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회사들의‘살아남기’경쟁이 치열하다. 친환경ㆍ안전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차 개발비가
수 천억원씩 들어가는데다 모델까지 다양하게 늘려야한다. 생존하려면 개발비와 모델 수를 줄여야 한다.
이를 해결할 묘책으로 플랫폼 통합이 화두로 떠올랐다.
▎현대 아반떼·투싼·i40와 기아 K3·카렌스는 모두 같은 플랫폼으로 만든 차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뼈대와 동력계통이 흡사해 성능은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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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완성차 업체들은 친환경 규제의 강화로 더 많은 연구개발비의 노예가 되며 궁극적으로 지금의 신차를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모델은 갈수록 유지하기 어렵다”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최고경영자가 2015년 4월 실적투자가(IR) 콘퍼런스에서 내놓은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스위스계 거대 은행인 UBS 부회장 출신의 금융인인 마르치오네의 언급은 요즘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자동차 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설비 산업이다. 연간 30만대 규모의 공장 설립에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1100억원)가 필요하다. 이런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여년 동안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가장 국제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산업의 자리를 꿰찼다. 인류의 근대사에 있어 어떤 산업보다도 영향력이 컸다.자동차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급속한 IT 기술의 발전과 친환경과 충돌 안전을 강조하는 미국ㆍEU 정부의 압박이다.마르치오네의 보고서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는 오늘날 거의 무한대의 자본투자를 요구받는다. 연비향상 및 매연 절감 규제를 맞추면서 충돌 및 보행자 안전에도 투자해야 한다. 전기차ㆍ무인차로 대변되는 IT 기술 발전에도 대응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몇 갑절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부어야 할 상황이다.그 결과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톱10 완성차 업체들의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 관련 비용이 대중차는 12%, 고급차는 10%씩 매년 증가했다. 이런 투자비용 증가는 다른 산업인 소비재, 건축자재나 화학산업에 비해 최대 5배가 많다는 게 마르치오네의 주장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엄청난 연구개발비 가운데 상당액이일반 소비자가 구분하기 어려운 분야에 투자됐다는 점이다. 신차 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 가운데 45%는 소비자가 경쟁 제품 간의 차별을 느끼기 어려운 분야였다.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업체의 한결같은 화두는 신차를 싸게 개발하는데 모아졌다. 이런 해결책으로 등장한 게 ‘플랫폼 통합’이다. 플랫폼은 차체를 구성하는 뼈대를 말한다. 하나의 뼈대를 개발한 뒤 이를 늘리고 줄여 여러 차종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개발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구글이 계획중인 ‘아라(Ara) 스마트폰’의 핵심은 누구나 조립할 수 있는 플랫폼이 특징이다. 스마트폰 골격에 모듈화된 부품을 끼워 맞추면 스마트폰이 완성된다. 이처럼 틀과 규격화된 부품만 갖춰 놓으면 조립은 단순해진다. 자동차 회사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이라는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부품을 얹어 자동차를 만든다. 체계적으로 잘 만든 플랫폼은 여러 차종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플랫폼 공유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세단ㆍ해치백ㆍ컨버터블ㆍ왜건ㆍ쿠페 등 보디 형태를 달리해서 차종을 늘린다. 다른 차종 간에도 플랫폼 공유가 이루어진다.예를 들어 현대 아반떼는 세단이다. SUV인 투싼도 아반떼 플랫폼을 쓴다. 기아 카렌스도 이 플랫폼으로 만든다. 세단 플랫폼으로 투싼 같은 SUV, RV인 카렌스를 만드는 것이다.대부분의 플랫폼 공유는 비슷한 크기의 차급에서 이루어져 동력장치(파워트레인) 공유로 확대된다. 엔진과 변속기도 대개 같은 것을 쓴다. 폴크스바겐 골프와 아우디 A3는 브랜드가 다르지만 MQB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파워트레인도 1.6L 디젤+7단 자동변속기(DSG), 2.0L 디젤+6단 자동변속기(DSG)로 같다. 한집안 자동차라면 같은 뼈대를 쓰는 게 유행이다. 심지어 모기업이 다르더라도 제휴를 맺어 뼈대를 공유한다. 도요타와 푸조ㆍ시트로엥은 기술 제휴를 통해 각각 소형차 아이고, 108, C1을 만들었다.
플랫폼 통합의 선봉장 폴크스바겐
▎도요타의 통합 플랫폼인 TNGA. 2015년을 시작으로 2020년 전체 차종의 절반 이상에 이 플랫폼을 적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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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플랫폼 수는 대폭 줄었다. 핵심은 유연성이다. 이전에는 차의 크기에 따라 플랫폼이 고정됐다. 보디는 크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뼈대는 건드릴 수 없었다. 2010년 이후 새로 나오는 플랫폼은 뼈대 자체를 늘이고 줄이고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차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플랫폼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플랫폼 통합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폴크스바겐이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여러 브랜드로 구성돼 있다. 럭셔리 스포츠카 뷰가티부터 람보르기니, 벤틀리, 아우디, 폴크스바겐, 세아트, 스코다 등 고급차와 대중차, 스포츠카와 패밀리카 등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뼈대는 한 핏줄이다. 페이톤의 D1 플랫폼은 벤틀리 컨티넨탈 시리즈에 쓰인다. 아우디 스포츠카 R8과 람보르기니 우라칸도 뼈대가 같다.2012년 폴크스바겐이 개발한 MQB 플랫폼은 효율성에서 당대 최고로 꼽힌다.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는 전륜구동 전용 플랫폼이다. 차의 실내공간 길이를 좌우하는 휠베이스부터 오버행(범퍼부터 바퀴까지의 길이), 폭 등 치수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소형차인 폴로부터 중형 세단 파사트까지 MQB 플랫폼을 활용한다. 이런 MQB 플랫폼을 사용하는 모델 가짓수만 현재 30개에서 2018년에는 MQB를 사용하는 차종이 60개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폴크스바겐 그룹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모델만 200개가 넘는다. MQB 플랫폼 공용화로 부품과 개발비는 20%, 생산 시간은 30% 줄였다.프리미엄 브랜드를 보유한 대중차 업체도 플랫폼 공유에 적극적이다. 도요타는 1989년 미국에서 렉서스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기존 도요타 차의 뼈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디자인을 바꾸고 실내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해 렉서스를 내놓았다.플랫폼 공유 유행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대ㆍ기아가 대표적으로 같은 플랫폼을 쓴다. 현대 쏘나타와 기아 K5는 뼈대와 동력장치가 똑같고 껍데기만 다른 이란성 쌍둥이다. 아반떼와 K3, 엑센트와 프라이드 역시 마찬가지다.이처럼 요즘 글로벌 자동차 회사는 플랫폼을 공유해 자동차를 생산한다. 하지만 2000년 이전만 해도 차의 크기에 따라 플랫폼을 각각 따로 만들어 플랫폼의 개수는 여러 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플랫폼 한 개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1000억원 이상이다. 플랫폼 종류를 줄이지 않으면 엄청난 개발 비용이 들어간다. 플랫폼이 줄어들면 비용은 물론, 개발 시간 단축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차종 간에 부품까지도 공유하는 모듈화가 더해지면 플랫폼을 줄이는 효과는 더욱 커진다.GM은 2000년대 중반까지 무려 26개 플랫폼을 운용했다. 그러다 보니 신차 개발비가 엄청나게 들었고 고비용이 누적되면서 2008년 부도가 나는 원인이 됐다. 뒤늦게 플랫폼 공용화에 눈을 뜨고 2025년까지 4개로 통합하기로 했다. 통합 작업에는 수조원의 부담이 발생하지만, 통합 이후 매년 10억 달러(약 1조11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 정도면 초기 개발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부품결함에 대규모 리콜 단점도
▎가볍고 여러 차종에 적용이 가능해 2010년 이후 최고의 플랫폼으로 불리는 폴크스바겐의 MQ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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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는 2015년 3월 통합 플랫폼인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를 발표했다. 부품공유 비율은 70~80%에 이르고, 20%의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한다. TNGA는 앞바퀴굴림 소형차로 시작해 뒷바퀴굴림 대형차로 확대할 예정이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금과 같은 사고나 업무 처리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며 “올해 TNGA를 도입한 신차 투입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절반이 넘는 모델에 TNGA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르노ㆍ닛산 그룹은 5개 모듈로 나뉜 CMF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CMF는 엔진, 운전석, 앞뒤 언더보디, 전장(電裝) 등 5개 모듈로 이루어진다. 각 모듈은 소형 해치백부터 대형 세단까지 유연하게 커버할 수 있다.BMW는 앞바퀴굴림 1개, 뒷바퀴굴림 1개 등 2개의 플랫폼으로 통합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인데다 벤츠와 달리 상용차가 없어 모델이 많지 않아 4개 플랫폼을 운용해왔다. 이마저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1시리즈, X1 등 뒷바퀴굴림 모델이 플랫폼 통합에 따라 앞바퀴굴림으로 바뀔 예정이다. BMW 산하 소형차 브랜드인 미니(MINI)와 BMW의 소형차는 앞으로같은 플랫폼을 쓰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앞바퀴굴림, 뒷바퀴굴림, 대형 SUV, 크로스오버, 스포츠카 등 네 개의 플랫폼으로 정리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플랫폼 통합에 나서 현재 6개로 줄였다. 이 6개로 40개가 넘는 모델을 만든다.플랫폼 단순화가 장점만 있지는 않다. 부품 결함이 발생하면 리콜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초기에 개발비가 많이 드는 것도 부담이다. 도요타가 2009년 미국발 리콜 파동으로 1000만대가 넘게 리콜을 한 게 바로 플랫폼 공용화가 원인이다.디자인은 다르지만 파워트레인이 같아 차종 간에 특색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껍데기는 다른데 성능은 같은 차가 범람한다. 이전부터 갖고 있던 차 하나의 특색이 사라지면서 소비자의 선택의 폭도 줄어든다. 플랫폼 통합이 유행이지만 모두에게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단점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수익을 동반한 지속적인 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