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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50대 부자] 지나 라인하트 핸콕 프로스펙팅 회장 

위기를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철(鐵)의 여인 

임채연 기자
아버지는 무너져 가는 광산 제국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억만장자 지나 라인하트는 2대에 걸친 ‘로이힐 프로젝트’를 통해 제국의 영광을 재건하고 있다.

▎호주 억만장자 지나 라인하트 회장은 빚더미에서 부를 캐냈다.
부녀(父女)간의 정은 남달랐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12살짜리 어린 딸을 중요한 회의에 데리고 다녔다.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와의 티타임은 물론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를 만날 때도 동행했다.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아버지는 “내가 지켜줄 수 없는 세상에 딸을 혼자 둘 순 없지 않는가!”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아끼는 딸에게 감당 못할 채무와 쓰러져가는 기업만을 남기고 대책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딸은 망해가는 아버지의 회사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1992년 3월 28일, 지나 라인하트(Georgina H. Rinehart·62) 핸콕 프로스펙팅 회장이 아버지를 잃은 바로 다음날부터 아버지가 쓰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뛰어든 이유다.

“수많은 언론이 저를 (상속녀로) 부릅니다. 하지만 제가 물려받을 당시 회사는 지금처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성공적인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그가 포브스코리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답한지 열흘 만에 보내온 답변서의 첫 문장이었다. 10포인트 글씨 크기로 빼곡하게 채운 A4용지 8장에는 ‘아버지의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회장직이라는 책임을 막 떠안았을 때 제가 쥔 칼자루로는 두 가지 선택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최대 한도로 대출을 받는 것, 아니면 부채 상환을 하지 못해 받을 법적인 위협, 그 두 가지였습니다.” 1992년 부친 랭 핸콕(Lang Hancock)이 타계하며 핸콕 프로스펙팅의 지분 100%를 넘겼을 때를 회상하던 라인하트 회장이 말했다. 2년 뒤인 1994년에야 겨우 부채규모를 283만 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2012년 전 세계 여성부자 1위 등극

라인하트 회장은 올해 85억 달러(10조원)의 재산으로 호주 부자 순위 2위에 이름을 올린 기업가다.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 37위, ‘세계 억만장자’ 94위를 차지했다. 부의 원천은 호주 서부의 필바라(Philbara) 지역 채광권이다. 필바라는 호주 철광석 매장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라인하트 회장에게 화수분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아버지 핸콕이 남긴 거의 유일한 유산이기도 했다(핸콕은 다행히도 라인하트 회장이 태어나기 2년 전에 이곳 필바라에서 세계 최대 수준의 철광석 매장지를 발견했다).

라인하트 회장은 회사를 물려받은 뒤 직접 광산을 개발해 당시 적자였던 기업을 흑자로 돌려놨다. 2007년 다국적 광산업체 리오틴토(Rio Tinto)와 합작 설립한 호프다운스(Hope Downs)로 새 광산을 개발해 그 이익의 절반을 가져왔다. 그는 연간 3000만t을 생산하는 호프다운스 광산의 수익으로 연간 16억 유로를 벌었다. 이후 로이힐(철광석), 알파(석탄) 등 신규 광산 개발을 시작하고 합작파트너를 유치해 자본을 대량 투입했다.

1998년. 남들에겐 글로벌 금융위기였지만 라인하트 회장에게는 이 위기가 기회였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등지에서 신흥국의 철광석 수요는 꾸준했고,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한 덕분에 호주 광산업이 붐을 탔다. 라인하트 회장의 재산은 2008년 24억 달러에서 2011년 90억 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2012년에는 호주가 아닌 전 세계를 통틀어 여성 부자 1위 순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런 라인하트 회장의 재산 증가를 도와준 기업에는 한국의 포스코(POSCO)가 있었다. 2012년 5월 2일 포스코는 라인하트 회장이 주도하는 ‘로이힐 프로젝트’의 지분 12.5% 인수를 완료했다. 당시 정준양 회장은 “라인하트 회장은 포스코와의 면담에서 부친의 숙원인 철광석 개발사업의 꿈을 포스코와 함께 이루고 싶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로이힐 프로젝트는 호주 서부 필바라 지역의 철광석 광산 개발 사업이다. 2017년까지 세계 철광석 생산량(약 19억t)의 2.9% 수준인 연 5500만t의 철광석을 생산해 내다 팔 예정이다.

라인하트 회장은 이 로이힐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1992년부터 끈질기고 외롭게 싸워왔다. 물려받은 기업은 거의 십여 년간이나 납세 의무를 지키지 못했고, 때문에 돈이 들어가는 탐사·투자 등도 제한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하트 회장은 로이힐 초창기에는 탐사에 아주 적은 돈만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 사무실에서 쓰는 것을 포함해 나중에야 3대로 늘어났던 오래된 캐러밴 한 대가 겨우 있었을 뿐입니다. 지질 학자와 기술자들은 광산 입구의 노천에서 별빛 아래 그냥 침낭을 깔고 잤습니다.”

사업 자금만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든든한 지원군 조차 없었다. 필바라의 한 회사는 초기 탐사 후 로이힐이 개발할 가치가 없는 곳이라며 공사 진행을 반대하기도 했다. 라인하트 회장은 “당시에 전문가들이 왜 의문을 가졌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아버지가 광산을 개발하고자 했던 비전과 욕구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1993년부터 사업성 검토(광산평가·경제성 분석)를 했고, 2010년에는 마침내 로이힐 프로젝트를 진행할만한 규모의 매장량을 발견해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매장량을 발견했지만, 채굴한 철광석을 이동해야 하는 기반시설이 없었다. 광산에서 항구까지 총 347㎞를 잇는 철도와 항만이 필요했다. 그린필드 투자(투자 대상국의 용지를 사들여 사업장이나 공장 등을 신설하는 방식)로 진행되는 이 거대 프로젝트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많았다.

피눈물로 부 일군 ‘자수성가한 상속자’


고민 끝에 라인하트는 전 세계 잠재고객을 주주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한국의 포스코, 일본의 마루베니, 대만의 차이나스틸을 설득해 로이힐 프로젝트 지분을 줄 테니 투자를 하라고 설득했다. 그리곤 앞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할 50% 이상의 철광석을 싼값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머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과 접촉했다. 한국·미국·일본의 5개 수출 신용기관을 비롯해 총 19개 은행과 72억 달러의 자금계약을 체결했다. 광산개발 프로젝트 자금조달로는 역대 최대 금액이었다.

라인하트 회장은 “통상적인 선을 넘어선 이런 거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따내기가 매우 어렵다”며 “2014년 마무리가 되기 전까지 피나는 노력과 함께 눈물을 흘려야 했다(blood sweat and some tears)”고 밝혔다. 2015년 11월 22일(11월 22일은 아버지 핸콕이 필바라 지역의 철광석을 발견한 날이다), 헤들랜드 항만(Port Hedland)으로 운반될 철광석 분광이 처음으로 기차에 실렸다. 라인하트 회장은 기차 경적 소리가 “박수갈채와 응원 함성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로이힐 프로젝트는 첫 선적에 성공했다. 호주 로이힐 광산 현장에서 채굴한 총 10만t의 철광석을 헤들랜드 항만에 대기 중인 선박에 싣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적은 광산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수출하기 위해 배에 싣는 단계로, 첫 선적 달성은 주요 공사가 모두 마무리돼 광산의 상업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체 광산을 개발하겠다는 아버지의 꿈을 그녀가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그 순간, 위기가 닥쳤다. 철광석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12월 t당 40달러를 기록해 2011년(평균 t당 169달러) 대비 76%나 급락했다. 올해 1월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철광석 t당 평균가격이 47달러로 2004년 이후 1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탓에 중국 국영 광산업체인 중국야금과공집단공사(中國冶金科工集團公司) 등도 호주 철광석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소식이 줄줄이 쏟아졌다.

그러나 라인하트 회장은 낙관하고 있다. “시장가격은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다”며 “철광석 값이 영원히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2년 로이힐 투자를 결정했을 때는 모두가 반대했다”며 “지금은 우리가 생산할 철광석 5500만t의 50% 이상을 사겠다는 파트너(포스코·마루베니·차이나스틸)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라인하트 회장이 로이힐 광산에서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철광석 값이 급락한 상황에서 라인하트 회장이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대규모 생산을 새로 시작하면 공급과잉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호주 최대 철광석 광산 보유


기자가 이에 대해 묻자 라인하트 회장은 “로이힐이 단 1t의 광석도 수출하지 못했을 때인 2014년부터 (로이힐이 철광석 가격을 끌어내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철광석을 파내야 하는지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고품질 철광석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비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라인하트 회장은 일찍이 투자한 인프라가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년간의 호황기에 호주 기업은 생산능력 제고와 광산·철도·항구 설비 현대화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면서 “이는 호주의 생산비용을 줄이고 철광석과 석탄 같은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였다”고 보도했다. 호주 중앙은행(Reserve Bank Australia) 이사를 역임한 경제학자 워윅 맥키빈(Warwick McKibbin)도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이뤄진 투자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인하트 회장은 자신의, 아니 아버지의 목표를 이루는 데 거의 성공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다른 기업의 도움을 받아 철광석 광산을 개발했다. 필바라의 박식한 전문가들과 업계가 외면했던 프로젝트가 호주 최대 철광석 광산이 되기까지 라인하트 회장은 고독하고 끈질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라인하트 회장은 위기를 거치면 거칠수록 더욱 강하게 단련돼 왔다. 그렇게 본다면 아버지는 빚뿐만 아니라 왕관의 무게를 견딜 유산을 함께 남긴 셈이다. 누군가 아버지 랭 핸콕에게 “딸이 당신처럼 고집이 셉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오, 나보다 몇 배는 더 하지.”

- 임채연 기자

[박스기사] 아이언맨의 탄생

1952년 11월 22일 비바람이 치던 아침. 랭 핸콕은 경비행기를 타고 아내 호프 마가렛 니콜라스와 호주 서부에서 퍼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악천후 탓에 평소보다 고도를 낮춰 산 위를 비행했다. 조종석에 앉아있던 핸콕은 필바라 지역 해머즐리 산맥의 협곡을 통과하다가 붉게 녹슨 바위를 발견했다. 그는 즉시 ‘철광석을 함유한 암석층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6개월 뒤 필바라를 다시 찾았다. 그는 몇 개월의 탐사 후 채광권을 취득해 1955년 핸콕 프로스펙팅을 창립했다. 핸콕 프로스펙팅이 확보하고 있는 채광권 규모는 필바라 지역에 면적 500㎢(여의도 면적의 60배)에 이른다. 핸콕은 철광산을 발견한 후 필바라 지역을 임대해 개발권을 소유했다. 핸콕은 채광권을 광산업체 리오 틴토에게 빌려줬고, 리오틴토는 자회사를 만들어 한 해에 수백만t의 광석을 생산했다. 회사와 체결한 계약으로 1970년 이래 핸콕 프로스펙팅은 리오틴토가 1t의 철광석을 수출 할 때마다 연 이익의 2.5% 로열티를 영구적으로 받게 됐다.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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