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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첫 100년 

 

STEVE FORBES 포브스 편집장
포브스가 창간된 1917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기 중 하나였다. 미국이 오랜 고립주의 정책을 파기하고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10월 혁명으로 러시아를 장악한 근대 최초의 전체주의 정권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 잡지를 창간하다니, 어리석은 결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재단사의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B.C. 포브스는 비즈니스 전문기자가 되고, 나중에는 스스로 기업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꿈을 위해 남아공으로 간 그는 신규 창간한 랜드 데일리 메일(Rand Daily Mail)의 에드가 월러스(Edgar Wallace) 편집장 밑에서 일하며 출판업계에 발을 디뎠다. 나중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설가로 유명해진 에드가 월러스는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면 B.C.가 편집장을 대신해 사설을 썼다. 그러나 남아공 시장 자체가 너무 작다고 느낀 B.C.는 1904년 더 큰 물에서 놀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한동안 일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 주 동안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편집장에게 제안을 했다. 약속한 기간이 끝나고 월급을 요구했을 때 그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업가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B.C.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취직에 성공했고, 의욕이 넘쳤던 그는 필명을 내세워 다른 잡지에서도 비즈니스 전문기자로 일자리를 얻었다. 편집장 두 명이 자기 밑에 있는 기자가 더 낫다고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두 직원이 전부 B.C.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B.C.는 금융 전문기자로 성장하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기사뿐 아니라 기고문도 쓰고 책도 저술했다. 그러나 그는 기업가를 취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기업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도 있었다. (요즘 시대를 살았다면 분명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포브스는 자신이 직접 잡지를 출간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잡지의 원래 이름은 두어즈 앤 두잉즈(Doers and Doings)였지만, 결국 자신의 성(姓)을 이름으로 내세웠다. 당시에는 흔한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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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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