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는 정체기에 빠진 국내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시니어케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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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유한킴벌리 고객지원센터. 상담원과 고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나는 요실금이 아니다’, ‘상자에 제품명은 넣지 말아달라’ 등 요실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객들 때문이다. 견본품 하나를 주문하는데도 10분 이상 주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던 어느날 센터에 변화가 일어났다. 유한킴벌리가 고객지원센터에 ‘시니어 상담사’를 채용하면서부터다. 주저하던 고객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일하는 정경자(56) 상담사는 “얼굴은 몰라도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또래임을 알아챈다”며 “‘나도 요실금이 있다’고 하면 주저하던 고객들도 금새 적극적으로 달라진다”고 했다.
다가올 초고령사회에 주목하다기저귀 신화를 일군 유한킴벌리에게 블루오션이 열렸다.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액티브(역동적인) 시니어(장년층)’에 주목한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공유가치창출(CSV) 경영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액티브 시니어 캠페인’을 벌이고 시니어케어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시니어를 고용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를 사회의 소비 주체로 만들어 고령화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과 아울러 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자 지난 3월 2일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유한킴벌리 본사에서 최규복(59) 유한킴벌리 대표를 만났다.“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인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이 성장이 멈춘 상태죠. 게다가 소비 불평등으로 소비계층의 양극화 현상 같은 사회 문제는 기업 성장에 또 다른 장애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기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최 대표는 주저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의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사회공유 가치를 처음 주장한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 얘기부터 꺼냈다.“기업이 취약계층을 지원하면 나아진 생활수준 덕분에 소비활동도 늘어나 기업도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이클 포터 교수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 취약계층 중에서도 시니어 계층에 주목했죠. 누구나 나이가 들면 닥칠 문제입니다. 결국 시니어케어 사업을 통해 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입니다.”유한킴벌리는 국내 기저귀 등 유아용품, 여성용품 등 국내 각종 생활용품 시장에서 1위 기업이다. 1970년 유한양행과 미국의 킴벌리 클라크가 합작으로 설립한 생활용품 기업으로 현재 국내 기저귀시장 점유율 60%(온·오프라인 합산)를 차지해 어렵지 않게 매출 1조원 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각해지자 1등 기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했다. 시니어케어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다. 종이 기저귀 ‘하기스’ 신화를 직접 경험한 최 대표에게 시니어케어 사업은 또 다른 기회인 셈이다. 그는 이에 대해 “소외계층인 시니어에 시선을 돌려 기업 성장의 기회를 찾으면서 동시에 고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1석2조의 비즈니스 형태가 우리가 택한 미래를 위한 투자다”라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가 주목하는 시니어케어 사업은 실제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생활용품 시장 규모는 2010년 약 2조원 규모에서 2020년 3조원에 달할 전망이고, 유통·제조업 등 시니어 산업과 연관되는 산업까지 합하면 2020년에는 약 125조원으로 4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 전체 산업 중 시니어 산업 비중이 미미하지만 일본의 경우 전체 산업에서 2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고령화 수순을 밟고 있어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실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6년이면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시니어 비즈니스 육성이 단순한 복지 차원으로 치부하기에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 대표는 중장년층을 경제 주체로 이끌어내기 위한 일부터 실천하고 있다. 그는 “액티브 시니어에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경제 성장잠재력도 높이고, 고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며 “명확한 시장이 없는 단계라 단기간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과거 일회용 기저귀 시장처럼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유한킴벌리는 이를 위해 실질적인 대안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사내 시니어기금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니어가 일할 수 있는 소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나 마케팅 등 기업 운영 능력이 부족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동시에 시니어 채용도 지원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액티브 시니어의 경제 활동을 돕고 있다. 2013년 ‘제타랩(시니어 인생 재설계 아카데미)’, ‘이플루비(액티브시니어를 위한 패션 돋보기)’, ‘해피 인터내셔널(시니어 기능성 언더웨어)’ 등 12개 기업이 선정됐고, 27건의 시니어 아이템 개발 지원에도 나섰다. 작년까지 누적으로 22개 기업을 정하고, 이들이 가진 59개의 아이템 과 서비스 개발을 지원했다. 앞서 고객지원센터 직원의 일부를 시니어로 선발하도록 한 것도 이같은 지원 노력의 결과다. 시니어 일자리 만들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최 대표는 자신이 시니어 상담원을 면담한 경험을 들려줬다. “시니어케어 제품 상담원으로 시니어를 고용했습니다. 처음엔 우려가 많았죠. 몇 달이 지난 후 만난 시니어 상담원은 한층 더 밝아보였습니다. 그들에게 경제활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그 이상이었던 거죠. 업무 숙련도·만족도는 물론 고객 상담 만족도도 크게 좋아졌더군요. 그때부터 시니어케어 사업을 꼭 추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요실금 팬티는 생필품이다?
▎유한킴벌리가 진행하고 있는 ‘시니어가 자원이다’ 광고의 한 장면(왼쪽). 유한킴벌리의 기저귀 브랜드 ‘하기스’가 중국 프리미엄 기저귀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한 마켓에서 하기스 기저귀를 살펴보는 고객들의 모습(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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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의 시니어케어 사업의 대표주자는 노년층 기저귀다. 2012년에 내놓은 ‘디펜드 스타일 팬티(요실금 팬티)’는 매년 30% 가까운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요실금 팬티는 많은 양의 소변도 빠르게 흡수해 장시간 외출과 취침 시에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디자인 역시 일반 속옷과 거의 차이가 없어 거부감이 없다. 2시간 이상 외출이 가능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40대 이상 여성, 50대 이상 남성이 주요 타깃이다. 유한킴벌리는 성능 개선에도 200억원 가까이 투입하는 등 제품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시니어 제품을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서울 종로와 경기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2곳과 대구 등 총 3개 매장에서 2012년 10월부터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생활용품 판매점인 ‘골든 프렌즈’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유한킴벌리가 새로 선정한 소기업의 시니어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시니어 제품 복합몰 오픈도 올해 준비 중이다. 복합몰 오픈을 계기로 시니어 일자리가 최대 200개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니어 수요가 많은 금융·마사지 등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 서비스 등도 점차 확대 제공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액티브 시니어를 사회로 이끌어내려는 유한킴벌리의 이런 노력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기자의 질문에 최 대표는 대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얘기를 꺼냈다.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캠페인이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랜시간 국민·정부·기업들이 함께 해 5천만 그루 나무 심기에 성공했습니다. 사회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시니어가 자원이다’라는 캠페인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최 대표도 이런 노력이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는 “우리의 노력이 단번에 사회를 변화 시키지는 못하겠죠. 시니어 세대를 향한 국민적인 관심이 커지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이라고 해두죠”라고 웃었다.시니어 캠페인 소개에 열을 올리던 최 대표는 1980년대 유아 기저귀 ‘하기스’ 마케팅 담당을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천 기저귀가 보편화돼 일회용 기저귀를 쓰면 가정주부가 직무유기한다며 쏘아붙이던 시절이었죠. 일회용 종이 기저귀가 팔릴 리 만무했습니다. 하도 안 팔리니까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러다 ‘88 서울 올림픽’을 치룬 이후 매년 2배씩 성장했던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니어 산업도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려 성장할 분야라고 봅니다.”
저출산 위기를 중국·일본 시장 공략으로현재 유한킴벌리의 최대 과제는 저출산 문제로 겪는 매출 감소 해결이다. 2013년, 유한킴벌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2012년 매출 1조4000억 원에서 1조3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종이 기저귀 ‘하기스’가 첫선을 보인 1983년보다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절반이나 줄어든 현실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임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은 2014년 기준으로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유한킴벌리의 독무대였던 국내 기저귀 시장이 수년째 6천억원대에 정체된 이유다. 그래도 유한킴벌리는 국내시장 사수에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집토끼를 놓치지 않는 전략. 안전한 제품 만들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기저귀를 비롯한 아기 물티슈는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원천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유한킴벌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기준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자체적으로 정한 사용 제한 물질 파라벤류, 합성·알레르기 유발 향료 59종을 소비자에게 이미 공개했다.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해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업계 1위 자존심도 버려야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마트와 손잡고 자체브랜드(PB) 상품인 ‘이마트 크린베베 기저귀’를 선보였다. PB상품은 시장 후발 주자들이 생산해온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 그 전에는 PB상품이 유한킴벌리의 고유 브랜드에 유·무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꺼려왔기 때문이다.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2009년에서 2013년까지 최근 5년간 해외 누적 수출 규모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2300억원이 넘는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2003년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에 나선 이후 현재 중국·러시아·영국·일본 등 50여 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도시에서 ‘하기스’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벌써 60%를 넘어섰다. 중국시장에서 그동안 일본산 기저귀가 고품질 기저귀로 통했다면 이제는 ‘하기스’가 중국 고품질 기저귀 시장을 주름잡는 셈이다.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한 현지 상황과도 맞물려 고품질 기저귀를 찾는 중산층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저귀 시장인 일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아마존 재팬 등 온라인을 통해 일본에서 기저귀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 기저귀 시장 규모는 약 1조7000억 원으로 세계 5위권에 해당한다. 일본 신생아는 연간 약 100만 명으로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이다. 해외 제품에 배타적인 것으로 유명한 일본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등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유한킴벌리는 이처럼 국내외 기저귀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시니어케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매출 2조원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유한킴벌리가 창업주 유일한 선생 영향으로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혁신·책임·기술경영 등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는 방법 중 하나죠. ‘윤리’라는 말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쯤으로 보는 좁은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