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인수합병부터 엑시트까지 1년 6개월이면 된다고 주장하는 창업가가 있다. 500V 김충범 대표다.
한국에서 낯선 사업모델인 벤처 얼라이언스가 성공할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충범 대표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 마켓사이즈가 너무 작고, 자본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서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시장 진입이 필수”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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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산업용 마스크업체 도부라이텍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도 문제지만, 아버지의 사업체를 누군가 대신 운영해야 했다. 해외 유학 중인 두 딸은 학업 때문에 불가능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외무고시를 준비 중이던 대학교 3학년 아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야만 하는 상황. 고시 준비만 했던 백면서생이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음은 자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 돈이 없다는 것. 회사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들은 9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어느 순간 카드 돌려막기도 불가능해졌다. 매일 아침 아들의 출근길에는 어김없이 채권추심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몸서리쳐지는 기억이다.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우선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서점에서 경리회계, 사출(형상 틀을 만들어 그 속에 재료를 녹여 넣어 제품을 만드는 것), 프레스와 같은 회사 운영에 대한 책을 구입했다. 회사에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렇게 사놓은 책을 하나하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6개월을 공부한 후에야 공장의 사출 과정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장 운영을 이해하고 나서는 거래처 관리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아버지의 사업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두 파악하는 데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그래도 여전히 회사는 적자였다. 제품 판매는 물론 영업량을 확보해야 회사는 살아날 수 있다. 산업용 마스크를 사용하는 주 고객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었다. 그는 조선소가 몰려있는 거제도와 부산, 울산, 목포를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백면서생은 그렇게 현장 분위기를 익혀나가며 사업체를 꾸려나갔다.“공장 일이 적성에 맞냐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이게 나한테 맞느냐 안맞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적자투성이 회사는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웠던 아들은 회사의 체질개선에 도전했다. R&D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하는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서다. 회사는 특허 4개를 보유한 산업용 마스크 전문 제조업체로 탈바꿈했다. 수입에 의존했던 방진마스크를 국내 제품으로 대체하는 길도 열었다. 한해 14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산업용 마스크 분야 1위 회사가 이렇게 탄생했다.
아버지 대신 사업 뛰어든 외무고시생주위의 어느 누구도 아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정작 그 아들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달려드니까 해결이 되더라”며 웃었다. 빚 투성이 회사를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워낸 아들은 요즘 한국 IT업계의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 벤처 얼라이언스 500V(볼트) 창업자 김충범(41) 대표 이야기다.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운 후 김 대표는 내친김에 사업가로 나섰다. 지금까지 유통, 광고, 제조, 교육 등의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었고 9개의 사업체를 운영해 대부분 성공시켰다. 직원 4명을 데리고 6개월 동안 준비해 350억원의 매출을 올린 ‘도니도니돈까스’는 그의 사업적 능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는 “15년 동안 돈 버는 회사를 만들어왔다. 기업가로 성공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성공의 원동력을 설명했다.한국 IT 업계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 500V는 김 대표의 10번째 창업 도전이다. 2015년 1월 출범한 500V는 M&A에 기반한 온·오프라인 ‘벤처 얼라이언스’ 기업이다. 쉽게 말하면 500V는 온·오프라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지분맞교환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체결한다. 인수합병으로 기업 규모를 키우고, 실제 사업 운영은 제휴 형태를 유지한다. 인수합병 뒤 500V는 스타트업의 매니지먼트와 인큐베이팅을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한다. 이후 상장이나 매각과 같은 형식의 엑시트를 진행하게 된다.좀 더 세부적으로 사업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의 트랙(주제)의 시작과 끝(엑시트)에 걸리는 시간은 1년 6개월이다. 500V는 하나의 트랙에 50개의 스타트업을 참여 시킨다. 50개 스타트업은 이후 상장그룹과 인큐베이팅 그룹으로 나뉜다. 지주사 500V는 1년 6개월 후 상장을 하게 된다. 500V는 이 과정을 10번 반복한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회사명인 500V의 500은 향후 5년 동안 500개의 벤처기업을 M&A할 것이라는 목표를 말한다. 김 대표는 “인수합병부터 엑시트까지 1년 6개월에 가능하도록 만들겠다”고 자신했다.마치 500V의 목표가 빠른 엑시트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500V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신선하다’와 ‘위험하다’는 극단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 마켓사이즈가 너무 작고, 자본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서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시장 진입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라이언스 모델을 내세웠고, 자금 조달과 성장을 위해 빠른 상장이나 매각을 추진한다는 논리다.
1년 6개월 내 엑시트 추진이 포인트한국에서 창업을 하고 엑시트까지 성공하는 시간은 평균 14.2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창업부터 엑시트까지 6.8년, 중국은 3.9년에 그친다. 맥킨지보고서(2015년 5월)에 ‘한국기업엔 출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김 대표의 계획대로 500V의 사업모델은 진행되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2015년 1월 500V의 출범 이후 2016년 6월이면 하나의 트랙이 끝나게 된다. 매각이나 상장을 시도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셈이다. 김 대표는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500V의 성과를 김 대표는 처음으로 밝혔다. 500V와 합류한 스타트업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26개사로 280여 명이 일하고 있다. 50개사에 턱없이 부족하다. 어찌된 일일까. 김 대표는 “합류 기업수는 정확하게 계약이 완료된 것까지 해서 26개가 맞다. 6월까지 50개 기업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3곳의 스타트업은 합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약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합류를 검토한 대상 기업은 300여 곳, 그 중에서 26곳이 500V와 손을 잡은 것이다.26개사의 스타트업이 올린 매출액은 2015년 232억 원이다. 김 대표는 “오는 6월까지 500V의 기업가치를 5000억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가능한 일일까? 김 대표는 “유류유통 핀테크 플랫폼인 ‘에너지세븐’이 매출액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답했다. “에너지세븐 덕분에 500V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1조2000억 원이다. 나머지 자회사의 성장폭을 보수적으로 감안해 2016년 매출 목표액을 9000억원으로 잡고 있다.”이 실적을 바탕으로 상장을 추진하게 된다. “3월이나 4월에 코넥스에 먼저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코넥스부터 시작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500V에 대한 외부의 의구심을 풀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코넥스에 상장을 하면 500V의 가치가 어느 정도 나오게 된다. 500V가 과연 거품인지, 아니면 괜찮은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 “코넥스를 통해 500V의 밸류를 보여줄 것”이라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500V의 사업모델은 한국에서 낯설다. 비슷한 형태의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는 옐로모바일은 엑시트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500V는 엑시트에 중점을 두고 있다. 500V가 추구하는 빠른 엑시트 모델을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를 할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외부의 우려와는 다르게 김 대표는 자신만만하다. “5년 안에 10개 트랙이 모두 상장되면 10개 상위기업 중 5개 이상은 500V 회사가 차지할 것이다.”
- 글 최영진 기자·사진 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