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신동훈의 지상 갤러리(8) 

<독도> 

신동훈 미국조선미술협회 회장
선우영은 “남북이 어디 따로 있나, 우리가 붓을 들고 우리 땅 독도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선우영(1946~2009)은 평양에서 출생했으며 그만의 독보적인 진채세화진경산수(眞彩細畵眞景山水)를 개척한 거장이다. 전통적인 화법을 벗어나 거침없는 힘찬 붓질과 세밀하고 섬세한 기법으로 발색이 장엄하고 사실적인 새로운 장르의 미술세계를 탄생시켰다. 조선화(한국화) 부분에서 지금까지 다른 미술형식이 미치지 못하는 섬세한 형상을 수많이 창조해왔지만 선우영의 작품과 같은 그러한 밀도를 가진 세화를 창조한 예는 아직까지 없었다. 선우영은 독보적인 진채세화기법을 완성하기까지 조형적 안목과 정서적 감정을 정화하는데 오랜 세월과 피나는 탐구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물보다 진한 것은 피지만 피보다 진한 것은 사랑이다.” 1997년 10월28일 도쿄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열린 ‘1997 코리아평화미술전’ 전야제에서 분단시대 북녘의 최고화가 선우영과 대한민국 5만원 권 지폐에 신사임당 초상을 그린 남녘의 대표화가 이종상(1938~)이 만나 뜻깊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듬해인 2008년 가을, 이종상은 “이념을 넘어 붓을 들고 우리가 함께 독도를 지켜 후손에 물려주자. 그림으로나마 ‘남북화가 전’을 갖자”는 메시지를 선우영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필자가 그 말을 전달하자 선우영은 “남북이 어디 따로 있나, 우리가 붓을 들고 우리 땅 독도를 지켜야 한다”고 화답했다.

선우영은 2009년 6월9일 ‘남북화가 전’을 위한 마지막 작품으로 를 완성하고는 그해 8월7일 극적인 생을 뒤로한 채 63세로 갑자기 요절했다. 이종상은 선우영의 죽음에 크게 안타까워하며 “‘1997 코리아평화미술전’에서 다음에는 남의 나라에서 만나지 말자”던 선우영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필자는 선우영과 이종상이 꿈꾸었던 ‘남북화가 전’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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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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