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패션업계의 셀러브리티,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 아시아 대표 패션위크로 만들어내겠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직을 맡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패션은 물론 영화와 무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새로운 도전으로 다시 한 번 성공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서울패션위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정구호 총감독. 그의 목표는 서울패션위크를 본래의 목적과 기본에 충실한 세계적인 이벤트로 만드는 것이다.
“서울패션위크를 아시아 대표 행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살려 서울패션위크를 패션 전문 트레이드 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실력 있고 가능성 있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국내 패션 산업이 발전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쌈지, 구호 등의 브랜드로 유명한 디자이너 정구호가 패션업계로 돌아왔다. 지난 2013년 제일모직을 떠나 국립무용단의 창작무용 연출 등으로 ‘외도’를 감행했던 그의 복귀 무대는 패션디자이너가 아닌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이미 그 이름만으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성공의 상징이 된 패션업계의 셀러브리티가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패션위크의 중책을 맡았다는 사실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12일, 서울 동대문 유어스빌딩 5층에 마련된 서울패션위크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총감독직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패션 산업이나 디자이너들을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누가 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 자리인지라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솔직히 잘해야 본전인 자리죠.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이 자리까지 온 만큼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재능기부인 셈이죠.”

패션 부흥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


▎최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K패션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패션 한류의 물결이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에서 열린‘2015 F/W 서울패션위크’의 한 장면.
계절에 앞서 미리 유행할 옷을 선보이는 패션위크(fashion week)는 각국의 내로라하는 정상급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집중적으로 열리는 주간을 뜻한다. 19세기,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유래됐으며 요즘처럼 기성복 위주의 컬렉션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뉴욕·밀라노·파리·런던에서 열리는 4대 패션위크가 대표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베를린·로스앤젤레스·동경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정 감독은 “한 해의 패션 트렌드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해외 유명 패션위크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바이어들이 대거 참석한다”며 “서울패션위크가 아시아 대표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뉴욕패션위크처럼 1조원대의 경제적인 이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위크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큰 하나의 산업이에요. 전시장에서의 의류 수주 계약은 물론 기획사, 여행사, 운송업체, 숙박업체, 음식점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돼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컬렉션이 시작된 시기는 1990년. 진태옥·이신우·이상봉 등 12명의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를 발족하고 그해 11월 제1회 SFAA 컬렉션을 선보였다. 10년 뒤인 2000년 10월, 서울시가 서울패션위크를 창설하면서 또 하나의 컬렉션이 생겼다. 이후 2012년 SFAA 컬렉션이 서울패션위크의 서울컬렉션에 통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뉴욕·밀라노·파리·런던에 이어 세계 5대 패션위크를 목표로 시작됐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가야할 길이 멀다.

정 감독은 과거 자신도 “SFAA 컬렉션에 초대받은 최초의 신인 디자이너였다”며 “그때 받았던 혜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디자이너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뉴욕패션위크와 비교했을 때 서울패션위크의 규모나 수익은 아직 초라하다”며 “하지만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의 인기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에 대한 선호도 역시 급상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선 K패션 바람이 미약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게 보고 있어요. 패션 한류의 물결이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로 이어진다면 뉴욕패션위크에 버금가는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패션위크

패션업계에서는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론칭하며 소위 ‘구호 스타일’을 만들어낸 정 감독이 서울패션위크에서도 과연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른바 ‘정구호표 패션위크’를 만들 수 있는지 묻자 정 감독은 우선 “기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했다. ‘2016 S/S 서울패션위크’가 바로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행사의 본질로 돌아가는 작업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패션위크는 국내 패션산업과 디자이너를 해외에 소개한다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어요. 컬렉션은 원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죠. 다시 말해 특정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자신들의 컬렉션을 홍보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 인력을 초대해서 선보이는 자리에요. 그런데 이게 마치 시민행사처럼 진행되다 보니까 정작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정 감독은 서울패션위크를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을 찾아 국내 브랜드들을 살펴보고 사업 계약을 맺는, 본연의 B2B 행사로 되돌릴 계획이다. 양보다는 질적으로 성숙한 행사로 키워나간다는 전략이다. 그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홍보’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해외 유명 홍보 에이전트와 계약해 행사를 알리고, 행사 자체도 정비해 관심을 끌 만한 요소를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오프닝 이벤트와 엔딩 이벤트를 좀 더 눈에 띄게 기획할 계획이다. 엔딩 이벤트로는 그해 최고의 디자이너, 패션업계에 기여한 인물, 신인 디자이너에게 주는 상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간 영화 의상을 제작하고 창작무용을 연출하며 쌓은 경험들이 패션위크 행사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서울패션위크도 다양한 사람과 협업해 만드는 일종의 큰 공연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눈앞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가 올해 서울패션위크에 배정한 예산이 27억원으로 예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패션 콘텐트의 경쟁력으로 이러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예산에는 관심 없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다른 나라에선 컬렉션에 나랏돈을 지원하는 사례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기업 협찬이나 프라이빗 펀딩을 통해 재정을 확충할 계획인데, 컬렉션 자체의 퀄리티를 높이면 이런 것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컬렉션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이어 “그동안 협찬사에 제공하는 혜택이 애매했다. 결국 협찬사가 ‘윈윈’이라는 판단이 들어야 주머니를 열지 않겠느냐!”면서 “서울패션위크라는 콘텐트를 활용하면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도록 컬렉션의 인지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벤츠와 협업한 뉴욕패션위크가 그 좋은 예죠. 벤츠는 뉴욕패션위크를 포함해 전 세계 주요 컬렉션의 메인 스폰서를 맡아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어요. 이를 통해 노후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기업에 제안서를 보낸 상태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행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패션 한류의 무한 가능성

정 감독은 후배 디자이너들의 콘텐트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는 “재능 있는 후배들이 많아 아주 희망적”이라며 “우리 때보다 더 과감하게 디자인과 사업을 꾸려나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만의 독특한 개성과 창의력, 그리고 품질 대비 적절한 가격은 해외 바이어들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또 최근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국내에서 잇달아 패션쇼를 개최한 사례에서 보듯 한국은 유행에 민감한 시장 특성이나 문화적인 가치 등에서 패션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높은 편입니다. 한류를 한번 보세요. 다만 그게 K팝이나 드라마, 영화 쪽에만 치우쳐 있고, 패션까지는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뿐인 거죠. 이제 패션의 한류를 추진해보려 합니다.”

그는 우선 일본, 중국, 태국, 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이 모두 비슷한 성격의 컬렉션을 개최하는 상황에서 서울패션위크가 “아시아의 트렌드를 읽으려면 꼭 가봐야 하는 컬렉션”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한 뒤 세계적인 컬렉션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정 감독은 “오는 10월 16일 개막하는 서울패션위크는 기존 행사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재정립하는 수준으로 치를 계획”이라며 “하지만 내년 봄 행사부터는 ‘정구호표 서울패션위크’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패션업계의 한가운데 있던 전문가입니다.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려운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이벤트를 반드시 만들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올해로 탄생 15주년을 맞은 서울패션위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정구호 총감독. 역량 있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서 성공신화를 이뤄낸 그가 또 다시 의욕적으로 써내려갈 패션위크의 새로운 역사가 자못 궁금해진다.

-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7호 (2015.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