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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 KOREA CEO HAN, SEUNG-HUN 

마케팅 없이 마음으로 

사진 전민규 기자
프랑스 명품브랜드 에르메스는 대량생산이나 분업을 하지 않는다. 장인 한 명이 하나의 제품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 제작한다. 에르메스코리아의 한승헌 대표는 그것이 바로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한승헌 대표는 에르메스는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장소는 에르메스 메종 2층 리빙공간. 에르메스 메종은 패션·리빙을 판매하는 매장과 레스토랑, 갤러리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프랑스 명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 에르메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은 명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에르메스는 6대에 걸친 17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에르메스의 디자인을 가장 잘 표현한 켈리·버킨백, 실크 스카프·넥타이는 클래식 아이템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1837년 말안장과 마구용품으로 시작해 가죽 백과 향수, 남녀 기성복, 가정용품 등의 라인을 갖추고 있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7%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은 전년대비 13% 성장해 37억5000만 유로(약 5조5900억원)에 이른다.

한승헌(53) 에르메스코리아 지사장과 마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꼬박 3개월. 국내외 일정이 워낙 빠듯했던 탓이다. 지난 2월 25일 오전 10시 매장 문도 열지 않은 시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에르메스 메종을 찾았다. 2006년 지어진 5층 건물로 지하 1층은 레스토랑, 1~3층은 매장, 4층은 갤러리, 5층은 사무실이다. 인터뷰는 5층에 있는 한 대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럭셔리’ ‘한승헌’이라는 문구가 적힌 코카콜라 2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코카콜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한 대표는 다국적 기업 P&G와 코카콜라, 그리고 NHN 마케터를 거쳐 2005년 LG전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입사했다. 2009년 LG전자 스페인 법인장을 역임하고 2012년 6월 에르메스 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작가 나현의 전시회.
장인이 만들어내는 제품들

명품 브랜드와 전혀 다른 일을 했던 한 대표가 에르메스코리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패션 분야만 놓고 보면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에르메스는 패션만 취급하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그릇·가구 등 생활용품도 많아요. 올 하반기에는 ‘펜’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에르메스의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에 가장 끌렸다고 했다.

에르메스 제품은 가죽 다듬기부터 수만 번 바느질까지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도맡는다. 한 대표는 에르메스는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 장인이 만드는 예술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에르메스에는 분업이 없다. 가방 한 개의 평균 제작 시간은 17시간.

한 대표는 “한 달에 장인 한 명이 가방 8개도 못 만든다”고 했다. 에르메스 가방을 구입하기 위해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숙련된 장인이 일대일로 1~2년 동안 새로 입사한 장인을 가르칩니다. 훈련만 받았다고 해서 제품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서 1년에 10%씩 장인을 늘리고 있습니다.” 현재 에르메스에는 가죽 장인 3000여 명이 있다.

에르메스는 재료를 고를 때부터 최고급을 선택한다. 가죽 제품은 100% 프랑스산, 시계는 스위스에서 전량 만들고, 일부 원단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다. 그래서 가죽 제품은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 시계는 메이드 인 스위스(made in swiss), 일부 옷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라고 표기돼 있다. 한 대표는 “업체 간 경쟁이 점점 심해져 좋은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며 “고품질의 재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했다. 품질 관리도 남다르다. 완성된 제품에 이상이 생기면 그걸 만든 장인이 다시 제작하거나 고친다. 그래서 각각의 가방에는 장인의 각인이 있다.

한 대표는 “장인이 기획 총괄, 가방 제작, 관리를 모두 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결함이 발견되면 1억원짜리 가방이라도 폐기처분한다”며 철저한 제품 관리시템을 자랑했다. 아무리 장인이 만들지만 제품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말에 한 대표는 “제품 가격은 소비자의 구입 여부와 상관 없이 생산 비용과 인건비에 따라 결정한다”고 답했다. 가격이 비싼 게 아니라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다.

“에르메스가 다른 명품과 다른 점이 뭔지 아세요? 매장에 ‘신상품’이란 표시와 세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처럼 유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품질에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습니다. 이것이 에르메스의 정신입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중무장한 다른 기업과는 달리 이윤에 대한 압박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능한 미술가를 발굴해 지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다각도로 후원하는 등 문화증진에 아낌없이 힘을 쏟고 있죠. 그런데도 최대 이윤을 올리니 아이러니하죠?” 한 대표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다.

그래서 에르메스에는 마케팅 부서가 없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듭니다. 우리가 들인 비용이 곧 ‘가격’입니다.” 매년 가격이 오르는 것도 “원가 상승에 따른 결정”이라고 한 대표는 덧붙였다.

올해는 남성 패션을 알리는데 주력

에르메스코리아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예술계를 지원하는데 적극적이다. 2000년에는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을 제정했다. 매년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상금 2000만원과 전시회 개최 등 메세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2001년부터는 부산 국제영화제의 공식 행사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을 후원한다. 공로상을 받은 영화인에게는 에르메스가 제작한 ‘디렉터스 체어’를 증정한다. 1988년에 합류한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로니크니샤니안은 클래식함과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해 상류층 남성복을 매년 선보인다. 그의 컬렉션 키워드는 ‘컨템퍼러리, 단순함, 매력’이다.

흔히들 에르메스 남성복 하면 긴 역사 때문에 클래식하다는 고정관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에르메스 남성복은 트렌디함을 찾는 젊은 층부터 클래식함을 선호하는 중·장년층까지 폭넓게 수용한다. 한 대표는 “에르메스 남성복은 클래식, 캐주얼, 스포티한 아이템 등 선택의 폭이 넓다”고 했다. “자기만족감이 가장 높은 옷입니다. 제 친구 중에는 에르메스만 모으는 친구도 있어요. 넥타이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신분이 달라졌다고 느껴질겁니다.” 아직 많은 사람이 에르메스에 남성복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한 대표는 올해 남성복 알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2014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은 보헤미안 시크와 차분한 실루엣을 보여주는 룩으로 구성됐다. 가벼운 자연소재를 사용했는데 면 수트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편안한 착용감에 도시적인 세련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에르메스는 매년 새로운 테마와 함께 상품을 출시한다. 올해 테마는 끊임없는 변화, 변신, 변용을 의미하는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다. 청마의 해를 맞아 에르메스의 변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201404호 (201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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