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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는 방법은 유언으로 안돼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유언 내용에 관한 것이다. 위 유언장을 분석하면 ①전 재산을 첫째에게 줄 것 ②빚은 첫째가 갚을 것 ③상속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④지리산에 묻어줄 것 등 네 가지의 요구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위 네 가지 유언은 모두 법적인 효력이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유언 내용 역시 법에서 하라고 한 것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유언법정주의’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민법 제47조는 ‘유언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내 재산으로 재단을 설립해라’는 유언을 남긴 경우 법적 효력이 있다. 하지만 법에 ‘유언으로 묻힐 장소를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홍씨의 유언 중 ‘지리산에 묻어 달라’고 하는 것은 유언으로 효력이 없다.빚을 갚는 방법도 유언으로 남길 수 없다. ‘빚을 갚는 방식을 유언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홍씨의 빚은 상속비율만큼 자녀들에게 4분의 1씩 분배된다. 따라서 자녀들은 5억원씩 갚아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녀들이 상속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을 유언장에 작성했더라도 역시 효력이 없다. 법에 ‘유언장으로 상속분쟁을 금지시키면 추후 상속분쟁 소송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민법 제1012조는 ‘유언으로 상속재산 분할방법을 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홍씨의 네 가지 유언사항 중 법적으로 효력을 가지는 것은 ‘전 재산을 첫째에게 줄 것’이라는 것 한 문장뿐이다.이제 사전 지식 점검은 끝났다. 본격적으로 유언장이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지 점검해 보자. 유언장은 왜 써야 할까?유언장을 써야 하는 이유는 생전 증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홍씨는 첫째에게 증여한 200억원 상당의 재산을 빼고도 3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홍씨가 유언장을 쓰지 않았다면 상속재산 분배는 어떻게 될까? 남아있는 300억원을 네 명의 자녀가 나누어 한 명당 75억원씩 가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오답(誤答)이다. 상속재산 분배 때는 첫째에게 생전 증여한 재산까지 포함해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첫째에게 생전 증여한 200억원은 세법상으로는 ‘증여’로 처리될 뿐이지만 상속재산 분배 때는 ‘상속’으로 처리된다. 이를 법률용어로는 ‘상속분의 선급’이라고 한다. 상속분(相續分)은 상속으로 받을 비율을 뜻하는 말이고, 선급(先給)은 ‘미리 받음’을 의미하는 법률용어다. 생전에 증여받은 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처리한다는 말을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어차피 상속으로 받을 재산을 방식만 바꿔 증여를 통해 ‘미리’ 받았을 뿐 결국 그 본질은 상속이라는 뜻이다.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상속분 계산에 한해서는 ‘자녀에게 한 증여=자녀에게 한 상속’이라는 도식도 성립할 수 있다. 이는 대법원이 꾸준히 취해오고 있는 상속재산 분배 처리 방식이다.
유언장 작성 때 유류분도 따져봐야
아직은 자필유언과 공증유언 선호 경향유언에 대해서는 각종 오해가 난무한다. 그중 흔한 오해는 유언을 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재산을 탐내는 자녀가 아버지로부터 유언장을 받은 후 아버지에 대한 효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유언을 무르면 되는 것이다. 자필유언의 경우라면 증서를 찢어버리면 되고, 공증유언의 경우 다시 작성하면 된다. 그것도 싫으면 그냥 자녀에게 주기로 했던 재산을 팔아버리면 된다. 생전 행위와 저촉되는 유언은 자동적으로 효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언장 작성 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유언장 작성 때의 팁은 또 있다. 유언집행자 선정을 잘 해야 한다. 부동산, 은행 예금, 어느 회사의 주식 등 콕 찍어 유언한다면 문제가 덜 심각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전 재산의 절반을 둘째에게 준다’는 유언을 한 경우 ‘전 재산’이 얼마인지, 절반의 범위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상속인 간 의견이 대립된다. 이 때를 대비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유언집행자를 정하면 그가 주도적으로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유언자가 원하는 대로 유언을 실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 재산의 절반을 둘째에게 주는 유언이라면 유언의 혜택을 제일 많이 받는 둘째가 유언집행자가 되면 좋다.스마트폰 유언의 예를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유언 방식은 자필유언과 공증유언이다. 자필 유언은 모든 내용을 자필로 작성해야 함은 물론이고, 작성일까지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유언 작성의 연·월까지만 표시하고 날짜가 없는 유언은 효력이 없다. 또한 주소도 써야 하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동까지만 기재하고 그 뒤의 주소를 적지 않은 유언은 효력이 없다. 다만 도장 대신 무인(拇印), 즉 지장을 찍어도 무방하다.자필유언과 공증유언 중 어느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자필유언의 경우 유언자 사망 후 유언장의 진위 여부를 두고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자필유언이 적합하지만 상속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주된 이유라면 공증유언이 적합하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