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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최초의 SUV 르반떼 시승기 

지중해를 바람처럼 내달리는 이탈리안 종마 

타비아노(이탈리아)=김기환 기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차 마세라티가 최근 브랜드 최초의 SUV인 르반떼(Levante)를 선보였다. 개발 기간만 10년이 걸렸다는 르반떼를 이탈리아 현지에서 시승했다.

▎르반떼는 아랍어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따뜻하지만 힘찬 성격을 갖고 있다.
마세라티는 그동안 콰트로포르테나 그란투리스모, 기블리 같은 스포츠 세단만 만들어 왔다. 그래서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마세라티가 최초의 SUV인 ‘르반떼’를 론칭한 건 자동차 업계에서 화제였다. 르반떼는 아랍어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따뜻하지만 힘찬 성격을 갖고 있다. 마세라티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도 그 바람이 불길 기대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타비아노 인근에서 르반떼를 시승했다.

마세라티는 시승 행사에 글로벌 20여개 언론 매체 자동차 전문 기자단을 초청했다. 한국에선 본지와 경제지 1곳, 자동차 전문잡지 1곳을 초청했다. 그리곤 이탈리아 파르마 인근 타비아노의 한 고성(古城)에서 르반떼를 공개했다. 1914년 마세라티를 창업한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이곳 인근에서 처음 만든 자동차를 시험 주행했기 때문이다. 마세라티가 르반떼 론칭에 얼마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원을 살펴봤다. 가솔린·디젤 6기통 3000cc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디젤 모델은 최고 출력 275마력, 최대 토크 61.2㎏f·m의 성능을 낸다. 고성능 가솔린 모델인 르반떼s는 최고 출력 430마력, 최대 토크 59.1㎏f·m의 성능을 자랑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데 5.2초~6.9초가 걸린다. 복합 연비는 L당 9.2~13.9㎞이다(유럽 기준).

‘삼지창’ 엠블럼 & 미끈하게 잘 빠진 외관


▎마세라티 내부는 인조가 아닌 천연 가죽 고유의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마세라티는 주행 성능보다 유려한 디자인과 폭발적인 엔진 배기음으로 알려졌지만 전통있는 스포츠카 브랜드이기도 하다. 1939년 세계 자동차 경주대회인 인디애나폴리스 500레이스에서 이탈리아 업체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1957년까지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 그랑프리 대회에서 500여 차례 우승한 기록도 갖고 있다.

미끈하게 잘 빠진 유선형 외관 디자인이 르반떼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 엠블럼이 자리잡은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마세라티 매니어들이 가장 흥분하는 포인트다. 페데리코 란디니 르반떼 개발 총괄은 “볼로냐의 조각상인 바다의 수호신 ‘포세이돈’이 들고 있는 삼지창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플라스틱으로 마감한 엠블럼이 ‘명차’의 품격과 다소 거리감있게 느껴졌다. 그릴 안쪽이 닫혀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마세라티 측은 천천히 달릴 땐 그릴을 닫고, 빠르게 달릴 땐 그릴을 열어 주행 성능을 높여준다고 소개했다.

길고 당당한 차체는 그동안 마세라티 브랜드의 특징이기도 했다. 르반떼도 여지없이 마세라티의 DNA를 물려받았다. 전장(길이) 5m, 휠베이스(축간거리) 3m에 이르는 중형 SUV의 위풍당당함이 느껴졌다. 요즘 유행하는 자동차 디자인처럼 차체 옆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선이 없는 게 오히려 여유롭게 비쳤다. 마세라티 관계자는 “경쟁차보다 크고 여유로운 느낌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앞바퀴 휀더 뒤 물방울처럼 이어진 3개 ‘사이드 벤트(공기 구멍)’도 마세라티의 트레이드 마크다.

시승 차량은 르반떼 디젤. 운전석에 올라 고유의 삼지창 엠블럼이 박힌 운전대를 감싸 쥐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해 만들었다는 가죽 질감이 매끄러웠다. 눈을 가까이 대니 가죽 숨구멍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니 인조가 아닌 천연 가죽 고유의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전면 엔진 보닛과 천장을 잇는 A 필러 안쪽 부분까지 명차답게 맨질맨질한 ‘스웨이드’ 소재로 마감했다. 란디니 총괄은 “미국·독일·일본 자동차 브랜드와 달리 디자인·개발·생산 모두 이탈리아에서 진행한 ‘메이드 인 이탈리’ (Made in Italy) SUV”라고 설명했다.

내부는 오히려 무난한 느낌을 살렸다. 카이엔처럼 가운데 조작부 위 동그란 아날로그 시계를 배치했다. 최근 출시한 차들처럼 가운데 터치 스크린이 크거나 하진 않다. 다만 뒷좌석 안쪽 창문 선바이저(햇빛 가리개)를 버튼을 조작해 자동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등 편의성을 높였다.

시승 구간은 총 185㎞. 창업자인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처음 개발한 차인 ‘티포 26’을 타고 달렸다는 산 등성이길이 하이라이트다. 낮은 경사로 30분 가까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시승 내내 이탈리아 북부 특유의 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급경사와 자갈밭이 이어지는 오프로드(험로) 코스도 포함됐다.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일반 차량의 ‘스포트’(sport) 모드를 넘어선 ‘미친’(insane) 모드로 달리자 속도계 눈금이 쭉쭉 올라갔다. 시속 200㎞를 금세 주파했다. 시동을 걸 때 특유의 ‘우르릉’하는 엔진 배기음이 여전했다. 이 소리를 내기 위해 마세라티는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를 자문 위원으로 초빙해 소리 조정 작업을 한다. 다만 200㎞를 넘자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도 좀처럼 속도계 눈금이 올라가지 않았다.

‘오프로드’ 기능을 200% 만끽한 주행감


▎마세라티의 스포츠 세단인 ‘기블리’(왼쪽)와 ‘콰트로포르테’
달리는 동안 소음·진동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르반떼엔 문짝 유리창 위로 천장과 닿는 부분에 철제 빔이 없다. 스포츠 쿠페가 이런 디자인을 많이 쓴다. 마세라티는 풍절음(공기소음)을 없애기 위해 두껍게 이중으로 이어 붙인 유리를 적용했다.

하이라이트는 4륜구동의 장점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오프로드(험로) 주행이었다. 르반떼의 주행 모드에는 ‘오프로드’가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차체가 지면에서 높아진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앞뒷바퀴 구동력을 50대 50으로 배분하는 식으로 바뀐다. 여기까진 다른 명차에도 종종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무늬가 아닌 진짜 ‘오프로드’ 기능을 200% 체감했다. 경사 40도 흙비탈길을 시속 10~20㎞로 거침없이 오르내렸다. 흙바닥을 오르는데도 바퀴가 헛돌지 않고 거침없었다. 억지로 오르기 위해 가속 페달을 꽉 밟거나 멈췄다 다시 오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원하는대로 밟는 만큼 올라갔다. 오프로드 주행을 즐기는 운전자라면 어떤 의미인지 알 터다. 내리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뒷좌석 동승자는 “어? 어? 이야~”하는 탄성을 연발했다.

시승을 마친 계기판이 205㎞를 달렸다고 알려줬다. 평균 연비는 L당 8.8㎞. 고속 주행을 반복한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명차 브랜드도 마세라티처럼 잇달아 SUV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리며 고가의 스포츠 세단을 주로 만들어 온 재규어는 브랜드 최초의 SUV ‘F-페이스’를 올해 중 선보인다. 초호화 세단을 고집해 온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 제네시스도 2020년까지 SUV 출시를 공언했다.

마세라티가 2013년 국내에 기블리를 처음 선보였을 때 자동차 매니아들은 무시할 수 없는 가격(1억900만~1억3500만원)인데도 명품 브랜드가 ‘보급형’ 스포츠카를 선보였다며 떠들썩했다. 르반떼는 마세라티가 선보인 ‘SUV의 기블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운전하기 편하고 빨리 달리는, 그러면서도 이탈리안 종마의 감성을 놓치지 않은 SUV 말이다. 마세라티는 르반떼를 출시하며 ‘강남 SUV’로 불리는 포르쉐 카이엔을 경쟁자로 꼽았다. 국내엔 10월 출시 예정이다. 예상 판매 가격은 1억1000만~1억4270만원. 란디니 총괄은 “명차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쉽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SUV”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마세라티가 르반떼를 두고 ‘마세라티의 SUV’(The SUV of Maserati) 대신 ‘SUV의 마세라티’(The Maserati of SUV)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 타비아노(이탈리아)=김기환 기자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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