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한 김영세 회장. 30년이 지난 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디자인 액셀러레이터 랩(DXL-Lab) 설립이다.
그는 “이노디자인의 미래 30년을 좌우할 도전”이라며
“기술+디자인+투자가 한 곳에서 이뤄지는 DXL-Lab은 모두가
윈-윈-윈 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는 김영세 회장. 이노디자인이라는 회사명을 정할 때 그 자리에서 이노디자인의 CI도 디자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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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년이다. 1986년 3월 한국에서 온 조그만 키의 산업디자이너는 미국 IT 산업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센터를 세웠다. 당시 실리콘밸리에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하이테크 글로벌 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디자인센터와 손을 잡고 싶어했다. 혁신을 추구하는 철학이 미국에서도 통한 것.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시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실력이라는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IDEA’에서 금, 은, 동을 휩쓸고 영국의
가 선정한 최우수제품상 수상은 그의 실력을 대변해준다. 차별을 이겨내고 거둬낸 성공에 대해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쇼크가 내 활동의 원천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노는 혁신(Innovation)을 뜻한다. 지금은 흔해빠진 단어지만, 30년 전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서도 사용빈도가 낮았다. “그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슴이 떨렸다”고 말하는 김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디자인센터에 ‘이노’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김 회장은 이노디자인 USA 설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3월 초 세계 최초의 디자인 액셀러레이터 랩(DXL-Lab) 출범이 바로 그것. “이노디자인의 미래 30년을 위한 도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과감한 승부수다.향후 30년 도전은 DXL-Lab에서 시작한다액셀러레이터란 창업 초기 단계에서 단순히 투자에 그치지 않고 운영과 전략 등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업체를 통칭한다. 미국의 와이컴비네이터, 유럽의 시드캠프, 한국의 퓨처플레이와 프라이머와 같은 곳이 유명한 액셀러레이터로 꼽힌다. 돈과 인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으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의 손을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하지만 하드웨어 기반의 제조업 스타트업은 기존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면이 있다.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시리즈를 뛰어넘는 운영체제와 기술력만 가지고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받쳐줄 수 있는 하드웨어가 필수적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절묘한 결합은 디자인이 실행돼야만 가능하다. 김 회장이 그런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나선 것이다.1986년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한 후 30년 동안 이노디자인의 성공시대를 썼다면, DXL-Lab 설립은 이노디자인의 미래 30년을 끌고 나갈 거대한 프로젝트다. DXL-Lab의 캐치프레이즈는 ‘DESIGN TOGETHER!(함께 디자인하자)’다. 김 회장의 철학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그는 “정상에 오른 디자이너의 다음 꿈은 많은 후배들을 데뷔시키는 것”이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DXL-Lab은 쉽게 말헤 디자인 플랫폼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제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은 이 플랫폼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올리면 된다. 김 회장은 “IoT 분야 스타트업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플랫폼에 올라온 프로젝트를 보고 함께 해보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든지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노디자인 소속의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외부 디자이 너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벤처캐피탈도 이 플랫폼에 올라온 프로젝트 중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투자할 수 있다. “미래 성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는 프로젝트에는 이노디자인도 직접 투자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플랫폼에 스타트업, 디자이너, 벤처캐피탈이 모두 모이는 것이다. “이노디자인은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김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외부 디자이너의 참여다. 후배 디자이너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노디자인에 들어오고 싶은 디자이너는 줄을 섰다. 하지만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DXL-Lab이 후배 디자이너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판이 되기를 소망한다.
15년전 발표한 ‘디자인 퍼스트’의 실행파일
▎이노디자인이 직접 투자를 하고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하이코어의 전기자전거. 이노디자인이 보유한 접는 자전거 특허가 적용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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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에는 세계적인 3D 디자인 솔루션 제작업체인 다쏘시스템이 DXL-Lab에 클라우드 기반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공급하는 MOU를 맺었다. 김 회장은 “다쏘시스템은 11개의 크리에이티브 툴을 제공한다”고 자랑했다.김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올해 중반기 서울 역삼동에 완공되는 7층 건물을 DXL-Lab을 위해 사용하기로 한 것.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이노디자인센터도 DXL-Lab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본부로 사용된다. 이노디자인 USA는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된다. 30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디자인센터의 명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DXL-Lab은 갑자기 나온 생각이 아니다. 15년 전부터 생각한 것을 지금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1997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디자인 퍼스트’를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계획한 것을 15년이 지난 지금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가 말한 ‘디자인 퍼스트’는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는 제품을 이야기한다. “디자이너는 세상의 조연이 아니다. 이젠 주연이다”라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디자인 액셀러레이터의 구체화를 위해 김 회장은 이미 스타트업 업체 한 곳과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전기자전거 휠을 제작하는 하이코어(대표 박동현)와 손을 잡은 것. 지난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이코어 관련 기사를 읽고 바로 연락해서 만났다고 했다. 하이코어는 전기자전거 구동에 필요한 밧데리와 모터 등을 모두 뒷바퀴 휠 안에 설치한 스타트업이다. 이 휠을 자전거에 설치하면 일반 자전거가 전기자전거가 된다. 김 회장은 휠 특허를 가진 하이코어와 손을 잡고, 이노디자인의 특허인 접는 자전거 프레임을 제공하게 된다. 그는 “이노디자인의 디자인과 기술력이 만나면 상품 가치가 훨씬 커진다. 하이코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DXL-Lab의 첫 번째 작품이 될 전기자전거는 3월 선보일 계획이다.하이코어처럼 김 회장과 미팅을 진행한 스타트업은 10여 곳 정도다. 대부분 기술력은 높지만 상품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다. 미팅을 통해 이노디자인이 디자인과 투자까지 결정한 곳도 4곳이나 된다. 그는 “엔지니어들은 기술은 좋지만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 팔아야 할지를 전혀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기술+디자인+투자’가 한 곳에서 이뤄지는 DXL-Lab을 김 회장은 “모두 윈-윈-윈 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디자인 노벨상 휩쓴 산업디자인 선구자이노디자인 USA를 시작으로 김 회장은 30년 동안 입지전적의 성공 스토리를 썼다. 그가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우연히 집에 있던 산업디자인 관련 잡지를 보고 산업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디자이너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30명 정원의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입학했고, 그는 공업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공업디자인을 선택한 학과 동기는 5~6명에 그쳤다. 그만큼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비전과 미래가 밝지 않았던 것. 그는 “대학생 때 디자인에 미쳐 살았다. 다른 수업은 잘 듣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의 대학 생활은 디자인이 아니면 음악이었다. 그가 당시 학교를 같이 다녔던 가수 김민기와 함께 ‘도깨비 두 마리’라는 그룹을 결성해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그는 1974년 서울대를 졸업한 후 바로 미국 시카고주에 있는 일리노이대학교 산업디자인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산업디자인 혁명 기지였다. 그곳의 핵심 멤버들이 미국에 들어온 곳이 시카고여서 일리노이대학을 택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바우하우스(독일어로 건축의 집이라는 뜻)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되어 운영된 학교다.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곳이지만, 1933년 나치스에 의해 강제로 폐쇄됐다. 그는 일리노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두퐁에서 디자인 컨설팅을 했다. 디자이너로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80년 자신이 공부했던 일리노이대학교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남들은 큰 꿈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하지만 김 회장은 3년 만에 그 좋다는 교수 자리를 그만뒀다. “교수로 일하면서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손을 잡고 일했다. 기업체들과 일하느라 교수로서 도저히 학생들에게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없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내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한몫했다. 미국 디자인 컨설팅 그룹인 GVO에서 프로덕트 디자인 매니저로 일한 후, 1986년 실리콘밸리에 자신이 직접 설계한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했다.“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커다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리노이주에 남아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노디자인 USA를 글로벌 기업이 함께 일하고 싶은 디자인회사로 성장시킨 후 1999년 이노디자인 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는 “디자인을 테크놀로지와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노디자인은 2004년 베이징 사무소를 오픈하고, 2010년 이노디자인 도쿄를 설립하면서 글로벌 디자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동양매직 휴대용 가스버너, LG전자 양문형 냉장고, 삼성전자 가로본능 휴대폰,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라네즈 거울 슬라이딩 팩트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영국 디자인 전문지 의 커버스토리에도 소개됐다. 독일 iF Design Award, 독일 REDDOT 디자인 어워드, 미국 IDEA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적인 공모전 수상 목록만 30여 개가 넘는다. 2009년 일본경제지 <닛케이 BP>가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 중 한 곳으로 이노디자인을 선정한 이유다.이제 그는 자신의 명성을 한국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디자인 시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움직임의 시작이 DXL-Lab이다.”- 글 최영진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박스기사] 김영세 회장 Profile :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30대 초반에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 교수를 역임했고, 1986년 한국인 최초로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했다. 국내외 디자인 경영의 기초로 자리잡은 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s Design) 개념을 만들었고, 디자인 우선주의(Design First)를 주장했다. 저서로는『12억짜리 냅킨 한 장』,『트렌드를 창조하는 자』,『이노베이터,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이매지너』,『퍼플피플』,『김영세의 드림토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