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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2주년 특별 대담]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윤병철 한국FP협회 회장 - 사즉생의 각오로 혁신하라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포브스코리아가 창간 12주년을 맞아 재계 원로들에게 한국 기업이 갈 길을 물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 윤병철 한국FP협회 회장은 2월 13일 서울 양재동 동원산업 회장실에서 만나 한국 경제를 진단하며 폭 넓은 대화를 나눴다.두 사람은 윤 회장이 1960년대 한국개발금융에서 일할 때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대담이 끝나자 바로 건강 얘기가 나왔다. 김재철 회장(오른쪽)이 “골프 한번 치자”고 하자 윤병철 회장이 ‘에이지 브레이크(나이보다 적은 타수를 기록하는 것)’를 한 분과 게임이 되겠느냐며 웃었다.
윤병철- 아까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시더군요. 저보다 한참 앞섰습니다. 하하.

김재철- 출장이 잦다 보니 뉴스를 바로 확인해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

윤- 요즘에는 좋은 뉴스가 많지 않지요. 경제위기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도 위기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가 간 공조로 2009년에는 경기가 좀 회복됐어요. 그런데 각 나라마다 펀더멘털(기본 여건)이 다르니 긴급처방의 부작용이 나타난 거지요.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이 7.4%로 최저치를 기록했다는데 이런 뉴 노멀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김- 세계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의 부재가 큰 문제입니다. 세계를 이끌 강대국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역시 국민통합이 안되고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요소만 놓고 보면 과거에 이보다 더한 위기도 많았거든요.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기름값이 1리터당 1달러70센트에서 9달러까지 치솟았으니 눈 앞이 깜깜했지요. 6.25전쟁도 겪었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이 아주 큰 위기는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데도 최근의 위기를 유독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 풍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을 방치하면 수습할 수 없는 큰 위기가 닥칠 겁니다.

윤- 동감입니다. 그래서 각계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거죠.

김- 개개인이 역사적 인식 없이 자신의 입장만 강조하면 불평, 불만이 쌓여 ‘분노의 사회’가 됩니다.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한국 경제가 잘한 것도 많습니다. 지난해 474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내지 않았습니까. 빈부 차가 심하다고 하지만 미국보다는 덜합니다.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말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거지요. 신입사원 면접을 보면 빈부 차가 심해 걱정이라면서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수치)가 뭔지, 한국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모르더군요.

윤- 그런 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소통입니다. 리더뿐 아니라 개인도 ‘퍼스널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마음이요.

김- 예, 요즘은 영웅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라고 하더군요. 서로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고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리더십 부재가 불신 풍조 가져와


윤- 경제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소득 배분이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겁니다. ICT(정보통신기술)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산업현장에서 인간이 소외된 것이 한 원인입니다.

김-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출현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지요. 동원사업도 태평양, 인도양에서 조업할 때 인공위성이 실시간으로 사진을 분석해 어류의 위치를 알려 줍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기술 발달이 다 좋으냐 하면 사람을 산업현장에서 배제하기 때문에 꼭 그렇지 않거든요. 함께 걸어가면 나란히 갈 수 있지만 뛰어가면 서로 격차가 벌어집니다. 속도가 빨라 한번 뒤쳐지면 따라잡기 어렵고요.

윤- 파도가 칠 때 다음 파도가 밀려오기까지 간격이 있지요. 지금이 그런 과도기입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 잘 모르죠. 그러니 더 혼란스러운 겁니다. 이럴수록 각계 지도자들이 소통하고 화합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을 해 가야 합니다.”

김- 경제 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항상 교육 문제로 귀결되는 데요. 맨날 현대적 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변화를 수용 못하는 오래된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같습니다.

윤- 새로운 기술에 대비하는 수업도 필요합니다.

김- 예.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인간성입니다. 인간이 현장에서 배제되는 것이 문제라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기계의 소프트웨어도 결국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서로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중요한데 인성 교육은 방치하고 있습니다. 동원그룹도 몇년 째 ‘소통’ ‘화합’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쉽게 녹아들지 않습니다. 얘길 하다 보니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윤- 그래도 한국 젊은이들이 굉장히 도전적입니다.

김- 세계를 다니다 보면 저도 그 모습에 놀랍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것만 찾는다고 하는데 외국 젊은이들과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자랄 때는 ‘하우 투 서바이브(how to survive)’의 문제였으니까 그때만큼 헝그리 정신이 강하지는 않겠지요. 요즘은 ‘하우 투 엔조이(how to enjoy)’ 아닙니까. 사회가 이들을 잘 길러 내야 합니다. 실업률이 9%라고 하는데 체감률은 그보다 높을 겁니다. 배운 사람일수록 불만이 클 수 있거든요. 젊은이들을 국내에 두지 말고 외국으로 내보내서 교육해야 합니다. 동원그룹은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와 산학 협약을 맺고 글로벌 기술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실무영어 강의가 인기인데 ‘기름을 쳐라’ ‘먼지를 닦아라’ 같은 공장에서 실제 쓰는 영어를 가르칩니다.

윤-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한 외국 전문가가 한국에서는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을 글로벌 기업이라 한다고 꼬집더군요.

김-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외국어 요즘 많이들 잘하지요. 그런데 막상 비즈니스 할 때는 실력 발휘를 못합니다. 말하고 글 쓰는 건 되는데 논쟁이 안돼요. 회사를 경영하려면 논쟁이 필수인데 그러니 소통이 안되지요. 불어 능통자를 한 명 뽑겠다고 하면 수백 명이 옵니다. 그런데 통역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외국에 나가는데 비용이 몇 배로 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동원산업도 엄밀히 말해 매출의 절반이 외국에서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글로벌 하냐고 하면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젊은이들 세계로 눈을 돌려야


윤- 그래도 동원산업은 미국 참치 캔 회사 스타키스트, 세네갈의 S.C.A SA를 인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기업의 글로벌화 라는 것은 현지화가 답입니다. 인력, 시스템을 현지화하고 현지 기업을 움직이면서 점점 우리 노하우를 전파하는 것이지요.

김- 맞습니다.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직원을 기르고 현지화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자꾸 일을 벌여야 합니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정면 승부해야 합니다. 우리 때야 ‘깡’으로 밀어붙였지만 요즘은 기술력,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습니까.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윤- 기업이 타성에 젖어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정부가 무엇을 해주지 않아 경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 모두가 정부에 지원을 요구합니다. 정부가 누군가를 지원하려면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수탈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가 사업하기 좋게 제도를 바꿔주고 외국과 비교해 불리한 점만 생기지 않게 해주면 됩니다.

윤-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때죠. 요즘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기업들이 저마다 신성장사업을 육성하겠다고 합니다.

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사업이 중요하지만 그런 산업으로 돈을 번 사람은 극소수거든요. 말 그대로 첨단, 엣지(edge) 아닙니까. 신사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윤- 저는 신성장사업의 범위를 더 넓게 보는데요. 현 기술을 활용해 기존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거죠. 각 산업 분야마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도 지원해줘야 하고요.

김- 하늘에서 별 따는 식으로 신사업만 강조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일본에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한다.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업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세계적인 벤처회사가 정부 돈을 지원받아 성공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정부의 ‘눈 먼 돈’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윤- 저 역시 정부가 할 일은 형식적으로 돈을 지원해주기보다 벤처경영을 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예. 제도 면에서 그리 척박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요즘은 기술금융이라고 해서 좋은 기술이 있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까. 다만 제도와 예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윤- 맞습니다. 기술금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부분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은행이 여전히 기술보다는 눈에 보이는 걸 담보로 잡으려고 하거든요. 금융산업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현재 산업에서 금융의 위치, 정말 부끄럽지요. 최근에 한국에서 철수한 외국 은행 관계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은행을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또 주주가 아닌 사람이 경영에 참여하는 행태와 외형을 키우기 위해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금융권에 많은 자율성이 주어졌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금융 지주의 수장 임기 3년이 끝나면 또 잡음이 나지 않습니까. 물론 금융업계도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면 달라져야 합니다.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새로운 자금 활용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시도해보라는 겁니다.

김- 금융산업이 초기에는 각 산업에 기름을 쳐주는 윤활유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금융이 그 자체로 산업화됐는데도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원론적인 인식에만 묶여있는 거죠. 식품업, 의료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가 산업이라기보다 규제대상입니다. 돈 버는 자체를 죄악시하는 풍토는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윤- 경기를 활성화하려면 규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허허. 규제개혁 하면…, 제가 1993년부터 5년 동안 행정쇄신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습니다. DJ 정부 때 규제개혁위원회 위원도 맡았고요. 규제개혁은 한 마디로 어떻게 해야 한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통치자가 의지를 갖고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그 아래에서 더하기 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윤- 반기업정서도 규제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김- 헌법 위에 정서법이 있다고 하는데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역시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지금 대기업이 경영승계를 하려면 상속세를 내야 하지요. 이를 제대로 지킨다면 무작정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업은 오래 가지 못 할 겁니다.

대기업일수록 도덕적 정당성 필요


윤- 우리나라 기업이 과거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더 엄격한 잣대로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큰 기업일수록 오너가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해야지요.

김- 리더에게 정직성, 투명성, 자기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부분도 있어요. TV 드라마에서 재벌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다루곤 하는데 요즘 어디 기업들이 그렇습니까. 마도로스 하면 배 위에서 파이프 물고 있는 모습만 떠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 세기 전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CEO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결단력이지요. 또 구성원들이 따라오게 하려면 아까 얘기한 대로 정직성, 투명성, 자기 희생을 갖춰야 하고요. 많이 알기 전에 사람을 다루고 구성원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윤- 맞습니다. CEO의 역할은 힘을 모으는 겁니다. 한 사람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 더 보태면 선견지명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업의 제일 높은 곳에 있으니 멀리 보고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지요. 인공위성의 궤도를 언제 수정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CEO입니다.

김- 결정을 잘하려면 역사적 인식과 상황 판단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너 경영 체제가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물론 실패한 사례도 있겠지만 이런 결단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몇 십 년은 뒤쳐졌을 겁니다.

윤- CEO이자 대주주니 영향력이 더 커서 그렇지요. 하지만 내부 토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김-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해 외국에서 삼성, 현대차 같은 대기업의 성공사례를 연구합니다. 압축성장의 부작용만 얘기하지 말고 환경의 변화를 직시해야 합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 진행·정리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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