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정밀 기계로 시작해 자동차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보쉬그룹은 현재 전 세계 15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다. 올해 초 새로 부임한 프랑크 셰퍼스 한국로버트보쉬 대표에게
보쉬의 기업 철학과 미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경기도 용인 본사 1층에 마련된 직원 이벤트 코너에서 포즈를 취한 프랑크 셰퍼스 대표. ‘We are Bosch’는 전 세계 보쉬인들이 추구해야 할 사명으로 창립자인 로버트 보쉬의 정신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개발에 힘쓰고 재정적 독립을 유지해 기업의 미래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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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보쉬의 비약적인 성장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보쉬의 한국 사업을 총괄하는 CEO로서 책임감을 갖고 보쉬의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지난 8월 21일 경기도 용인 본사에서 만난 프랑크 셰퍼스 한국로버트보쉬 대표는 취임 8개월째 소감과 각오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의 말처럼 보쉬는 자동차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업이다. 18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로버트 보쉬(Robert Bosch, 1861~1942)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세운 ‘정밀 기계 및 전기 공학을 위한 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보쉬는 이듬해인 1887년 자동차용 엔진 점화기를 만들면서 자동차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13년 헤드라이트, 1926년 윈드실드 와이퍼, 1927년 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용 연료 공급 펌프를 생산했다. 1976년에는 세계 최초로 ABS(Anti-lock Break System)를 개발했고, 1986년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CS), 1997년 커먼 레일 시스템, 2000년 휘발유 직분사 시스템, 2004년 피에조 인젝터를 곁들인 3세대 커먼 레일 시스템을 선보였다.
지속적인 투자와 사업 다각화
▎한국로버트보쉬의 경기도 용인 사옥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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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그룹은 현재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전동공구, 산업기술, 소비재, 에너지 및 빌딩 기술 부문에 걸쳐 전 세계에 440여 개의 지사를 두고 있다. 2014년 매출액은 490억 유로(약 66조원)로, 이 가운데 47%를 유럽 이외의 나라에서 벌어들였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매출 16조원을 달성해 전체 매출액 중 27%를 기록했다. 보쉬그룹 직원 36만 명(2015년 4월 1일 기준)이 전 세계 각지에서 일하고 있다.보쉬그룹은 1985년 서울에 사무소를 열면서 올해로 한국 진출 30년째를 맞았다. 셰퍼스 대표도 한국 근무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 로버트보쉬의 전신인 한국로버트보쉬기전에서 CFO로 근무했다. 그가 한국에 있었던 10여 년 전과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제가 있던 당시에는 한국에 보쉬의 커먼 레일 시스템이라는 디젤연료분사장치 기술이 처음 소개됐고, 이것이 보쉬가 한국에서 급성장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됐지요. 그때로부터 10년이 넘은 지금은 보쉬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에 접어든 시기이자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도전의 시기라고 봅니다.”한국로버트보쉬는 국내에서 실적이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2014년 보쉬그룹의 한국 내 매출은 2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1% 성장한 수치다. 그런 측면에서 그가 말하는 도전의 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전자와 선박, 자동차를 선도하는 시장인 만큼 한국로버트보쉬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공격적인 전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셰퍼스 대표는 “한국에서의 꾸준한 실적은 보쉬의 지속적인 투자 및 사업 다각화에 기반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이와 같은 전략으로 보쉬의 각 사업을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셰퍼스 대표의 말처럼 보쉬의 좋은 실적의 배경은 과감한 투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셰퍼스 대표는 “보쉬는 국내 고객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쉬는 한국에서 지난 5년 동안 265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도 3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보쉬의 대전 공장에서 가솔린과 디젤 엔진에 들어가는 인젝터를 생산 중인데, 유럽연합(EU)의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6에 맞추기 위해 생산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이 돈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보쉬는 국내 R&D 분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25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R&D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07년 217억원을 투입해 증축한 ‘기술 연구’는 최첨단 테스트 및 어플리케이션 설비를 갖추고 있다. 꾸준한 투자와 R&D의 강화가 보쉬의 성공요인인 셈이다.사업 다각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보쉬의 핵심 전략이다. 보쉬는 올해 KCW(주)와 함께 ‘KB와이퍼시스템’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 6월 두 회사는 대구국가산업단지 내에 KB와이퍼시스템 본사 및 제조 공장 구축을 위해 대구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새로운 공장은 2000억원을 투자해 2016년 말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보쉬는 최근 주력 사업인 ‘자동차부품 기술 사업 부문’의 명칭을 ‘모빌리티 솔루션 부문’으로 변경했다. 자동화, 전기화, 연결성 등 이동성의 모든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보쉬가 자동차 업계를 넘어 다양한 산업에서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선두업체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이에 대해 셰퍼스 대표는 “과거 두 발 또는 네 발 자동차를 의미하던 자동차 기술이 현재는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사물 기반 인터넷이 접목된 커넥티드 카로 옮겨가고 있다”며 “기존 자동차 사업의 콘셉트를 넘어서 좀 더 넒은 의미의 모빌리티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셰퍼스 대표에 따르면 모빌리티 솔루션으로의 명칭 변경은 시장의 확장을 겨냥한 전략이다. “현재 전기자동차 부문에서 연료효율과 친환경성이 가장 중요한 기술로 대두되고 있는데, 우리는 2025년까지 신차의 15%가 전기자동차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마저도 100% 완전한 전기자동차가 아닌 하이브리드 또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이는 향후 10년 동안 내연기관 엔진을 기반으로 한 파워트레인 기술이 주도적인 기술로서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면 이에 대응하는 보쉬의 전략은 뭘까? 그는 “2020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보쉬는 매년 4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보쉬는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기술인 자동화 주행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안전 기술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운전자 조력 시스템(DAS) 시장에서 보쉬의 매출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무사고 주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구글, 애플 등 IT 업계의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 진입이 늘고 있지만, 신흥 경쟁자들을 물리칠 만한 강력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것이 세퍼드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보쉬는 레이더 센서의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리더이다. 어댑티브크루즈 컨트롤(ACC)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자율주행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 기술이다.“현재 유투브에서는 보쉬의 기술로 완성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영상을 볼 수 있는데요. 2020년까지 자율주행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이에 필요한 레이더 및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자동주차 기술도 보유하고 있는데 공항의 렌트카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창립자의 경영철학 이어간다독일과 중국의 요직을 두루 거쳐 올해 1월 한국에 온 셰퍼스 대표는 “뛰어난 기술력과 강력한 중공업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야말로 여전히 다양한 기회가 있는 곳”이라며 “임기 동안 한국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법인들을 통합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민첩한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창립자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사 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셰퍼스 대표에 따르면 보쉬는 창립자인 로버트 보쉬의 기업가 정신을 잘 지켜가고 있는 회사다. 지난 129년 동안 7명의 전문 경영인이 창립자의 인간 중심 정신을 이어받아 회사를 운영해 왔다. 이들 전문 경영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한국로버트보쉬의 CEO로서 그의 포부는 무엇일까?“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보쉬의 다음 100년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현재 국내에서 벌이고 있는 보쉬의 사업은 다양하다 못해 광범위하다.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가정용 전동드릴부터 자동차 부품 및 애프터마켓 제품, 산업자동화 및 모바일 제품, 보안 시스템까지 아우른다. 그만큼 보쉬는 한국 상륙 30년 만에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로버트보쉬의 간판으로 부임한 셰퍼스 대표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돼 경영성과에 반영될지 기대된다.-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