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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계의 나폴레옹 배에 오르다 

 

글 함승민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병아리 10마리를 키우던 11세 소년이 3억 마리의 닭을 생산하는 매출액 5조원 회사의 주인이 됐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얘기다. 닭고기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그 일환으로 최근 해양운송업체 팬오션을 인수했다.

▎국내 대표 축산 업체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닭을 형상화한 조형물 옆에 앉았다. 그는 닭고기 산업의 수직계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4년 연말부터 큼직한 이슈를 몰고 다니는 경제계 인물이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다. 나폴레옹의 모자를 경매에서 26억원에 낙찰 받아 시선을 끌더니, 한 달도 안돼 해상운송업체 팬오션 인수라는 ‘뜬금포’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장으로 정부와 재계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치 않는다. 하림그룹 계열사인 NS홈쇼핑 판교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그동안 정리한 구상을 실현시키는 과정이지 깜짝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림은 국내 닭고기 시장 31.6%를 점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 업체다. 한 해 3억1300만여 마리의 닭을 생산한다. 이 중 98%는 계약농가에서 공급받는 닭이다. 하림과 계약된 닭 사육 농가는 1200여 곳에 달한다. 여기서 생산된 닭을 하림은 신선육(생닭)이나 치킨너겟 등 가공 제품으로 만들어 판다. 2013년 하림의 국내 닭고기 부문 매출은 약 1조1000억원이다.

‘사료-축산-유통’으로 수직계열화


▎하림의 공장 직원들이 닭을 포장지에 담고 있다
닭고기 사업은 하림의 일부에 불과하다. 같은 해 하림그룹의 전체 매출은 4조8000억원을 웃돈다. 닭고기 부문 매출은 전체의 4분의 1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는 하림이 사료·돼지고기·홈쇼핑 사업으로의 확장을 통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때문이다. 특히 사료 사업의 규모가 크다. 김 회장이 “매출 규모만 보면 하림은 닭고기 회사보다는 오히려 사료 회사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하림은 사료 가공으로 2013년 닭고기 부문보다 많은 1조 4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국내 민간 사료 기업 중에서는 최대, 전체에서는 농협 다음으로 크다. 연간 230만t의 곡물을 수입해 사료를 만들어 40% 가량은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는 사육농장과 종계농장에 공급한다.

하림이 사료 사업에 뛰어든 건 1990년대다. 김 회장은 “축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사료 시장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닭고기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곡물을 수입해 필요한 사료를 우리가 직접 만들고, 키운 닭을 직접 가공하고, 유통까지 아우르는 계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농장(사료, 사육)-공장(도계, 가공)-시장(유통)을 통합하는 이른바 ‘3장 통합’이다. 실제로 그는 1999년 사료가공업체 그린바이텍을 설립하고, 2년 뒤에는 국내 최대 규모 민간 사료업체인 천하제일사료(2001년)를 인수했다. 같은 해 농축수산물 전문 쇼핑몰 NS홈쇼핑까지 출범시키고 그룹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3장 통합의 박차를 가했다. 이후에도 사료, 사육, 육가공 회사 등을 인수·설립 하면서 회사의 외형을 키워왔다.

끝이 아니다. 김 회장은 2015년 벌크선사 부문 국내 1위 해운사인 팬오션을 인수할 예정이다. 2014년 12월 진행된 팬오션 매각 본입찰에서 하림은 국내 사모펀드(PEF)인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단독으로 참여해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입찰가로 1조500억원 안팎의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금액인 8000억원을 크게 웃돌았지만, 김 회장의 인수 의지가 확고했다.

팬오션을 통해 하림은 사료 생산에 필요한 곡물을 자체 운송할 계획이다. 나아가 글로벌 곡물유통업 진출에도 시동을 걸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곡물 수입국입니다. 곡물 자급률이 23%에 불과해요. 특히 사료용 곡물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이렇다 할 곡물유통 업체는 없어요. 곡물을 사오려면 해외 곡물 메이저의 손을 빌려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건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예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글로벌 곡물유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팬오션, 글로벌 곡물유통업 위한 발판”


그렇더라도 사업 다각화가 너무 과감한 건 아닐까.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다각화가 아니라 전문화”라고 답했다. “팬오션 인수도 축산이라는 틀 안에서 수직계열화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료 생산에서 곡물 운송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팬오션 역시 넓게는 축산업 범주에 속한다”며 “사료 사업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선 해상운송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화는 그의 평소 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늘 단순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조직은 인체와 같아요. 전체는 복잡하지만 각 세포는 정말 단순하고 전문화한 각자의 역할이 있잖아요. 각자가 정말 잘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 역할은 하나 하나를 재능에 맞게 잘 배치하는 거죠.” 김 회장은 자신이 일찍 사업에 뛰어든 것도 ‘적성에 맞춰 세상에 배치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닭고기 사업의 시작은 열한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기른 것이 계기였다. 공짜로 받은 병아리를 키워 장에서 마리당 250원에 팔았다. 당시 초등학생에겐 거금이었다. 닭을 기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용돈까지 생기니 신이 났다. 2500원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천생 장사꾼다운 발상이었다. 마당에서 키운 병아리를 팔고 다음엔 돼지를 샀다. 이렇게 사업을 조금씩 키워갔다.

축산업에 푹 빠져 고등학교도 인문계가 아닌 농고로 진학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가출 시위까지 벌이며 내린 결정이었다. 고3 때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어느새 닭 5000마리와 돼지 700마리를 기르는 농가로 컸다.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도 뒀다. ‘학생 사장’을 찾아 ‘아저씨 직원’들이 결재를 위해 학교로 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위기도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25세 때 찾아왔다. 1970년대 말 닭값과 돼지값이 폭락하면서다. 당시 그는 연이율 60%의 고리 사채까지 끌어다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빚쟁이에 쫓겨 돼지 막사 옆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다.

세 차례 고비 넘으며 경영 노하우 익혀


이런 시련에도 그는 사업을 관두지 않았다. 식품회사에서 일하며 6년 동안 빚을 갚은 그는 다시 닭고기 사업에 뛰어 들었다. 수직계열화를 구상한 것도 이때다. “돼지고기 값은 떨어졌는데, 소시지 값은 그대로더라고요. 거기서 축산업은 가격 변동이 크지만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변동 폭이 크지 않아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1986년 육가공 업체 하림식품을 설립한 후 닭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잘 나가던 회사는 외환위기 때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420억원을 들여 공장을 증축한 직후였다. 10%대의 이자는 28%로 치솟았다. 수요가 급감해 새로 지은 공장은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했다. 다행히 하림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서 2000만 달러를 투자 받아 위기를 넘겼다.

가장 큰 위기는 2003년이었다. 화재가 나 공장이 전부 타버린 것이다. 손실규모는 1100억원에 달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퍼졌다. 닭고기 수요가 급감했다. 그해 4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뼈에서 땀이 나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식은땀으로 이불이 젖어 있어요. 지옥을 오가는 나날이었죠. 그런데 돌아보면 위기에서 얻은게 많아요. 사업 모델도 구상하게 됐고, 재무 안정성의 중요함도 깨달았죠. 큰 위기를 한 번 겪을 때마다 4년제 경영학과를 두 번 졸업하는 효과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위기가 지금의 김홍국과 하림을 만든 겁니다.”

마지막 위기를 넘긴 후 하림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닭고기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국내 최대 축산 업체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2007년부터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해외에서도 사료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 미국의 닭고기업체 ‘앨런패밀리푸드(현 앨런하림푸드)’를 인수하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김 회장은 “본격적인 해외 사업에 앞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 시장을 보던 중, 좋은 매물이 나와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 나폴레옹은 기업가 정신의 상징”


2014년 하림의 미국 법인은 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김 회장은 “미국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해외 매출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닭고기 생산량은 1700만t이다. 국내 전체 생산량의 34배에 달한다. 미국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40㎏) 역시 한국(11.6㎏)보다 많다. 그는 한·중 FTA를 통해 열릴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위기 보다는 기회로 보고 기대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회사 얘기를 마치고 이슈가 된 나폴레옹 모자에 대해 물었다. 김 회장은 2014년 11월 16일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 나온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를 약 26억원에 구입해 화제를 낳았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평소 높이 사왔다”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매 참여는 처음이다. 경매 직전 소식을 듣고 200만 유로의 예산으로 참가해 일본인 자산가와의 경쟁끝에 모자를 낙찰 받았다.

“기업가는 나폴레옹처럼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외면해버리거든요. ‘가능하다’는 생각부터 모든 게 시작됩니다. 1%의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게 기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많다”며 “낙찰 받은 모자를 2015년 완공 예정인 서울 논현동 하림그룹 본부 사옥에 전시해서 이 정신을 ‘리얼’하게 전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견기업이 본 기업 규제 - “잘못된 규제는 기업가 정신 저해”

김홍국 회장은 “제도적 문제로 인해 기업가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운을 뗐다. ‘기업 규제’로 조금씩 화제가 옮겨가면서 김 회장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경련)의 규제개혁위원장으로서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는 “정부의 기업에 대한 차별규제가 기업가 정신의 저해 요인”이라고 역설했다.

기업 규제의 어떤 점이 가장 문제인가.

무엇보다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규제가 문제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커질수록 규제가 많다. 여기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부의 지원 방식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직접 지원 대상을 선택하고 배정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해외에서는 지원금 배정을 펀드 같은 형태로 시장에서 판단하게끔 한다.

차별규제가 만드는 부작용이란?

기업은 존속도 중요하지만 성장을 해야 한다.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밀어 넣고,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차별규제는 중견·중소기업이 부가가치 창출 없이 그저 연명만 하게끔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법인 중 99.9%가 중소기업일 정도로 중소기업의 수가 많아져 카니발리즘(동종 잠식)이 발생한다. 경쟁자가 많다보니 가격을 후려칠 수 밖에 없고, 그럴수록 더 영세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도 심각한데.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수가 늘어야 한다. 젊은이 들은 중견기업 이상 돼야 취업하려고 한다. 그들에게 중소기업에 가라고 떠밀지 말고,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중견기업이 성장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가업승계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독일에선 우리와 같은 직접적인 지원 대신 7년 간 기업을 유지만 해도 상속세를 면제해준다. 독일에 기업가 정신을 살린 히든 챔피언이 많은 이유다. 우리 경제는 상속이 어려운 구조다. 실제 과세되는 세목을 합산하면 세율이 80%가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업승계가 단절되면 중견기업이 경쟁력 있는 장수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상속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지금 비난 받을 수도 있는 주장인데.

떳떳하다. 중견기업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말을 할 뿐이다.

201501호 (20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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