아오는 것 같고…. 하지만 2년 만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서울에만 의사, 간호사를 포함해 300명 정도 근무해요.” 서울부민병원은 김포공항 등과 인접해 아랍에미레이트, 러시아에서 찾는 외국인 환자가 한 해에 수백 명에 이른다.정 이사장은 집무실 창문 옆에 앉아 말했다. “바람이 불때 잔잔하게 흔들리는 나무와 풀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롤 스크린을 내리면 밖에 있는 나무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2015년 문을 여는 부산 해운대의 부민병원의 설계도 연미건축에서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