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3D의 자랑은 3D 프린팅의 또 다른 과대 광고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조방식을
재편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가진 회사도 바로 카본3D다.
커크 펠프스(Kirk Phelps, 33)는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을 확 바꾸고 싶었다. 일반 자동차 엔진을 위해 제작된 느슨한 원형의 노란 개스킷(마개)을 손에 든 그는 엔진 개스킷이 인간의 창의력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설명했다. “새로운 엔진 종류를 개발하고 싶어도 엔진을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할 수가 없다. 협력업체에 가서 어떤 표준 개스킷을 생산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기준으로 엔진을 개발해야 한다. 후진적 생산 방식”이라고 아이폰 멀티 터치를 개발한 상품 디자이너 펠프스는 말했다.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3D 프린팅 산업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 중 하나인 카본3D(Carbon3D)의 상품개발 총괄 자리를 수락했다. 3D 프린팅은 디지털 3D 파일을 컴퓨터에 입력해 즉석에서 프린터로 고체 물건을 제작해내는 기술이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펠프스가 꿈꾸던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청기나 인공관절 등, 고난이도 제품을 소규모로 정밀 생산하는 최고급 사양의 3D 프린터도 있지만, 시중에 있는 3D 프린터 대다수는 느리기 짝이 없고, 잡동사니나 작은 프로토타입만 생산 가능하다. 3D 프린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초기의 과대광고와 거품은 2년 전 정점을 찍었다가 시들해졌다. 현재 증시에 상장된 프린터 생산업체 스트라타시스(Stratasys)와 3D시스템즈(3D Systems) 주가는 최고치 대비 80%나 하락했다.
카본3D가 이렇게 시들해진 업계에 다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회사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조셉 드시몬(Joseph Desimone, 51)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에서 화학 교수로 재직하다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속도와 정확성이 크게 개선된 3D 프린팅 방식을 개발했고, 세콰이어 캐피탈에서 왓츠앱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짐 괴츠(Jim Goetz) 파트너가 직접 11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이끌었다. 괴츠는 종신 교수로 재직하던 드시몬을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로 불러 창업하도록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후 회사는 1억4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이중에는 지난 8월 구글 벤처스가 모집한 1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다. 고객 테스트용 초기 제품 밖에 출시하지 않았지만, 회사 가치는 이미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D 물체를 층층이 바닥부터 쌓아 올려 3D로 만드는 기계 엔지니어링이 3D 프린팅 시장을 지배했다”고 드시몬은 말했다. “이제는 층층이 쌓지 말고,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모양을 뽑아내자.”
3D 프린터는 대부분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압출 적층 조형)으로 알려진 기술을 사용한다. 로봇 팔에 장착된 글루건 노즐로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분사해 지그재그로 쌓아 올려서 고체형 물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반면, 카본3D 장비는 액체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수조에서 레이저로 필요한 부분만 고체화시켜 뽑아내는 방식이다. 영화 에서 액체형 터미네이터 T-1000이 금속 액체 덩어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광경 화성 액체에 빛을 비추어 고체로 만드는 SLA(stereolithographic apparatus, 광경화 수지 조형) 방식은 수십 년 전 개발됐지만, 드시몬은 화학자의 전문성을 살려 이를 한층 발전시켰다. 수조 밑바닥을 콘택트렌즈처럼 공기가 투과되는 유리로 교체시킨 것이다. 액체 수지 아래쪽에 1인치의 1000분의 1 두께로 얇은 공기 쿠션이 형성되면, 액체는 바닥 유리에 들러붙지 않게 된다. 유리 밑에서 레이저가 조사되면 액체 플라스틱 아래 부분이 입력한 모양 그대로 경화된다. 로봇팔이 천천히 물체를 수조에 끄집어내면, 남은 액체 수지가 아래로 흘러 들어가 그 밑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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