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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CEO를 위한 인문학-역사를 만든 ‘죽은 백인 남자들’(1) 세네카 

부자가 되면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문제의 종류가 바뀐다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죽은 백인 남자들(dead white men)’은 호메로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셰익스피어·보카치오·단테 등 서부 유럽과 미국 문명의 기틀을 다진 사람들이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서양 지식인·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해야 하는 저자들이었다. 세계화 시대의 본격 개막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깎아 내리기가 시작됐다. 근·현대사의 참극에 대해 그들의 책임이 크다는 반성과 여성·동양인·중동인 등의 역사적 공헌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유럽 학생들은 공자·맹자, 불경과 쿠란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 동서양 간 문명경쟁의 승자는 어느 쪽이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그 장점을 흡수하느냐로 결판날 것이다. 미국 비즈니스스쿨 학생들은 『바가바드기타』와 『손자병법』으로 경영 마인드를 키운다. 우리 또한 초서나 키케로 같은 걸출한 인물의 삶과 저작에서 인생과 경영의 지혜를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시작한다.

▎세네카는 21세기 현대에서도 궁금한 대부분의 주제를 논했다. 특히 그는 잘사는 데 필요한 철학을 했다. 출생지인 코르도바에 있는 세네카 조각상.
줄여서 그냥 ‘세네카’라고 해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루킬리우스 안네우스 세네카(기원전 4년께~65년)는 십대였던 네로를 가르쳤다. 서기 49년 12살인 네로의 사부가 됐다. 54년 네로가 16세 나이로 천하대권을 잡자 세네카는 54~62년 네로의 고문·스피치라이터로 일하게 됐다. 세네카가 네로에게 영향력을 발휘한 5년 동안 로마제국에 근래에 없는 태평성대가 찾아 왔다. 세네카는 재정·법률 개혁을 단행했다.

지극히 초연했던 세네카의 자살


▎지극히 초연한 세네카의 자살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려움이나 죽음을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으니 위풍당당하게 받아들이라는 게 세네카가 속한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다.
불행히도 21세가 된 네로는 이윽고 광기(狂氣)의 포로가 되기 시작했다. 형제건, 황후건, 모후(母后)건 마음에 안 들거나 권세를 위협하면 가차 없이 죽였다. 한때 세네카는 황제의 경호실장인 섹스투스 아후라니우스 부루수와 함께 로마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지만, 62년 부루스가 사망하자 목숨을 보전하려 은퇴한다. 사색과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65년 가이우스 피소라는 잘생긴 명문귀족을 옹립하려는 쿠데타 계획에 연루됐다. 네로는 자살을 명령했다. 친구들과 식사하던 그 앞에 황명을 전하러 온 백인대장이 나타났다. 늘 죽음을 준비했던 그는 자살 실행 과정에서도 친구들을 격려했다. (네로는 세네카가 죽은 뒤 3년을 더 살다 30세에 그 또한 자살했다. 30살 6개월을 살았는데, 당시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다스린 네로의 재위 기간은 13년 8개월이었다.)

지극히 초연한 세네카의 자살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려움이나 죽음을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으니 위풍당당하게 받아들이라는 게 세네카가 속한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우리가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세네카는 항상 죽음을 의식했다. “우리는 매일 죽고 있다.”라고 말한바 있다. “덕망 있는 인생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현자(賢者)는 기쁨이나 슬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한 세네카에게 죽음의 공포 또한 극복해야 할 감정에 불과했다. 그에게 죽음은 해방이었다.

세네카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께~399년)의 죽음을 죽음의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해』에 나타난 세네카의 사생관을 요약한다면 이렇다.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몇 년을 살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는 넉넉하게 주어진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쓸데 없는 데에 한눈을 너무 많이 판다. 현재만 있을 뿐이다. 미래는 결코 우리 앞에 오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오지 않을 미래에 한눈을 팔고 또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중요한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다. 삶의 적수는 죽음이 아니라 헛된 기대다. 기대를 버림으로 우리는 인생이라는 연극의 명배우가 될 수 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연극과 같으니 중요한 것은 연극의 길이가 아니라 연기의 질이다.”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다. 유럽의 지성사적 원천 중에서 로마와 관련된 두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키케로(기원전 106~43년)와 세네카다. ‘라틴어에서 모국어로’로 요약할 수 있는 서구 글쓰기의 근대화는 세네카와 키케로를 읽는 과정에서 진행됐다고 보면 된다. 대문호들이 신봉자였다. 예컨대 ‘제2의 세네카’로 통하는 몽테뉴(1533~92)는 『수상록』에서 세네카를 빈번히 인용했다. 단테(1265~1321), 초서(1320~1400) 등에게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살아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배워라


▎인생의 목표 중 최고는 현자가 되는 것이다. 세네카가 제시하는 현자의 길은 이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
스토아주의의 ‘종합·완결편’인 세네카의 저작은 대안이 필요한 이 시대의 단비다. 최근 세네카를 필두로 스토아 주의가 재발견되고 있다. 로마 철학은 그리스 철학의 아류·모방에 불과하다는 오랜 ‘편견’이 깨지고 있다. 세네카 또한 ‘독창성이 없다’는 가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 20여년간 세네카는 오늘의 문제를 정면으로 겨눈 철학자라는 재평가로 복권됐다.

세네카는 21세기 현대에서도 궁금한 대부분의 주제를 논했다. 특히 그는 잘사는 데 필요한 철학을 했다. 그의 글은 다종교 환경에 대처할 영감을 준다. 스토아학파 철학자였으나 다른 철학·종교·학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논지를 폈다. 과학 논문도 남겼다. 세네카는 어떤 철학적 주장을 증명하려는 말다툼에 끼어드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존재론이나 인식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리를 뒀다. 『분노에 대하여』,『행복한 삶에 대하여』,『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등의 저작에서 세네카는 실용주의적 태도로 인생의 여러 문제에 곧바로 쳐들어갔다.

세네카의 저작 읽기에서 로마제국의 공식 이념인 스토아주의와 불교·그리스도교 사이의 같은 점, 다른 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다. 로마의 소멸 이후 세네카의 철학과 그리스도교 윤리의 접합점을 찾아내 융합하려는 시도가 빈번했다. 중세에는 세네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신화가 생겨났다. 세네카와 바울이 주고받았다는 3세기 가짜 서간문도 전한다. 세네카는 사실 예수·바울과 동시대 인물이다. 세네카의 형인 갈리오가 바울을 52년에 조우했다는 이야기가 그리스도교 신약성경의 사도행전18장 12~17절에 나온다.

그리스도교가 스토아주의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6세기이지만, 세네카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계속됐다. 종교개혁기에도 장 칼뱅(1509~1564년)이나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년)는 세네카로부터 영감을 찾았다. 특히 칼뱅은 1532년 세네카의 『관용에 관하여』에 대한 주해서를 출간했다. 칼뱅의 첫 작품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왜 스토아주의를 포섭하려고 했을까. 세네카의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공통분모와 보완성 때문이다.

한데 스토아주의란 무엇을 설파하는가.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덕(德)을 추구해야 한다. 부귀영화는 허욕(虛慾)이다. 세네카에 따르면 “허욕은 현실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분출된다. 덕망 높은 삶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통해 구현된다. 삶의 한 부분인 기예(技藝) 또한 그 원형은 자연이다. 그래서 “모든 기예(技藝)는 자연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세네카가 말한 것이다.

덕의 바탕은 지식이다. 세네카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쓸데없는 것을 아는 게 낫다.” 지식은 독서에서 나온다. 세네카는 『한가함에 대하여』에서 “독서 없는 여가는 생매장 당하는 것과 같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는 법에 대한 지식이 핵심이다. 세네카는 “살아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배워라”라고 권고한다.

세네카의 종교관은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종교에 대해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참, 현명한 자들에게는 거짓, 통치자들에게는 쓸모 있는 도구다.” 하지만 세네카가 신(神)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우리와 가까이 있고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 안에 있다”라는 그의 말은 그리스도교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마치 그리스도교 호교론(護敎論)을 위해 나선 사람처럼 세네카는『섭리에 대하여』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네카에 따르면 좋은 사람, 현자에게는 나쁜 일이 생길 수 없다. 나쁜 일은 사람을 단련하는 시련이다. 세네카에게 이성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다. 이성이 곧 신이요, 이성이 곧 자연이다. 신은 자연·우주 그 자체다. 자연과 우주를 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우주와 우리에게 자연법을 준 존재다.

스스로에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인생에는 부침(浮沈)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은 부침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토아주의가 가르친다. 세네카의 인생에서도 극적인 부침이 발견된다. 그는 기원전 4년경 오늘날의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교육 받고 당대 최고의 수사학 선생이라는 명망을 확보했다. 34년 재무관이 됐다. 황제의 조카 딸과 간통했다는 죄목으로 41년 코르시카로 추방돼 8년 동안 머물렀다. 중앙무대로 복귀한 그는 50년 법무관을 거쳐 56년에는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집정관이 됐다. 황제의 스승·고문이 된 다음에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로마제국에서 네로 다음으로 부자였다. 세네카는 권력형 비리의 화신이다. 배신도 많이 했다. 유부녀들과 불륜에 빠졌다.

심한 언행불일치 인생을 산 세네카는 이중인격자인가. 그렇다고 공격해도 세네카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세네카는 최고의 부자가 된 다음에도, 또 잔혹한 권력정치의 현장에서도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세네카 스스로 자신이 스토아주의 이상인 현자(賢者)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세네카의 인생과 철학을 분리할 필요도 있겠다.

그의 철학에서 인생의 지혜를 끄집어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부귀영화가 인생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아니 스토아주의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런 목표가 없다. 필요한 것은 올바른 행동이요 선행이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미 부자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은 가진 게 너무 없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가진 돈이 줄면 골칫거리도 준다. 재물은 현자에게는 종, 바보에게는 주인이다.”

인생에는 후회 없는 목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네카는 말한다. “종착 항구를 모른다면 순풍(順風)이라는 것은 없다.”, “가진 다음에 후회할 것을 달라고 하지 마라.” 세네카는 또 우리가 우리의 목표에 대해 보다 솔직해질 것을 요구한다. 이런 말을 통해서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따로 따로다. 우리는 신들에게도 진심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목표 중 최고는 현자가 되는 것이다. 세네카가 제시하는 현자의 길은 이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지 못하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렇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또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

또 현자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디스’하며 스스로를 보며 웃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네카는 말한다. “스스로에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세네카는 “우연히 현명하게 되는 사람은 없다”며 목표가 생기면 즉시 준비에 착수할 것을 역설한다. 목표 달성에 필요한 행운을 낚아채는 것도 준비다. 세네카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게 관건이다”라고 봤다.

분노는 ‘보복하려는 욕망’일 뿐이다.

준비 다음에는 실천이다. 실천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세네카는 두려움·용기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 “우리는 다치는 일보다는 겁먹는 일이 더 잦다. 우리는 현실보다는 상상 때문에 고통받는다.”, “두려움의 무게는 위험이 다가왔을 때 더 가볍다.”, “용감한 사람은 자유롭다.”, “미움 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스리는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현자는 운명을 이해한다. 운명의 얼개를 알기에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노 또한 성공의 진입장벽 구실을 한다. 세네카는 분노를 “보복하려는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세네카가 제시하는 분노 대처법은 우선 분노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이미 빠져들었다면 분노한 상태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비법은 연기하는 것이다. 세네카는 “분노에 제일 잘 듣는 약은 ‘미루기’다.”라고 말했다.

목적지에 도달한 다음에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야 하지 않을 까. 모든 목적지에는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부자가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세네카는 말한다. “부자가 되면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문제의 종류가 바뀐다.”

세네카는 다른 스토아학파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세가지 영역이 있다고 봤다. 이론(철학), 실천(정치), 그리고 쾌락이다. 쾌락은 논외로 하자. 문제는 이론(철학)과 실천(정치) 사이의 균형이 가능한지 여부다. 세네카는 가능하다고 봤다. 몸소 실천하지는 못했다. 지식과 권력의 바람직한 관계는 세네카가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다.

[박스기사] 세네카가 남긴 말들 중에 음미해 볼만한 것들

•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재물을 경멸하는 것이다.

• 시간이 진리를 발견한다.

• 마음의 악한 성향 중에 규율로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것은 없다.

• 얼마간이라도 미친 기색이 없는 천재는 없다.

• 싫어하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보다 더한 고문은 없다.

• 모든 사람은 판단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자신이 이미 지닌 믿음에 안주하는 것을 선호한다.

• 사람은 가르치면서도 배운다.

• 호의를 내게 베푼 사람에게 고마워한다면 이미 은혜를 갚아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 노동은 몸을, 역경은 마음을 단련한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서울대 외교학과,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등이 있다.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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