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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세계 1위 보일러 회사 바일란트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책임감’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새로 놓아드려야겠어요.’ 국내 유명 카피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온수를 틀고, 방바닥의 온기를 찾는다. 안전하고 친환경의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 바일란트(VAILLANT) 보일러는 남다른 주목을 받는다.

▎독일 렘샤이트에 위치한 바일란트그룹의 공장. 바일란트 제품의 수명은 최소 20년 이상으로 140년의 차별화 된 기술력을 자랑한다. / 사진:바일란트그룹 제공
‘가스 새면 어떡하지? 질식의 위험은 없을까? 가스비 폭탄 맞거나 동파로 갑자기 얼어붙는 거 아니야?’ 소비자들이 한층 예민해졌다. 학습효과다. 한겨울 온수가 갑자기 나오지 않아 샤워기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당황해 본 기억이 있다면, 얼어붙은 파이프나 물탱크 앞에서 헤어드라이어까지 동원해 해동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면, 가정의 중요한 필수품인 보일러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는 당연한 지도 모른다.

140년 전 독일도 그랬다. 북서부에 위치한 소도시 렘샤이트는 춥고 비가 많이 왔다. 겨울에 일사량이 극히 적었다. 창업주인 요한 바일란트는 1874년 회사를 설립해 직접 보일러 등 난방기기를 만들었다.

바일란트는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한 프리미엄 친환경 고효율 난방 및 환기 시스템으로 독보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20개국 지사를 두고 75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연간 170만대의 가스기기를 전 세계에 공급한다. 연매출은 24억 유로(약 3조1000억원)로 현재 보일러시장 세계 점유율 1위다. 2014년 처음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11월 16일 강남 봉은사로에 위치한 바일란트코리아 전시장을 찾았다. 손유길(40) 대표는 “바일란트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는 최근 발생한 포항 지진 얘기부터 시작됐다. 서울까지 여진이 전해진 한국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됐다. 손 대표는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가스보일러 사고가 가스 사고의 6배”라며 “일산화탄소 중독사고에 노출되는 가스보일러 안전사고에 대한 위협도 커진 게 사실”이라며 운을 뗐다.

확신이 들어야 움직이는 신중함


▎손유길 바일란트 코리아 대표는 “가정의 필수품에 대한 프리미엄 시장의 수요는 더 확대될 것” 이라고 말했다.
내구성만큼 자신한다는 손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가스누출탐지기는 가스 누수에 의한 폭발과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보일러 가동을 정지시키고 가스 누출을 알려줍니다. 당연히 법적으로 의무화시키고 있고요. 안전사고 사전 방지부터 사후관리와 모니터링 시스템이 별도로 구축돼 있습니다.”

설명이 이어졌다. “연소통 자체도 오랜 기간 실내 설치용으로 만들어져 이미 안전성을 담보해 놓은 상태입니다(한국은 현행법상 거실 설치가 안 된다). 바일란트는 내부 배관 청소도 활성화돼 있는 등 메인터넌스(유지)나 사후 서비스가 잘 돼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누적된 경험이 차별화된 기술력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의 제품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견고함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경쟁사 가스보일러 전문가에 의하면 바일런트 보일러는 ‘오버엔지니어링’이라고 역설할 정도였다”며 “산업용 주요 기술까지도 가정에 담아낸 것 아니냐는 ‘칭찬’이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전시 된 보일러 기계 내부를 보여줬다. 견고한 철판들이 꽉 채운 기계는 다부진 몸체를 자랑했다. 손 대표는 기계의 용접 부분을 자세히 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금속 연결고리에 클립들이 끼워져 있다. “직원들이 보일러를 A/S할 때도 간편하게 갈아 끼울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뾰족한 부분도 전혀 없이 세심한 기술력을 보여주는 부분이죠.”

바일란트 보일러는 무엇보다 설정 온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손 대표는 “아이들은 온수 샤워기의 물 온도가 급변하면 화상을 입을 위험과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어 설정 온도의 안정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보일러 온도계를 맞춰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물의 양과 온도에 맞게 따뜻한 물이 나왔다.

바일란트 제품의 수명은 최소 20년 정도다. 손유길 대표는 “한국 보일러 제품은 소비자보호원 권장 교체 주기가 7년이고 일반적으로 10년이면 수명을 다했다고 본다”며 “사실 3년 지나면 잔 고장으로 고민하는 한국 소비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바일란트가 유럽 최고의 보일러로 각광 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유럽인들은 제품을 고를 때 세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효율, 수명, 퀄리티(잔고장 없는 것)를 본다”며 “최근 27년을 사용하다 교체한 고객도 있다”고 자부했다.

독일에서 제품 하나 개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라고도 했다. “정말 신중하고,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독일 기업”이라는 손 대표는 “기업 문화의 ‘기질’이 다르고 접근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의 일자리를 중시하는 풍토 때문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장인과 명품 브랜드를 탄생시킨다”고 말했다.

손유길 대표는 ‘책임감(Responsibility)’을 수시로 언급했다. 그는 “본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며 “생산단계, 인력관리, 생산제품이 친환경적인지까지 아주 꼼꼼하게 챙길 정도로 책임의식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실천은 기본이다.

사실 연료를 태우는 행위는 탄소배출로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 사회의 ‘필요악’이 될 제품에서 탈피하기 위해 바일란트는 오히려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에 앞장섰다. 2015년부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국들은 콘덴싱 외에는 설치를 금지시켰다. 최근 우리 정부에서도 보급화를 추진하고 있는 콘텐싱 방식은 물을 끓이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를 다시 회수해 사용하는 기술이다. 버려지는 열을 열교환기로 모아 물을 데워 연료 소모와 탄소배출량도 줄어든다.

에너지 효율에 대해 손 대표는 “가스비로 환산했을 때 일반 보일러보다 30% 정도까지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고효율펌프(HEP)를 쓰기 때문”이라며 “인버터 방식으로 전기표를 80%까지 절감시켜준다”고 밝혔다.

독일 장수 기업들의 특징은 시대의 흐름에 오히려 발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거듭하는 건 바일란트도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을 신성장동력으로 내건 바일란트 그룹은 지난 6월 독일 본사에 디지털 3D 프린팅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문 역량 센터 ‘3D-CUBE’(3D-큐브)를 오픈했다. 디지털 프린팅 프로세스는 제품 생산의 초기 프로토 타입을 제작하는데 사용된다.

멈추지 않는 혁신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건 경영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8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바일란트그룹은 100% 가족 소유 회사지만,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돼 있다. 오너는 이사회 의장만 맡아 장기적인 투자 결정만 한다. 경영진에서 바일란트 가족은 한 명도 없다. 손 대표는 “바일란트그룹의 의사결정과정은 합리적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기업의 혁신과 변화에 주저함이 없기 위한 방침”이라고 했다. 아울러 “경영 책임자 네 명(CEO·CMO·CFO·COO)중 두 명 이상 동의가 없으면 결재하지 않을 정도로 견제를 잘 한다”고 전했다.

바일란트에게 아시아 시장은 기회다. 손유길 대표는 “우리도 프리미엄 시장을 세분화하는 작업을 2년 넘게 해왔고, 한국 소비자들의 변화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한국 보일러시장은 저가격대로 고착돼 해외 보일러 제조사들의 진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손유길 대표는 앞으로 국내 프리미엄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확신했다.

10년 전 진출한 중국시장에서 연 매출 20%씩 성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얻은 자신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올해 말엔 300만대 판매고를 올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개별난방을 채택한 아파트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고급 타운하우스, 주상복합 등이 속속 건설되고 있습니다. 고급 제품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고, 기술력이나 경험에 기반한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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