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경일의 경영리더십-잃어버린 성장 동력, 해법은 우리 내부에 있다 

역사에서 찾은 창조혁신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성장 정체기에 직면한 글로벌 경제의 화두는 ‘신성장 동력’ 찾기다. 이에 우리 역사가 얼마든지 경영자산이 될 수 있다며, 우리 역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에 집중했던 조선의 세종시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는 600여 년이 지난 2007년에 복원돼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첨단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중앙포토
오천년의 우리 역사 자산은 얼마든지 우리 경영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대다. 광휘의 불꽃으로 타오른 600여 년 전 세종대왕 시대를 주목하는 건 위대한 벤치마크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어떤 점이 오늘날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세종대왕이 태어난 1397년, 이 시기는 1368년 중국에서 명이 건국하고 28년이 지난 때로 조선건국 후 5년이 지난 해였다. 원(元) 제국 하에서의 세계 질서 속에서 강력한 문명 교류가 일어났으나, 대륙 패권이 명으로 교체되면서 세계 질서 속 마땅한 승계자 없이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세종은 이 시기에 거대한 인류사적 과학기술을 접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자격루(自擊漏) 개발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시계인 자격루는 중국 송·원 시대 자동 물시계의 기계장치에 한국의 전통 기술을 더하고, 다시 이슬람의 자동 시보장치 원리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당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시계인 셈이다. 세종 시대에 자격루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슬람의 역법과 질학(質學) 등 장구한 인류사적 과학 전통이 조선의 자산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술의 힘을 인류사적 가치로 알아보고, 이를 국운 융성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원동력은 세상에 대한 인식과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치를 찾아내고, 혁신을 일으킴으로써 국가적 경쟁력을 한껏 드높인 것이다.

글로벌 기술의 결정체인 자격루

자격루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글로벌 기술이 어떻게 올곧이 담아냈는지 알 수 있다.

첫째, 공이 굴러떨어지면서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13세기 아랍 세계의 과학자 이름을 딴 ‘알 자자리 제3·제4 물시계의 원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둘째, 수수호(물받이 통)의 방목(方木) 장치는 ‘알 자자리의 제7시계의 원리’에서 가져왔다. 셋째, 공을 이용한 인형 작동장치 중 핵심장치인 숟가락 기구는 비잔틴의 필론(Philon)과 헤론(Heron)의 자동 장치에서 착안했다. 넷째, 부력에 의해 부전(浮箭)이 떠오르며 발생한 수직 이동 간격으로 만들어진 1차 신호, 공의 낙하 운동과 지렛대의 움직임이 격발로 증폭돼 시보장치를 작동시켜 2차 신호까지 얻을 수 있는 장치는 장영실이 개발했다. 다섯째, 인형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점핑 잭(Jumping jack) 방식도 장영실이 개발해 낸 우리만의 독특한 장치다. 글로벌 기술이 총집결돼야 자격루가 완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전 지구적 기술의 통합이 이루어진 셈이다. 세종은 이 거대 프로젝트가 얼마나 뜻깊었는지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의 김빈(金鑌)으로 하여금 편찬하게 한『보루각명병서(報漏閣銘幷序)』에 넘치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거룩할 사, 이 제도는 하늘에 따라 법을 만드는 것이니, 천지조화가 짝지어진 범위(範圍)가 틀림없네. 적은 시각 아껴 써서 모든 공적이 빛났도다. 그 나라에 사는 백성이 스스로 감화하여 어기지 아니하네. 표준을 세우고서 무궁토록 보이도다.” (세종 16년 7월 1일)

자격루가 매우 정밀할뿐더러 이를 통해 표준 시각을 세웠다는 얘기다. 자격루는 외국 사신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국가 기밀시설이었다. 기술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사 같은 톱니 원리를 당시에 썼더라면 그 응용 범위가 훨씬 넓어졌으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톱니야말로 이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동력 장치이자, 발명 후원형기술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시간에 주목한 세종의 창조경영

그렇다면 조선의 물시계는 어디에 원형을 두었던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물시계다. 그리스 물시계는 급수 실린더가 있고, 부표가 있는 등 자격루와 매우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톱니바퀴와 탈진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 탈진기는 1088년에 중국 관리 소송(蘇頌)이 만들었다. 중국 기술이 서양과 만난 후 이것이 다시 조선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자격루는 이처럼 동서고금의 모든 시계 원리 및 기술이 융합됐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세종은 왜 이 거대한 물시계를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천년을 헤아리는 것도 한 시각이 어긋나지 않는 데서 비롯되고, 모든 빛나는 치적도 짧은 시간을 아껴 쓴 데서 비롯되었다”는 세종의 정치에 임하는 자세에 근거한다. 즉 세종은 국가경영자로서 국왕의 정치란 시간과의 싸움이자, 자신의 역사적인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얘기다.

‘조선은 지금 몇 시를 살고 있는가? 국가 통치자로서 나의 시간은 몇 시인가?’

왕조 시대, 하늘의 시간을 받아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은 황제나 국왕의 의무로 이를 관상수시(觀象授時)라고 한다. 때를 받아 백성에게 알린다는 뜻이다. 그 ‘때’라는 의미에 경영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신이 통치한 시기를 제대로 관리하고, 융성시키고자 하였던 세종의 우주적 고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세종은 창조적 역사(役事)의 구현을 위해 혁신의 원천을 찾았고, 그 원천을 국가통치에 이용해 경영의 차원을 달리하고자 했다. 그것이 세종시대 창조 경영의 방법론이었다. 세종식 경영의 진수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외부의 것을 끌어오는 ‘내발(內發)’을 통해 최초로 발의하는 ‘초발(初發) 혁신’을 만들어 내고, 이를 다시 세계사적 유산으로 만드는 ‘외발(外發) 혁신’으로 원천과 응용이 어우러지게 해 전 지구적 차원의 문명사를 주도하는 데 있다. 창조의 원류는 이슬람의 유산이었으나이를 독창적으로 조선에 맞게 승화시킨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의 도전으로 국내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약화돼 곳곳에서 창조·혁신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해법은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 역사에서 벌어진 위대한 창조·혁신 사례에서 보듯 인식의 문을 확장하고, 글로벌 차원으로 실험하면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경영자들은 변화의 바람이 몰고 온 시대와 자신이 처한 시간을 남다른 눈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모른다면 경영의 현주소는 알 수 없다. 그 반대라면 우리 경영자들도 세종시대처럼 광휘의 경영 세계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전경일 -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인문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통섭적 관점을 연구한다. 저서로『 조선남자1,2』와『 이끌림의 인문학』 등이 있다.

201512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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