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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와인 이야기(12)] 미국 와인의 역사(1) 

토마스 제퍼슨의 오래된 꿈 

이석우 와인 칼럼니스트 sirgoo.lee@joongang.co.kr
미국에서도 유럽에 버금가는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비티스 비니페라종을 미국의 토양에서 재배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다.

▎토마스 제퍼슨의 초상과 2달러 지폐에 그려진 토마스 제퍼슨. / 위키피디아
미국산 와인들이 유럽 최고의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들과 미국 나파와인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결을 벌였던 1976년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미국 와인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의 편의적 역사해석이다. 틀렸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면이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1789년 7월14일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절대왕정시대라 부르고, 그 이후를 국민국가시대로 구분 짓는 시대사 구분법과 같다. 1789년 이전에 이미 시민계급이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왕정체제의 누수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부르봉 왕가의 절대왕정이 끝났지만, 곧바로 국민국가시대가 개막된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루이 18세 그리고 샤를 10세의 즉위 등 한동안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다가, 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국민국가체제가 공고히 확립되었다. 1976년 ‘파리의 심판’ 역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일 뿐, 미국 와인의 성장과 발전은 그 전에는 물론, 그 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유럽의 고급 포도종을 수입해 재배하다


▎필록세라가 뿌리를 갉아먹은 포도나무와 필록세라 진드기.
북미 대륙에서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 유럽 이주민들이었다. 고향에서 즐기던 음료를 새로이 정착한 미국 동부지역에서도 만들어 마시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의 발로였다. 처음에는 북미의 토착 포도 종으로 와인을 만들었으나, 역한 냄새 때문에 즐기기가 어려웠다. 결국 유럽 이주민들은 와인양조용 포도종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를 유럽에서 수입해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사추세츠 주에서부터 플로리다 주까지 대서양 연안지역을 따라 곳곳에 심은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나무는 이상하게도 시들어 죽어버렸다. 유럽의 비티스 비니페라종은 북미 대륙의 병충해에 취약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유럽에 버금가는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비티스 비니페라종을 미국의 토양에서 재배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다. 제퍼슨은 1801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 1785년부터 1789년까지 4년여 동안 프랑스 대사로 봉직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유럽의 와인에 매료되어 유럽 전역의 와인 산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제퍼슨의 와인 사랑은 대통령 퇴임 후 버지니아 주에 있는 자신의 사저인 몬티첼로로 귀향한 후에도 이어졌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에 버금가는 토양과 환경, 그리고 기후를 가졌다”고 주장했던 제퍼슨은 몬티첼로에 직접 양조용 포도를 재배했으나, 생전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거의 80여 년의 세월 동안, 유럽에 버금가는 품질 좋은 미국산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 했다.

와인 생산국이 되겠다는 미국의 꿈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포도밭에 불어 닥친 재앙을 통해 불씨가 되살아났다. 그 재앙의 이름은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해충이었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해충은 포도나무에 기생하면서 그 뿌리를 갉아먹기 때문에, 그 숙주인 포도나무는 말라죽게 된다. 1860년대에 필록세라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그 후 약 20여 년간 유럽 포도밭의 90% 이상이 황폐화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필록세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미국산 포도나무종 뿌리에다가 유럽산 포도나무종의 가지를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생물학자들은 필록세라가 본래 미국 동부에서 유래한 해충이라는 사실과, 비티스 애스티발리스(vitis aestivalis)와 같은 미국 토착 포도종은 필록세라로부터 면역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필록세라가 미국 토착 포도나무종의 뿌리를 갉아먹게 되면 상처가 난 뿌리 부위에서 진액이 나오게 되는데, 이 진액이 필록세라를 퇴치시킬 뿐만 아니라 막을 형성해서 상처 부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미국 토착 포도종의 뿌리에 유럽의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키면, 필록세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양조용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콧대 높은 유럽의 와인생산자들은 ‘저급한’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유럽의 거의 모든 포도나무는 지금까지도 미국 토착종의 뿌리에다가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켜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유럽에서 필록세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역으로 미국 동부에서는 비티스 비니페라종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1890년대부터 토착 품종의 뿌리에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켜서 유럽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 이래로 실패를 거듭하던 꿈이 마침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필록세라를 잠재운 미국 토착종

미국 서부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계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중미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포교 영역을 넓혀가면서, 유럽에서 가져온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나무를 선교지 곳곳에 심으면서 와인을 만들어 나갔다. 캘리포니아 주의 동쪽을 둘러싼 로키산맥이 천연 방호벽의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동부에서 서식하는 필록세라 등의 병충해로부터 안전지대를 형성해 비티스 비니페라종이 번창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1840년대 말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동부의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오는 골드러쉬(Gold Rush)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에는 이미 비티스 비니페라를 이용한 와인 양조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도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자연적인 기틀이 다져질 무렵, 이를 가로막는 법제도적인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호에서 계속)

이석우 -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 『와인력』을 출간한 와인 마니아다.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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