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환영의 CEO를 위한 인문학-역사를 만든 ‘죽은 백인 남자들’(5) 지그문트 프로이트 

뇌 과학과 인공지능 시대에 주목 받는 프로이트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프로이트 이론의 부침이 최고경영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과학경영에 필요한 것은 의심이다. 수십 년간 군림해온 경영학 이론이나 효율성을 인정받은 회사 전통이라도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하지 아닐까.

▎‘정신분석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20세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예수·마르크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세계사를 바꾼 ‘4대 유대인’이다. / 중앙포토
꿈을 꿀 수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람에게는 상상한 것을 반드시 실현해보려는 욕구가 있다. 꿈이 가능한 로봇에 도전하는 학자들이 나올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다. 꿈꾸는 로봇은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 갖춰야 한다.

꿈꾸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체제가 둘 있다. 불교와 프로이트다. ‘마음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불교에 따르면 변하지 않는 ‘나’는 없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나 안에 자아·이드·초자아라는 또 다른 ‘나들’이 있다. 우리의 마음·정신을 세분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싸울 때 신경증 같은 문제가 생긴다. 프로이트는 또 사람의 몸이 성장·발전하는 것처럼 마음 또한 심리적인 발전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출발점은 사실 불교의 문제의식과 같다. 고통이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부과된 인생은 너무 힘들다. 인생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고통과 실망과 해결책 없는 과제를 안겨준다. 인간은 ‘행복’해야 한다는 의도는 ‘창조’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20세기는 ‘프로이트의 세기’였다

인간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마음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행동의 뿌리는 무의식이다. 인간의 행동에서 무의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의 경험·행동·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의식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무의식에 담겨 있는 에로스·타나토스 같은 비합리적인 힘들이다. 하지만 무의식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정신분석을 통해서다. 의식이 잊어버린 것 같은 생각과 감정이 무의식에 남아 있다. 대화치료를 통해 무의식 속에 있던 것을 의식으로 떠오르게 하면 치유가 가능하다. 이상은 적어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신(神)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죄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20세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다. 20세기는 ‘프로이트의 세기’라 불린다. 그는 예수·마르크스·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세계사를 바꾼 ‘4대 유대인’이다. 에리히 프롬(1900~1980)은 프로이트를 마르크스·아인스타인와 더불어 ‘근대의 설계자’로 꼽았다. 어떤 인물을 ‘전후(前後, before and after)’로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프로이트는 플라톤·아퀴나스·뉴턴·코페르니쿠스·다윈과 더불어 그런 인물의 범주에 들어간다. 프로이트를 전후로 성격·유년기·기억·성생활·꿈·종교·여성·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관 자체가 바뀌었다.

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공포와 욕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실수, 철자(綴字)를 틀리게 쓰는 것,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도 무심코 넘기지 않게 됐다.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따뜻하게 됐다. 신경증이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프로이트 이론은 빈사상태다. ‘프로이트는 죽었다’는 발언이 일각에서는 상식이 됐다. 아들은 어머니, 딸은 아버지에 대해 본능적인 성적 욕구가 있으며, 경쟁자인 아버지·어머니의 죽음을 바란다는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도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여성에 대해 프로이트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도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반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에게 여성은 ‘거세된 남자’였다. 페미니스트를 분노케 했다. 남근선망(Penis envy)같은 주장은 이제 웃음거리다.

그의 독창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프로이트는 신흥 이론의 영향을 받았는데 무엇이 이론적 가능성이 있는지 눈치가 빨랐고 짜깁기에 능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정신분석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아니라 피해를 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제 정신분석은 치료보다는 자아 발견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1950년대 정신분석 전문의를 영웅으로 그리던 할리우드 영화계도 등을 돌렸다. 부패하고 한심한 모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왜일까? 전쟁에서 졌다. 1980~1990년대에 프로이트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거웠다. ‘프로이트 전쟁’으로 불리는 논쟁이었다. (사실 심리학·정신의학 분야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문학·사학·철학 등 분야에서 건재하다.)

단테의『신곡』의 참·거짓이나 과학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과학을 표방한다. 과학은 모든 주장을 검증한다. 물론 프로이트는 과학자 이전에 ‘무의식의 탐험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과학자도 관찰자도 실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나는 기질상으로 그저 호기심·무모함·집요함이 특징인 정복자·모험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학이 들이민 메스는 가혹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과학성에 대한 평가는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과학이라기보다는 문학이기 때문에 옳거나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둘째, 과학적인 검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둘째 입장은 또 둘로 나뉜다. 우선 프로이트는 ‘속속들이 틀렸다. 오류를 수정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는 평가가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프로이트 이론은 이미 세계 학술사의 무덤에 안장됐다. 학자들이 프로이트를 읽는 것은 학술사 연구 차원에서다.

비판자들에게 프로이트는 자신이 미리 만든 이론에 연구·임상 결과를 조작해 끼워 맞춘 사기꾼이다. 그들에게 프로이트(Freud)는 사기(Fraud)다. 정신분석은 의사 과학(擬似 Pseudoscience)이다. 심지어는 인신공격도 끼어들었다. 프로이트는 처제와 불륜에 빠진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렸다.

예나 지금이나 논란 부르는 불편한 이론


▎프로이트와 제자들. 1909년 프로이트(앞줄 맨 왼쪽)가 카를 융 (앞줄 맨 오른쪽)을 포함한 제자들과 함게 클라크 대학을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 카를 융도 프로이트와 갈등하며 학문적으로 성장했다.
정치인들만 ‘공과(功過) 분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방법론을 위시로 실증적으로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 상당수 환자들은 정신분석 치료 덕분에 자신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됐으며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한다.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적절한 연구 도구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뇌영상 촬영을 활용하고 뇌과학의 성과를 프로이트와 연계시켜 프로이트가 상당부분 옳았다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을 그들은 지적한다.

프로이트는 종교와도 갈등 관계다. 라이벌 관계로도 볼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은 문학이기 이전에 종교라는 해석이 있다. 전성기 때 자유연상법에 의한 대화치료는 고해성사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다. 프로이트 이론은 그리스도교와 사랑의 가치를 공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분석의 핵심은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희생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가 죽기 몇 달 전 발간한 『모세와 일신교』(1939)의 교훈은 보다 큰 것을 위해 쾌락과 욕망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꿈은 기성 종교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종교는 환상이요 병리적인 정신 현상이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파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환상이다. 종교가 지닌 힘은 종교가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와 어울린다는 데서 나온다.” 문명 발전의 초기에는 인간의 폭력적인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하지만, 종교는 이성과 과학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게 프로이트의 관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프로이트 이론은 불편하다. 논란을 부른다. ‘동성애는 병도 범죄도 아니다’라는 주장은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겠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인간 행동에서 섹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불편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프로이트 주장에 대한 ‘오해’ 때문에 프로이트에 열광했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종한 생활을 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프로이트 이론의 골자로 잘못 이해했다.

프로이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랍비를 많이 배출한 집안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이었다. 장소는 지금은 체코의 일부인 모라비아였다.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낳았다. 반유대주의 성향이 꽤 강한 오스트리아 빈(Wien)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빈에서 80년을 살았다. 1873~1881년 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870년대부터 인기를 끈 다윈의 이론에 심취했다.

머리가 비상했다. 37세에 불과한 나이에 정신분석 이론 개발에 착수했다. 1896년 40살 때 자신의 연구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일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 히브리어·라틴어·희랍어를 할 수 있었던 그는 특히 영어를 잘 했다. 평생 셰익스피어를 즐겨 읽었다. 셰익스피어가 해부한 인간 심리의 본질은 프로이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이트는 영국 경제학자·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에세이 4편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영국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으나 그가 클라크대에서 강연하러 딱 한번 1909년에 방문한 미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세계가 목격한 가장 거창한 실험이다. 미안하지만 미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비판을 배신으로 여기는 성향 때문에 제자들과 등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덕에 정신과학이 풍성해진 면도 있다. 열등콤플렉스를 이론화한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 외향성·내향성으로 성격을 구분한 카를 융(1875~1961)도 프로이트와 갈등하며 학문적으로 성장했다.

대학자인 프로이트에게도 가장 큰 관심사는 여자와 사랑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번도 답이 제시된 적이 없으며, 여성의 영혼에 대해 30년 동안 연구한 나 또한 지금까지 대답하지 못한 거대한 질문은 ‘여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만큼 고통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인 때는 없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주춧돌은 사랑과 일이다.”

“나 때문에 인류가 잠을 설치게 될 것”

비밀주의자였다. 자신에 대한 사적인 기록을 1885, 1907년 두 차례 없앴다. 남은 기록은 재단이 엄격히 관리했기에 프로이트에 대한 자서전은 쓰기 어렵다.

1933년 나치는 그의 저작을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82세의 나이에 상당한 몸값을 지불하고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여동생 중 4명은 떠날 수 없었다. 한 명은 아사했고 나머지 3명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하루에 20개의 시가를 피웠다. 67세 때인 1923년 구강암에 걸렸다. 16년 동안 30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1939년 친구인 의사에게 부탁해 모르핀 과다 투여로 안락사의 길을 택했다.

프로이트는 부활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모든 세계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부침을 거듭했다. 프로이트 스스로 자신이 수행한 작업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사실 뇌·마음·정신에 대한 연구는 이제 초창기다. 프로이트 이론이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은 20세기 초에도 있었다. 프로이트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자 잠잠하다가 다시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뇌과학과 인공지능(AI)의 시대에 프로이트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 때문에 “인류가 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날이 또 올 것인가.

[박스기사] 프로이트의 말 중에서 음미할 만한 몇 가지

● “인간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도덕적이며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다.”
● “마음은, 전체의 7분의 1이 물 위로 드러난 빙산과 같다.”
● “가장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꿈이 종종 가장 심오하다.”
● “돌 대신 욕을 날린 첫 번째 사람이 문명의 시조다.”
● “자신의 믿음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것이다.”
● “모든 생명의 목표는 죽음이다.”
● “노이로제는 애매함을 용인할 능력의 결여다.”

[박스기사]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주요 프로이트 관련 용어

무의식(無意識)

자각이 없는 의식의 상태. 정신 분석에서는 의식되면 불안을 일으키게 되는 억압된 원시적 충동이나 욕구, 기억, 원망 따위를 포함하는 정신 영역을 이른다.

전의식(前意識)

현재는 의식되지 아니하나 생각하여 내려고 하면 약간의 노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지식이나 정서, 심상과 같은 정신의 범위. 프로이트의 용어로, 그는 이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두었다.

자아(自我·ego)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정신 분석학에서는 이드(id),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한다.

이드(id)

인간 정신의 밑바닥에 있는 원시적ㆍ동물적ㆍ본능적 요소.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용어로, 쾌락을 추구하는 쾌락 원칙에 지배되며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한다.

초자아(超自我)

자아가 원시적 욕구를 억제하고 도덕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정신 요소. 정신 분석학에서, 이드(id) 및 자아와 더불어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로, 도덕 원칙에 따른다.

타나토스(Thanatos)

자기를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려는 죽음의 본능(death instinct). 프로이트의 용어이다.

에로스(eros)

성 본능이나 자기 보존 본능을 포함한 생의 본능. 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이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서울대 외교학과,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등이 있다.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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